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 “드디어 오셨네”

박용근 기자

해마다 세밑 감동을 전해온 전북 전주시 노송동‘얼굴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 왔다. 30일 오전 9시53분 전주 노송동주민센터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즈막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얼굴없는 천사였다. 그는 “주민센터 뒤 공원 가로등 쪽 숲속에 돈을 놓았으니 가져가시고 어려운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 주세요”란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급히 달려가 보니 현장에 A4 복사용지용 박스가 놓여 있었다. 박스안에 5만원권 다발 10뭉치와 빨간 돼지저금통이 보였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쪽지도 들어 있었다. 쪽지에는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 간 성금은 5033만9천810원. 지난해 그가 기부한 5천30만4천390원과 엇비슷한 금액이었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이 30일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간 성금을 세고 있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이 30일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간 성금을 세고 있다.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 간 성금박스.

얼굴없는 천사가 놓고 간 성금박스.

천사의 선행은 올해로 16년째, 횟수로는 17번째다. 지금까지 그가 기부한 성금은 4억4764만1560원이다. 최초의 기부자는 초등학생이었다. 2000년 4월 한 초등학생이‘어른 심부름’이라며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동사무소안 민원대에 놓고 갔다. 이후 세밑만 되면 중년 남자의 전화가 주민센터에 걸려왔다. 그때마다 동사무소 인근 어느 장소에는 현금이 든 쇼핑백이나 종이상자가 놓여졌다. 한 해에 2번을 다녀간 적도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아는 사람은 없다. 항상 전화를 걸어 박스위치를 알려준 뒤 직원이 성금을 들고 가는 것만 먼 발치서 확인하면 홀연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 그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잠복취재를 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천사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몰지각한 처사”라며 비판해 무위에 그쳤다.

천사의 선행은 기부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전주시는 천사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쓴 표지석도 세웠고, 천사의 거리도 지정했다.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천사의 뜻을 기리고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했다. 천사의 사랑이 지역의 홀로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을 돕는 또 하나의 불씨로 지펴지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천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연말을 함께 하고 싶어 한다”면서 “그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려는 시도보다 그 분의 뜻을 잘 헤아리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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