14년간 ‘전자기장 노출’에 급성백혈병…숨진 삼성전자 엔지니어, 산재 인정

김지환 기자

유족급여·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

노출 수준과 발병률 다룬 연구 결과 고려

항소심, ‘업무상 재해’ 판단 원고 승소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2017년 3월6일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2017년 3월6일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돼 급성백혈병으로 숨진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법원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다.

서울고법 행정4-1부(재판장 이승련)는 지난 20일 삼성전자 엔지니어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0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수원사업장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에서 소프트웨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15년 2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한 달 뒤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4년 2개월 동안 디스플레이 패널 옆에서 작업을 하면서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노출됐다. 고온 시험 시 TV 소프트웨어 결함 검사를 위해 가속수명시험(ALT) 시험실에도 출입했다.

유족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며 2016년 5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2018년 5월 TV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 전자기장은 백혈병과의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고 노출수준이 낮은 점, 고온작업에 의한 화학물질 노출 수준 역시 낮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유족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법원은 근로복지공단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유족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상당한 양의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된 점,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 수준이 높을수록 골수성백혈병의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된 점 등을 근거로 A씨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시험실에서 고온 시험을 할 때마다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점, A씨가 주 6일 오전 9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해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도 업무상 재해 근거로 봤다.

재판부는 ‘A씨가 노출된 극저주파 전자기장 및 포름알데히드와 급성백혈병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1심 법원 감정의 소견과는 다른 의견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노동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이며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질병 사이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해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인과관계 판단 시 첨단산업의 불확실한 위험을 대비해 노동자의 희생을 보상하면서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산재보험의 사회적 기능을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유족 대리인인 법률사무소 지담의 임자운 변호사는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에 따른 백혈병 발병 위험에 대한 최근 연구 경향을 고려해 적극적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어 “1심 법원은 전자기장과 포름알데히드 노출 수준에 대해 공단 측이 사후적으로 단 한 차례 측정한 결과값을 가지고 A씨 업무환경을 평가했는데 서울고법은 이 평가가 잘못됐다는 점도 분명하게 지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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