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름없는 피켓’도 선거법 위반…총선넷 1심 벌금형

이혜리 기자

지난해 20대 총선 때 김진태·나경원·최경환 의원 등 당시 새누리당 후보들 사무실 앞에서 “나는 □□□ 안찍어! 너도 □□□ 찍지 마요”라는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 관계자들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에게 벌금 300만원을, 함께 기소된 총선넷 관계자 21명에게 벌금 50만~2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4월25일 총선시민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서울시 선관위 고발과 경찰 수사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지난해 4월25일 총선시민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서울시 선관위 고발과 경찰 수사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들은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4월 6~12일 김진태·나경원·최경환·오세훈·황우여·윤상현 등 새누리당 후보들을 ‘워스트 후보’로 인터넷 투표로 선정하고 이들의 사무실 앞에서 낙선투어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에 넘겨졌다. 누구든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 집회를 개최하거나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 이름이 들어있는 피켓을 들면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총선넷측은 기자회견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집회’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최) 장소가 지하철역 출구 등 통행이 잦은 곳이었고, 참가자들이 인도를 향해 서 짧지 않은 기간 확성장치를 쓰거나 피켓을 들어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회자는 청중의 호응을 유도하고 구호도 제창했다”며 “이런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의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후보자의 이름 없이 창문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형태의 피켓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구멍의 앞뒤에 ‘나는 안찍어’, ‘너도 찍지마요’라는 명백한 반대하는 표시가 있고 피켓을 든 목적·장소, 피켓을 들면서 발언한 내용 등을 종합하면 반대의 대상도 특정이 가능하다”며 선거법 위반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사회자가 구멍 부분에 후보자의 이름이 들어가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발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사진이 촬영돼 배포됐다”며 “구멍 뚫린 피켓도 후보자 반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선거법에 여론조사는 정해진 방법대로 하게 돼있는데 이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의적으로 ‘워스트 후보’ 투표를 시행해 기소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한 투표이기 때문에 애초에 표본 설정 등 선거법 규정을 지키기 어렵고, 일반 유권자들이 봤을 때 객관적·중립적 투표로 보이지 않아 규제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지난해 2월 국회 앞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사진과 함께 ‘청년 구직자의 노력을 비웃는 채용비리 인사가 공천되어선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안 된다고 전해라~!’ 등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때 법원은 이 피켓 시위에 대해 “단순한 의사 개진”이라며 “손팻말을 든 것만으로는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무죄”라고 했었다.

안 사무처장은 선고 직후 “김 위원장은 이름이 적시돼있었는데도 무죄를 선고받고, 총선넷은 이름이 없었는데도 유죄를 받았다”며 “마이크 잡고 발언한 적 없는 단순 참가자까지 유죄를 선고한 것은 통상의 선거법 사건보다 더 중하게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사무처장은 “선거 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투표나 하라는 것이나 다름 없는 판결”이라고 법원을 비판했다.

함께 기소된 정대화 상지대 총장직무대행은 “해석과 다툼의 여지가 있는데도 22명 전원에 대해 유죄 판결한 재판부에 유감스럽다”며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항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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