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얼굴없는 천사’ 올해도 왔다

전주 | 박용근기자

노송동사무소에 8000만원 쾌척…10년째 선행

“어머니께서 아끼며 모은 돈입니다” 쪽지 남겨

28일 오전 11시55분쯤. 점심시간이 임박했지만 전북 전주시 노송동사무소 직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얼굴 없는 천사의 전화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전북 전주시 노송동사무소 직원들이 28일 ‘얼굴 없는 천사’가 쾌척한 성금 8000여만원을 정리하고 있다. 전주 |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노송동사무소 직원들이 28일 ‘얼굴 없는 천사’가 쾌척한 성금 8000여만원을 정리하고 있다. 전주 | 연합뉴스

“동사무소 옆 세탁소 공터에 가보세요.”

해마다 걸려온 바로 40대 남성, 바로 나지막한 ‘그 분의 목소리’였다. 얼굴 없는 천사임을 직감한 직원이 서둘러 나섰다. 맞았다. 세탁소 공터 화단에 돼지저금통과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5만원권 다발 10개 5000만원과, 1만원권 다발 30개 3000만원 등 모두 8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돼지저금통에도 29만5920원이 있었다. 상자 안에서 쪽지 하나도 보였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추신)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좋은 일에 쓰세요”라는 간단한 메모만 들어있었는데…. 직원들은 “아마도 올해 천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나보다”라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시작된 것은 2000년 4월. 당시 노송2동사무소를 찾은 ‘천사’는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놓고 사라졌다. 이렇게 올해까지 10년 동안 11차례에 걸쳐 전달된 성금은 모두 1억6136만3120원에 이른다.

그러자 그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천사는 스스로를 끝내 드러내지 않았다. 성금을 남몰래 동사무소 옆 화단에 놓고 전화를 걸고는 총총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예년과 견줘 ‘천사’가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도를 넘어선 관심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주시는 동사무소 앞길을 ‘얼굴 없는 천사의 도로’로 정했고, 동사무소 옆 화단에 기념 표지석을 세우기로 하는 등 ‘오버’했다. 또한 모 언론사는 천사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동사무소 앞에서 이틀간이나 ‘잠복’하기도 했다. 올해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천사는 나타났고, ‘익명’도 포기하지 않았다. 성금을 예년의 동사무소 옆 화단이 아니라 이곳에서 20m 떨어진 세탁소 공터를 택했다. 부질없이 내미는 관심의 손길을 끝내 뿌리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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