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맞으면서 컸다” 일그러진 ‘천륜’ 비극의 ‘그림자’로

박주연 기자

‘악마’가 된 부모, 그들은 왜 자식을 학대하나

ㄱ씨(40)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한 후 집을 나가자 다섯 살 된 아들 ㄴ군을 굶기고 때리기 시작했다. 쌍둥이 중 큰아이인 ㄴ군이 남편을 닮아 무뚝뚝하고 말도 듣지 않는다며 화풀이를 한 것이다. ㄴ군은 결국 영양실조에 걸렸고, 급기야 엄마의 주먹질로 뇌출혈을 일으켰다. 6개월 만에 돌아온 아빠(40)는 아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엄마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아들이 남편과 성격이 비슷해 미워서 때렸다”고 진술했다.

“나도 맞으면서 컸다” 일그러진 ‘천륜’ 비극의 ‘그림자’로

ㄷ씨(35)는 아내와 이혼소송 중인 상황에서 애인 ㄹ씨(36)와 살림을 합쳤다. 큰딸(4)과 막내딸(2)은 급격히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ㄷ씨는 어린 딸들을 달래기는커녕 심한 폭력과 체벌을 일삼았다. 큰딸이 ‘이유 없이 운다’며 발로 걷어차는가 하면 뺨과 허벅지, 엉덩이 등을 손과 발, 회초리로 때렸다. 아이의 몸에 멍이 든 것을 이상히 여긴 유치원 교사가 전화로 자초지종을 묻자 “훈육 차원에서 혼냈다”고 둘러대고 유치원을 옮겨버렸다. 큰딸은 결국 외상성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ㄷ씨는 “큰딸이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쳐 숨졌다”며 보험사로부터 입원비와 치료비 명목으로 보험금 1200만원까지 챙겼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큰딸은 ㄷ씨의 폭행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 맨발 탈출 11살 여아 사건(2015년 12월12일),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2016년 1월15일), 부천 여중생 미라 사건(2월3일) 등 최근 잇따른 엽기적 아동학대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이들 사건은 가해자가 친부모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설날인 지난 8일에도 9살 아들을 비닐봉지로 질식시켜 죽게 한 아버지가 경찰에 체포됐다.

“나도 맞으면서 컸다” 일그러진 ‘천륜’ 비극의 ‘그림자’로

아동학대 가해자는 친부모 비율이 단연 높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그해에 발생한 아동학대는 1만27건에 달했다. 이 중 친부의 학대가 4531건(45.2%)으로 가장 많았고, 친모의 학대가 3211건(32%)으로 그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계모 242건(2.4%), 계부 189건(1.9%), 양부 17건(0.2%), 양모 17건(0.2%) 순이었다. 피해아동의 가족 유형은 부자 또는 모자가정, 미혼부·모 가정, 재혼가정, 동거가정 등 친부모가족 외 형태가 4919건(49.1%)으로 가장 많았다. 친부모가족은 4458건(44.5%), 파악 안됨과 대리양육 형태는 각각 336건(3.4%)과 271건(2.7%)이었다.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2014년 다소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4년 3891건에서 2014년 1만27건으로 늘었다. 10년 새 2.6배나 증가한 셈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왜 친부모가 자기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것일까. 전혀 다른 가해자 특성을 지닌 아동성학대를 제외하고 분석한 강은영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아동학대의 실태와 학대피해아동 보호법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친부모의 자녀학대 동기는 가해자 개인특성(30.7%), 양육태도 및 훈육문제(28.6%), 경제적 문제(16.8%), 양육부담 및 스트레스(13.6%), 부부문제(7.7%) 등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각 지방검찰청 21곳에 보관 중인 2010년부터 2015년 5월까지의 아동학대 사건 572건을 분석한 것으로, 경찰 조사를 거쳐 검찰까지 넘어간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도 맞으면서 컸다” 일그러진 ‘천륜’ 비극의 ‘그림자’로

자녀학대 동기인 ‘개인특성’에는 폭력이나 장애 등 여러 요소가 포함된다. 지난해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보고서를 펴낸 정성국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관은 “자식살해범의 경우 어릴 적 경험한 가정폭력 또는 아동폭력이 성인이 된 후 대물림되면서 처참한 결과로 나타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친딸을 3년4개월 동안 감금하고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한 ‘인천 맨발 탈출 11살 여아 사건’의 아버지도 어렸을 때 계부한테 학대를 당했다는 진술이 공범인 동거녀로부터 나왔다. 어릴 적 학대 경험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채 악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강은영 연구위원은 “친자식을 학대해 검찰 조사를 받은 부모의 72%는 적응 및 행동장애를 갖고 있으며 26.6%는 신체장애 및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과 부천 여중생 미라 사건의 피의자 심리분석을 한 권일용 경찰청 범죄행동분석관의 설명도 이를 뒷받침한다. 권 분석관은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 가해자인 아버지는 장기간 분노를 지속하는 타입의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짧은 순간에 분노를 일으키고 곧바로 자제력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장시간 동안 자제력을 상실하는 타입이라는 것이다. 권 분석관은 남편의 아들 학대를 방임한 친모에 대해선 “의존성향이 매우 높아 남편의 잘못된 훈육방식에 대해서도 암묵적으로 동조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결속력이 약한 가정에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적 영역 안에 이웃 등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개인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불거졌을 때 외부의 조력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천 초등생 사건이나 여중생 미라 사건의 가해 부모가 자녀 사망 후 보인 엽기적 행각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산업화와 핵가족화라는 사회구조의 변화에서 아동학대의 원인을 찾는 분석도 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확대가족 시절엔 조부모나 고모·이모 등 다른 가족이 부모에게 브레이크를 걸거나 지지를 해주고 힘들 땐 양육을 도왔다”며 “하지만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되면서 물질만능주의와 함께 양육에 대한 관심이 희박해지면서 학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관장은 이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봤듯이 불과 28년 전만 하더라도 골목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서로 다 알고 챙겨주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혼가정 등 결손가정 증가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강은영 연구위원은 “이혼 후 아이 양육을 맡은 쪽이 생계유지비와 양육비 등 생활고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녀를 학대하는 비율도 높다”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양육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가난하거나 못 배운 부모가 자녀를 더 학대하는 것은 아니다. 장화정 관장은 “정부의 지원체계 안에 들어와 있는 한부모가정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 대상자 등은 아동학대가 상대적으로 쉽게 드러나지만, 중상류층 가정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수정 교수는 “절제력이나 도덕성은 물론 모성애나 부성애도 누군가를 보고 배워야 하는 것”이라며 “가족 해체가 늘면서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부모가 되는 어른이 많아진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지금도 가출해 거리생활을 하는 청소년이 6만~8만명에 이르지만 이들이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고 훗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교육하는 장치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의 인식도 문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부장적 사고에 의해 부모가 자기 자식을 때리는 것을 재량으로 용인해오는 문화가 잔존해 있지만, 이 같은 학대가 자녀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대받은 아동 대다수는 후유증에 시달린다. 많은 선행연구들은 학대 시작 연령이 낮을수록 성인기에 후유증이 더 심각하고, 애착형성 방해, 도덕발달, 불안감, 행동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강은영 연구위원은 “가정 내 학대를 당한 아동이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신체후유증 외에도 공격적이거나 위축된 극단적 행동을 표출하기도 하고, 강박이나 히스테리, 공포, 우울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부모나 성인에 대한 두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의 피해자인 최모군의 경우도 사건 발생 전인 2012년 같은 반 여학생의 얼굴을 연필로 찌르고 옷에 낙서를 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예방과 피학대아동 보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첫 단계로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개선’을 첫손에 꼽았다. 강은영 연구위원은 “부모 역할에 대한 교육과 함께 지역공동체가 예방 및 조기발견, 신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대당한 아동의 80% 이상이 여전히 학대가 일어난 가정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므로 재학대를 막기 위한 가족지원 서비스도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아동, 보호시설 전전하다 집으로…또다시 학대 아동보호 관련법, 사후 관리·지원 부족 ‘사각지대’

국내에서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는 법제의 근간은 ‘아동복지법’이다. 이 법은 1961년 제정됐다. 2013년 12월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마련됐다. 울산 계모 의붓딸 살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이 특례법은 아동학대를 별도의 범죄로 규정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아동학대가 의심스러운 경우엔 반드시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관련 법령의 보완을 주장한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례법은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허점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동학대 정의와 사후 피해아동 관리 및 지원 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가령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의 피해아동 여동생처럼 가정 내 폭력을 목격한 아동도 정신적 피해자임에도 그런 부분을 세밀하게 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사후 관리 및 지원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것도 버거워 사후 관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김 교수는 “피해아동은 결국 보호시설에 일정 기간 수용되거나 ‘그룹홈’ 등을 전전하는 게 현실”이라며 “괜찮은 보호시설이 부족하다보니 가해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 아동이 또다시 학대를 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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