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꿈과 어른의 욕망 사이 ‘키즈 유튜버’

김희진 기자

초등생 희망직업 5위 ‘유튜버’…상위 채널 15개 중 10개 ‘키즈 채널’

영상·편집학원 문전성시…범죄상황극·엽기 먹방 등 자극적 아이템도

“가족 유대 증대·자녀 재능 발견” vs “부모의 욕심 투영…신중히 결정을”

아이의 꿈과 어른의 욕망 사이 ‘키즈 유튜버’

“엄마, 나 오늘 유튜브 계정 만들었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문화센터에서 8세 아이가 태블릿PC를 손에 든 채 강의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태블릿PC 화면에 깔린 건 유튜브 홈페이지다. 아이는 능숙하게 자기 계정을 찾아 들어갔다. 조모씨는 딸의 설명을 들으며 새로 만든 유튜브 계정을 들여다봤다. 이날은 ‘키즈 유튜브 크리에이터’ 마지막 수업 날이다. 아이들은 8주 동안 매주 1시간씩 문화센터에서 영상을 구상하고 촬영했다. 편집 앱 사용법도 배웠다. 조씨는 “아이가 유튜브를 많이 봐서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다룬 책도 찾아봤는데 직접 가르치기는 힘들어 딸에게 수업을 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날 때쯤 허모씨(39)도 8세 딸을 데리러 강의실을 찾았다. 허씨는 수업이 시작할 때 아이를 데려다주고 장을 본 뒤 돌아왔다. 조씨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허씨는 “딸아이가 아기 때부터 유튜브를 봐왔다. 혼자 동영상을 찍으며 노는 걸 즐겼다”면서 “아이가 원하는 내용으로 직접 영상을 만들고 자막을 넣으면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게 좋다”고 했다.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2018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에 따르면 유튜버는 초등학생 희망 직업 5위다. 아이를 ‘키즈 유튜버’로 키우려는 부모도 늘어난다. 유튜버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서 부모들은 자녀가 등장하는 채널을 홍보하고 편집 조언을 구한다. 서로 채널을 구독해주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맘카페’에서는 키즈 크리에이터 대회 소식 같은 정보도 공유한다.

유아교육 전문 유튜브 채널 ‘키즈에듀TV’는 여러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임종식 팀장은 “지난해 겨울 처음 키즈 크리에이터 강의가 열렸을 때 수강료가 비싼 편인데도 4개 반 정원이 다 찼다”고 했다. 보통 회당 5000원인 문화센터 미술·체육 강의와 달리 유튜브 수업료는 회당 1만원이다. 교재비는 따로 내야 한다.

‘유튜브 키즈 연구소’는 키즈 채널을 운영하며 키즈 유튜버 강의도 한다. 주윤주 대표는 “많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 촬영과 편집을 배우고 싶다고 문의한다”고 전했다. 주 대표는 유튜브가 부모와 자녀 관계에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며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세 아이들과 영상을 만들며 친구가 된 것 같다. 예전엔 ‘학교에서 뭐했니’로 대화가 끝났다. 영상을 찍으면서 대화 주제가 다양해졌다. 가족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강의를 듣고 키즈 유튜버를 하는 부모 중에) ‘우리 아이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다’며 후기를 남기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돈벌이가 아니라 소통을 중시하려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키즈 채널 운영자들과 아이를 지원하는 부모들은 유튜버 경험이 부모와 자식 간 소통뿐만 아니라 아이의 재능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루루체체TV’ 운영자 송태민씨(39)는 2년 동안 두 딸과 함께 다양한 영상 450개를 만들었다. 여행 브이로그, 상황극, 토이리뷰 등을 담았다. 송씨는 영상을 만들수록 딸이 자신감을 얻고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송씨는 “콘텐츠를 만들며 다채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게 키즈 유튜버의 장점”이라면서 “사육사가 꿈인 첫째 딸은 동물원에서 직접 사육사 체험을, 코미디언이 꿈인 둘째 딸은 개그맨과 컬래버 영상을 찍기도 했다”고 말했다.

‘키즈 유튜버’는 인기 있는 직업이자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주목받는다. 부모가 아이를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아동학대 논란도 생겼다.

유튜브 채널 순위를 공개하는 ‘워칭 투데이’에 따르면 상위 50개 채널 중 14개가 키즈 채널이다. 최근 95억원 상당의 강남 빌딩을 매입해 주목받은 ‘보람튜브’는 50위 안에 3개 채널이 있다. 구독자 수를 합하면 3500만명이다. 초등학생 유튜버 띠예(11)는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먹방’ 콘텐츠로 3개월 만에 구독자 90만명을 모았다.

‘키즈 유튜버’란 이름만 달았을 뿐 부모가 채널 콘텐츠를 제작·운영하는 데도 여러 곳이다. 높은 조회수를 얻으려 자극적인 아이템을 만들기도 한다. 아동학대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국제구호개발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2017년 9월 보람튜브 등 유튜브 키즈 채널 운영자 2명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보람튜브는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차로 깔아뭉개거나, 실제 도로에서 5세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다른 키즈 채널에선 강도로 분장한 아빠가 전기 모기채를 들고 아이에게 “엄마를 잡아가겠다”고 겁을 주며 춤을 추게 했다. 아이가 울면서 아빠 지시에 따르자 ‘눈물의 몰카 성공’이란 자막이 함께 나왔다.

한 키즈 채널은 최근 6세 쌍둥이에게 10㎏짜리 대왕문어를 통째로 먹게 했다. 누리꾼들은 성인도 씹기 힘든 음식을 두고 ‘먹방’을 연출한 건 아이를 위한 놀이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운영자인 아버지는 “유아 채널이고 특수 채널인 만큼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실수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리고 영상을 삭제했다.

1990년대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 역으로 큰 인기를 누린 배우 김성은씨(28)는 ‘키즈 유튜버’가 아이 의도와 달리 부모 뜻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며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씨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춘기 때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김씨는 “예전엔 부모들이 자식을 아역 연기자로 키우려고 했던 걸 요즘은 키즈 유튜버로 키우려 하는 것 같다”며 “부모가 바라는 부분을 아이에게 투영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유튜브 같은 미디어가 아동에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아동이 출연하는 콘텐츠 기준에 대한 담론이 부족하다”며 “외국에선 부모가 자녀 일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때 아이 동의를 얻는 문제 등을 두고 논의에 나선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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