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으로 맞선 불편한 진실…‘케피아’가 판치는 세상 생생히 목격”

김기범 기자

기획팀, 취재를 마치며

경향신문 ‘毒한 사회 - 생활화학제품의 역습’ 특별취재팀 기자들이 지난 12일 4개월간 ‘취재 캠프’로 썼던 편집국 회의실에서 기사에 등장한 스프레이 제품들을 보며 취재 과정 뒷얘기와 시민·기업·정부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혜인·김기범·이효상·이혜리 기자.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경향신문 ‘毒한 사회 - 생활화학제품의 역습’ 특별취재팀 기자들이 지난 12일 4개월간 ‘취재 캠프’로 썼던 편집국 회의실에서 기사에 등장한 스프레이 제품들을 보며 취재 과정 뒷얘기와 시민·기업·정부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혜인·김기범·이효상·이혜리 기자.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이대로 가면 더 큰 재앙 온다.” 8월1일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와 함께 시작된 ‘毒한 사회-생활화학제품의 역습’ 시리즈가 9월7일 시민 7명의 ‘생활환경 유해물질 노출 회피 실험’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5월부터 4개월간 전문가 100여명을 만난 3부 7편의 장정이었다. 출근 전 12개의 생활화학제품을 접하는 직장인, 아이 둘을 키우며 생활화학제품 81개를 쓰는 집, 독성·발암물질을 품고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스프레이 제품…. 시리즈는 뭣이 독한지도 모른 채 화학제품에 의존해 살아가는 ‘호모케미쿠스(Homo Chemikus)’와 화학물질을 권하는 ‘케피아’(화학·마피아의 합성어)의 세상을 생생히 기록했다. 50년 전 ‘탈리도마이드’ 비극을 겪은 독일에선 선진화된 중독센터와 화학물질관리제도(리치)를 갖추고도 여전히 화학사고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리즈는 모두 편리함에 물들어 있고 정부는 덮고 가기 급급한 한국에서 생활화학제품의 ‘불편한 진실’을 던진 첫 기획 기사였다. 추석 연휴 전인 지난 12일 아쉽고, 독한 얘기가 쏟아진 방담엔 특별취재팀 기자 4명(김기범·이혜인·이혜리·이효상)과 현장을 함께 뛴 수습기자(최미랑)가 참여했다.

■불편한 진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김기범 = 20~30년 후 사람들은 지금 시대를 얘기하며 “와, 그땐 이런 물질도 생활용품에 넣어 썼대. 진짜 용감무식하지 않아?” 이럴 것 같다. 우리가 깨끗하다면 락스물도 마시던 1960~1970년대를 그래픽 했듯이. 과학이 발전할수록 유해물질은 더 밝혀지고 몰랐던 것도 점점 나타날 것이다. 기업이나 정부가 어떤 제품의 유해성 문제가 제기되면 늘 “확실하지 않다” “기준치 이하다”라고 시민들에게 강변하는 것들 말이다.

최미랑 = 시리즈를 하면서 독자들에게 ‘이것만 피하면 된다’고 뚜렷한 지침을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결론은 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포름알데히드였다가 또 어떤 때는 파라벤이었다가. 한 물질이 유해하다고 하면 기업들은 다른 물질을 쓴다고 광고한다. 그건 그 물질이 안전하다는 게 아니라 규제 자체가 없다는 뜻일 수 있다.

이혜인 = 모든 화학물질은 기본적으로 ‘전부 유해해요’라고 인식하고 의심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기획취재 자체는 너무 재밌었는데, 왜 이렇게 기사 쓰기가 어려웠나 모르겠다. 전문가들도 자기 분야 팩트만 갖고 좁혀서 얘기하니까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의 갈증 나는 취재가 반복됐다.

김기범 = 남이 안 간 길을 간 기획이기 때문 아닐까. 지금껏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매체가 없었으니까.

이혜리 = 독일에 다녀와 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다. 선진적인 사회를 면밀히 알고 한국 상황을 보는 것과 한국 상황만 계속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중심이었고, 사람을 중심으로 화학물질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고 있었다. 그걸 보니까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될지도 보였다. 1~5편에 한국 사회 기획이 나갔는데 독일을 먼저 갔다와서 취재와 시리즈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혜인 =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선진국을 먼저 들여다보면 더 깊고 풍부하게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적게 쓰고 안 써도 살 수 있다”

김기범 = 생활화학제품을 안 쓰거나 적게 쓰고 살아 보는 실험(3부 2회)을 한 뒤 샴푸를 안 쓰고 있는데 처음엔 좀 불편했다. 세정력과 상관없이 거품이 잘 안 나는 게 찝찝하더라. 어떤 탈취제·방향제는 아무 쓸모도 없는데 써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화학제품 위험성을 계속 의식하고 살려면 스스로 정보를 다 찾아봐야 된다. 다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불편과 수고로움이 있어야만 나와 가족의 건강을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혜리 = 시리즈 하면서 곰팡이 제거제 3개 중 2개를 버렸다.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을 쌓아놓고 있는 것도 보였다. 샘플은 제조일자도 없는데 나중에 써야지 하고 쟁여놓고 있었다. 이번에 사용할 몇 가지만 두고 나머진 버렸다. 독일 마트를 가 보면 위생에 도움 되지 않고, 위험할 수 있다고 제품에 써 있다. 위험을 알고도 소비자가 선택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한국처럼 알지 못하고 선택하는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이혜인 = 예전엔 자기 전에 아로마 오일을 손목에 발랐다. 마스크팩도 사재기해서 두고두고 쓰고. 기획 하면서 사용을 줄이다 보니 뭔가 허전해지더라. 어쩌면 뭔가를 새롭게 쓰는 게 필요와는 무관한 재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로마도 기분 전환으로 썼다는 걸 알았다. 플라시보 효과처럼 자기만족 하면서.

이혜리 = 어떤 측면에선 사람들에게 불편한 기획이었던 것 같다.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는 익숙한 패턴에 문제 제기를 하는 거였으니까.

이혜인 = 주변에서도 “써서 안 죽어” 그런 반응이 많았다. “나 담배도 피우는데 뭐 어때” 하는 사람도 있고.

이효상 = 사실 생활화학제품은 많이 안 쓰지만 흡연자다 보니 이 기획이 처음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취재하다 보니 인간을 우선하지 않는 인식이 문제투성이 화학물질관리제도의 기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미랑 = 이전에는 유해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좋은 걸 쓰면 되지 않을까’ 했던 것 같다. 돈을 더 주고, 더 안전한 걸 사겠다고 말이다. 가끔 기분 전환이 되기도 했는데, 이제는 위험성을 알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화학물질을 피해 보는 ‘케미-프리’를 실천해 봤으면 한다. 생활화학제품 안 쓰는 실험에 참가해 조금만 노력했는데 변화가 생각보다 컸다.

이혜리 = 이번에 탈리도마이드 기사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공감한 게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갈 길이 멀어요” 이 말이었다. 그게 딱 맞는 말이다. 많은 전문가를 만났지만 그들도 모든 걸 알고 있진 않았다. 앞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된다. 정부도 관심을 갖고 투자했으면 좋겠다.

경향신문 70주년 창간기획 ‘毒한 사회 - 생활화학제품의 역습’ 기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대로 가면 더 큰 재앙 온다’는 1면 프롤로그(8월1일자), 81개 생활화학제품을 쓰고 있는 집을 그린 ‘독 안에 든 호모케미쿠스’ 기사(8월5일자), 화학물질을 권하는 ‘케피아’의 닫힌 세계를 생생하게 담은 증언록(8월26일자), 독일에서 만난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9월1일자)이다.

경향신문 70주년 창간기획 ‘毒한 사회 - 생활화학제품의 역습’ 기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대로 가면 더 큰 재앙 온다’는 1면 프롤로그(8월1일자), 81개 생활화학제품을 쓰고 있는 집을 그린 ‘독 안에 든 호모케미쿠스’ 기사(8월5일자), 화학물질을 권하는 ‘케피아’의 닫힌 세계를 생생하게 담은 증언록(8월26일자), 독일에서 만난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9월1일자)이다.

■“화평법·제도 보완 너무 미진하다”

이혜인 = 화학제품 성분을 더 공개해야 한다. 한국은 기업의 영업기밀이라며 너무 많이 인정해준다. 우리보다 못살고 뒤처진 나라에서도 공개하는데 그 나라에 수출하면서 한국에서만 영업기밀을 주장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혜리 = 결국 신뢰의 문제다. 독일은 유해할 수 있는 제품엔 유해한 물질이라고 써놓은 걸 볼 수 있다. 그걸 써놓으면 독일 소비자는 믿는다. 한국에선 유해하지 않은 물질이 들어 있다고 써놔도, 신뢰가 깨진 상태라 믿을 수가 없다. 전 성분 공개하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다. 독일에선 기업은 정부에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유해성 테스트도 하고, 2차 관리를 하고, 민간단체가 3차 인증·관리를 하면서 소비자는 믿고 사용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

이혜인 = 화학제품 관리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작업장 안전관리를 안 하거나, 자살률이 높은데 방치하는 거나 일맥상통한다. 사람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효상 = 우리가 화학물질 관리를 해 보고자 시도한 게 1990년대 초반이고 가습기 살균제 사고,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런 것들을 거쳐서 2014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산업부는 계속 반대만 했다. ‘기업들 다 망한다’면서. 그런데 제품을 만들어서 이익을 보려면 최소한 안전성을 보증할 능력이 있어야 되지 않나. 기업 사람들 만나 보니 안전하게 제품을 만들라고 강제하는 법률이 없으니까 안전을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더라. 그래서 국가가 완벽한 방어체계를 갖춰야 하지만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으니까 시민사회와도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1대 국회부터 20대까지 국회든, 정부든 발의한 화학물질 관련법안이 70개가 안된다. 그래도 20대 국회에 화평법과 관련해 벌써 4개가 발의됐다. 누더기가 된 화평법은 개정·보완될 대목이 많다.

■“가습기 살균제 수십년 싸워야 할 문제”

김기범 = 생활화학제품 기획을 착안한 기폭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었다. 가해기업 일부는 구속됐고, 국회 국정조사특위가 꾸려지고 청문회도 열렸지만 여전히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이효상 = 반성이라면, 사회 자체가 다 반성을 안 하고 있다는 거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은 옥시도 그렇고, 방치한 정부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가습기메이트에 들어 있던 원료물질을 최초로 개발한 롬앤드하스에서 근무했던 사람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흡입하면 쥐가 죽는 물질이니 쓰면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SK케미칼은 이 정도 이하로 쓰면 괜찮다며 팔았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나 기업윤리가 달랐다. 작은 업체들을 만났을 때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대기업이 쓴 물질들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서 썼다고 하더라. 시장에서 잘 팔리는데, 대기업이 만들었으니 안전하겠지 하고 아무런 검사 없이 작은 기업들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서 판 거다.

김기범 = 기준치 이하면 괜찮다는 사고방식을 기업이나 정부가 사람들에게 주입하는데 과학적인 척하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다. 쥐와 사람이 다르고, 사람마다 민감도가 다른 걸 무시한 거다.

이혜인 = <청부과학>이라는 책에도 나온다. 담배회사들이 초기에 과학을 갖고 논지 흐리기를 많이 했다. 어떤 사람은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리는데 어떤 사람은 멀쩡하다 하면서 보편적으로 위험이 증명 안됐다는 논리로 논지를 흐렸다.

이혜리 = 독일에선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이 수십년 지난 지금 한 달에 800만원 정도씩 받고 있다. 그러면 1년에 1억원이다. 옥시에서 10억원을 주더라도 10년 치일 뿐인데 20년 후에 독성으로 인한 피해가 나타나면 어쩔 것인가.

김기범 = 가해기업들이 지금 피해자들의 전 생애를 고려한 규모의 기금을 만들고, 정부도 돈을 내놓아야 한다. 그 돈으로 새로운 피해자 찾기도 해야 한다.

이혜인 = 독일이 나치를 오랫동안 얘기하고 반성하듯이 한국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100~200년 후까지도 반성하고, 논의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시리즈 도움 주신 분들

고광표(서울대 교수)·고미숙(감이당 연구원)·고영림(을지대 교수)·고정금숙(여성환경연대)·김병윤(여시재 연구원)·김상헌(KIST 유럽연구소 환경안전성사업단장)·김성균(서울대 교수)·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김정수(환경안전건강연구소)·김충용(실험동물센터장)·김형렬(가톨릭대 교수)·문은숙(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효방(한양대 교수)·박동욱(한국방송통신대 교수)·박동진(연세대 교수)·박철원(박사)·백도명(서울대 교수)·송기호(민변 국제통상위원장)·아이잭 신(한국영상학회 이사)·양은경(충남대 교수)·유현정(충북대 교수)·이규홍(안전성평가연구소 흡입독성센터장)·이기영(서울대 교수)·이덕환(서강대 교수)·이덕희(경북대 교수)·이종현(네오앤비즈)·이은주(연성대 뷰티스타일리스트과)·이정훈(서울시의원)·이주홍(녹색소비자연대)·이채원(언론학 연구자)·이혜경(국회 입법조사관)·임종한(인하대 교수)·장재연(아주대 교수)·전병율(차의과학대 교수)·전병학(박사)·전현표(KIST 유럽연구소)·정남순(환경법률센터 부소장)·조경현(영남대 교수)·조용민(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차민석(스페이스리서치)·최경호(서울대 교수)·최예용(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홍윤철(서울대 교수)·국회의원 김삼화·김현권·신창현·서형수·이용득·이정미·이훈·정춘숙, 소비자시민모임, 익명 요구한 전문가·공무원·기업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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