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왜 홍준표가 아니라 우리를 저격하냐”가 ‘진보’의 질문이라니

오혜진(문화연구자)
[그럼에도, #미투]①“왜 홍준표가 아니라 우리를 저격하냐”가 ‘진보’의 질문이라니

■‘정치적 의지’에 무관심한 정치적 “예언”

호주 출신의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루스 배러클러프는 1920~1980년대 한국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서사를 연구한 책 <여공문학─섹슈얼리티, 폭력, 그리고 재현의 문제>를 썼다.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섹슈얼리티’다. 이 책에서 저자는 ‘벗은 몸, 똥물 맞은 몸’과 같은 ‘여성노동자의 취약한 섹슈얼리티’를 드러냄으로써만 자신들이 ‘노동자’임을 주장할 수 있었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중산층 여대생의 ‘건전’하고 ‘조신’한 섹슈얼리티를 모방하면서도 ‘정상’사회의 성적 규범을 문란케 할 ‘불온한’ 섹슈얼리티의 담지자로 여겨진 ‘여공’들의 불안한 성적 위상 등을 확인한다.


▶관련 기사-‘여공문학’ 펴낸 배러클러프와 책에 등장하는 장남수·석정남이 말하는 ‘여공문학’
▶관련 기사- [2017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책]

이 책에 따르면, 1970~1980년대 여성노동자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예속의 핵심에 ‘성폭력’이 있었음에도 당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서사들 중 ‘성폭력’에 착목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성폭력은 오직 ‘노동해방’이라는 대의명분을 강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비참상’을 묘사할 때나 ‘남성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의 계기로서만 수단적이고 외설적으로 재현됐다. 혹은 아예 재현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쓴 자기서사인 ‘여공문학’은 “급속한 산업화사회의 한가운데 놓인 성폭력이 사회에 공유된 비밀”이라는 점을 누설하고 그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했던 거의 유일한 기록이었다. 공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성폭력, 그에 공모하거나 저항하면서 살아남은 ‘나’의 이야기, ‘거리의 로맨스(성매매)’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과는 다른 계급에 속한 남성과의 로맨스들이 당대 ‘여공문학’에는 빼곡히 적혀 있다. ‘여공문학’이 “자칫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누군가의 고통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임을 알아차리는 “민감한 독자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여공문학’은 여성노동자 당사자들의 가장 강렬한 주체화서사이자 “산업화시대의 외상”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일 수 있었다.

책 <여공문학> 표지

책 <여공문학> 표지

자, 이쯤 말했으면 ‘대체 미투운동이 왜 이렇게까지 들불처럼 번지는가’라는 무지하고도 무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까. 미투운동을 단지 할리우드에서 유래한 외래적 문화의 이식이나 ‘일부 과민한 여성들의 트집 잡기와 부화뇌동’, 정치 “공작”에 이용당하는 타율적 움직임으로 폄훼하는 주장과 “예언”들은 왜 미투운동이 각계각층의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이 다함께 공명하는 하나의 “혁명”으로까지 이야기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 ‘예언자’들이 정말 “큰 그림” 그리는 ‘정치’에 관심 있다면 질문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미투운동이 그런 ‘정치적 자원’으로까지 상상될 만큼 파급력 있는 사회적 의제가 될 수 있었는가’여야 한다. 물론 답은 명백하다. 미투운동은 ‘한국사회에서 성폭력이 여성을 비롯한 성적 약자를 통제하기 위한 규율이자 실제적 폭력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대부분의 한국여성들이 공유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 비밀을 누설함으로써 그것에 저항하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집단적 표현이다. 이 ‘정치적 의지’에 주목하지 않은 채, 대체 어떤 ‘정치적’ “예언”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럼에도, #미투]①“왜 홍준표가 아니라 우리를 저격하냐”가 ‘진보’의 질문이라니

■‘성폭력에는 좌우 없다’가 답?

<여공문학>의 저자가 책을 쓴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서사에는 “성폭력이 코드화되어 있거나 코드화되어 있지 않은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정작 노동계급 공동체 내부에서 성폭력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명확한 분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문학이 풍미한 1980년대는 물론, 노동문학 연구가 ‘한물 간 것’ ‘시효만료된 것’으로까지 여겨진 2000년대 이후의 상황을 떠올려본다면, 노동문학 연구사에서 ‘여성노동자의 섹슈얼리티’ 같은 주제가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꽤 오랫동안 ‘노동해방’을 외쳐온 ‘진보적’ 문학(연구)들에게 ‘성(폭력)’의 문제는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최근 미투사건이 준 충격의 핵심에는 고발된 성폭력 가해자들이 대부분 ‘진보’ 진영에 속한 (것으로 분류된)다는 점이 있다. 자연스레 ‘왜 유독 진보진영 인사에 대한 성폭력 가해 고발이 많은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우선 이 질문을 만들어내고 쾌재를 불렀을 분들의 의도된 기억상실을 위해 짚어두겠다. 자유한국당과 그 전신인 새누리당 인사들의 성폭력이 미투운동과 무관하게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성누리당’이 새누리당의 무수한 별호들 중 하나였음을 모르는 이 나라 시민들은 많지 않으리라. 슬픈 것은, 이 당 인사들의 성폭력 가해 사실이 알려져도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당의 도덕적 기준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는 낮다.

그와 달리, ‘미투운동’이라는 전 세계적인 무브먼트, 특히 ‘충격과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비밀을 폭로’하는 (그것도 ‘고발자의 실명과 얼굴 공개’로 상징되는 ‘진정성’의 표식을 가혹할 정도로 요하는) 실천양식을 수반하는 미투운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진보’ 진영 인사들의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물론 이는 여성학자 권김현영과 정희진의 지적대로 “진보진영에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있기 때문”, 즉 “진보진영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사회의식이 높기 때문에 문제제기도 다른 집단보다 많아서일 수 있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적힌 머리띠를 착용한 채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적힌 머리띠를 착용한 채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그런데 내가 이 글에서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수구진영과 다른 정치적·도덕적 자의식을 가진 것으로 상정되는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 성평등 의제를 다뤄온 태도, 그로부터 비롯된 몰성화된 ‘진보’ 개념, 혹은 도둑맞은 ‘진보’라는 용어의 문제다. ‘진보적·민주적’이라고 자부하는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저지른 성폭력 가해 사실이 고발되자 크나큰 실망과 함께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성평등인식 낮기로는 보수·진보의 구분이 없다’는 범박하고도 원론적인 명제다.

특히 이 명제에 대한 ‘진보’ 진영의 자의적 해석은 매우 인상 깊었다. 이 명제가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수구세력의 수준으로 ‘진보’ 진영의 정치적·도덕적 수준을 격하시키는 것임에도 그로부터 모멸감을 느끼기는커녕, 이를 ‘진보’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식의 자기합리화와 안도의 기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이 나라 ‘진보’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유독 ‘진보’ 세력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불평하는 ‘진보’, ‘진보’ 진영의 성평등인식에 대한 재고와 성찰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는커녕 미투운동이 ‘진보’ 진영의 와해를 도모하는 ‘정치적 공작’에 이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진보’. ‘진정성 있는 진짜 미투’와 ‘공작의 대상으로 동원된 가짜 미투’를 가리는 데 혈안이 된 ‘진보’. 이런 논법이야말로 성폭력피해자 중 ‘동정 받을 만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를 구분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지배규범을 강화시키려는 가부장적 인식론의 산물이다. 또한 이런 논법은 세월호참사 당시 ‘진짜 유가족’과 ‘가짜 유가족’을 구분함으로써 유가족이 전개하는 ‘애도공동체의 정치’를 와해시키려 했던 수구세력의 그것과도 꼭 닮았다.

여기서 상기하게 되는 것은 ‘성평등인식 없기로는 보수, 진보 구분이 없을지 모르지만, 성평등인식이 부재한 자신들을 보존하고 합리화하는 메커니즘은 보수와 진보 간에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위 ‘진보’ 진영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성(정치)’을 사유해온 인식과 태도야말로 오늘날 ‘진보 정치의 젊은 기수’라고 불린 유력 대선후보의 성폭력과, 이를 ‘정치적 공작’이라는 수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호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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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왜 대중이 ‘진보’ 진영의 성폭력 가해 고발에 더 충격을 받는지, 왜 진보진영에서 성폭력 문제가 속출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요지로 답한 적 있다. ‘민주화 이후 ‘진보’ 진영은 도덕적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혀 소수자정치의 갱신된 젠더감수성과 성평등인식 등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을 스스로 성찰하거나 심문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에 대해 혹자는 이런 답변이야말로 김어준 류의 ‘정치공작설’에 포섭되는 것이고, ‘진보진영의 도덕성과 민주화 감각이 심문된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외려 핵심은 ‘성폭력에는 좌우도 없다’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성폭력에는 좌우도 없다’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결론은 대체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어떤 정치값을 가지는가. 어째서 ‘진보정치’는 유독 젠더 어젠다에서만큼은 보수세력의 수준과 ‘다르지 않음’을 겨우 확인하고 자족하는가. ‘왜 홍준표가 아니라 우리를 저격하는가’가 ‘진보’의 질문이라니 창피하지 않은가. 외려 ‘진보’라면 ‘성폭력에는 좌우도 없다’는 명제에 모멸감을 느끼며, ‘성폭력’을 둘러싼 여성대중의 정치적 의지를 ‘진보’ 진영의 어젠다로 급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시대 좌파 리버럴과 ‘진보’

최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전파되는 ‘어용시민론’에서 보듯, ‘진보’ 진영은 줄곧 자신들의 역사를 끝없는 수난과 순교의 역사로 서사화하며 자신들이 늘 ‘도전받고 심문받아왔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 성평등 이슈를 통해 ‘진보’ 진영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급진화한 장면은 한국 정치사상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운동사회 성폭력 고발 100인위 사건’ 이후에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일어났고, 현재 해당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문제적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 교육감 선거에 입후보함으로써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한 진보정당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청년을 오직 ‘이성애자 남성’으로만 상상하는 밴드의 노래를 선거로고송으로 내놨고, “동성애 반대한다” “(여성성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라는 성소수자 혐오발언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현재의 ‘진보적’ 정권에서 나왔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적 판타지를 굳이 책으로까지 써낸 분 또한 현 정권에서 숱한 ‘좌파-리버럴’ 친구들의 비호를 받으며 청와대 요직에 근무 중이다.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정봉주 전 의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정봉주 전 의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치계뿐일까. 문화예술계에서도 그간 ‘진보’의 가치가 몰성적으로 구성돼왔다는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의 지적에는 여전히 방어적이다. 예컨대, 문학권력을 경계하며 한국문학계의 진보적 미래에 대해 사려 깊게 고민해온 평론가 오길영은 <82년생 김지영>이나 <다른 사람> 같은 최근 “페미니즘 소설”들의 문제제기가 지나치게 도식적이라고 일견 온당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이 도식적인 소설들의 대타항이자 이상향으로 상정되는 것이 언제나 ‘진보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작품의 원형’으로 추앙되는 걸작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점이야말로 한국문학계의 ‘진보’ 지식인들이 지닌 ‘진보’에 대한 도식적 인식과 그것의 임계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비단 이 사례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한국문학계가 지향하는 ‘진보문학’의 정수로 규정하는 문학사적 평가가 그간 어떤 도전이나 심문도 허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199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 문학연구자들은 그런 지배적 독해와 정전화에 끊임없이 반론을 제기하며 ‘다른’ 독해를 제시했지만, 주류 ‘진보’ 문학사에 거의 기입된 바 없다.

산업화시대에 동원된 하층계급 노동(자)의 성격을 연구한 페미니스트 문학연구자 이진경의 저서 <서비스 이코노미─한국의 군사주의, 성노동, 이주노동>의 주된 연구대상은 개발독재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진보문학’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난쟁이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자발적인 성적 헌신을 감행하도록 설정된 딸 ‘영희’의 서사를 들어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여성의 성적 희생은 “남성 가장의 가족에게만 바쳐지는 것이 아니며, 남성적 정체성의 노동계급 전체로까지 확대되고, 궁극적으로는 좌파민족주의에 의해 재규정된 남성중심적 민족에게까지 바쳐지는 희생”임을 구명해낸다. 그리고는 이처럼 “좌파 민족주의적 남성주의가 착취당한 노동계급 여성의 성적 노동을 프롤레타리아 민족주의적 혁명의 행위로 만회하는 것은, 사실상 보수적인 국가와 자본의 공모를 흐릿하게 만들면서 돕는 셈”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그의 지적은 한국 ‘진보문학’의 빛나는 성취로 간주되는 정전들의 성정치를 ‘진보’라는 개념의 허구성 혹은 탈구축의 필요성을 사유할 때 주요한 벡터로 고려할 것을 강력하고도 신랄하게 요구한다.

1977년에 개봉한 김추련·장미희 주연의 영화 <겨울여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7년에 개봉한 김추련·장미희 주연의 영화 <겨울여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더욱 흥미로운 것은 1970년대 문학사의 문제작 중 하나인 조해일의 <겨울여자>에 대해 이 책이 보여준 통찰이다. <겨울여자>에서 교양 있는 중산층 집안의 딸로 자란 ‘이화’는 한 남자대학생과의 성관계를 통해 ‘성적 각성’에 이르게 되는데, 그 각성의 내용은 자신의 성적 ‘포용’을 통해 한국의 지친 남성-민중을 위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진경은 <겨울여자>가 이화에게 부여한 “완전한 성적 자유에 대한 주장은, 언뜻 남자들이 그녀를 당시에 서구처럼 한국에서도 성행했던 젊은 여성의 ‘여성해방운동’ 유형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이화의 성적 자유는 그녀의 욕망이나 쾌락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결국 “이 소설에서 남성독자들에게 제공된 이화의 성적·도덕적·종교적 교육의 초상화는, 한국 남성에게 어떤 대가도 없이 개방적이고 자유롭게 자신을 성적으로 허여하도록 각 여성을 변화시키려는, 여성독자들을 위한 사회화의 도구로서 쓰이게 된다”는 것이 이진경의 분석이다.

이런 통찰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성에게 성적 자유를 부여하고는 그것이 한국남성의 쾌락에 복무하도록’ 서사화하는 <겨울여자>의 기획이 오늘날에도 거의 그대로 재연되는 장면들을 무수히 보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지금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참칭해 착취적 성격을 띤 성(적) 관계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수많은 사례들,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가슴을 노출함으로써 정의를 위해 싸우다 감옥에 간 남성정치인을 위로하라’는 기괴한 레토릭을 펼친 ‘나는꼼수다’ 집단의 ‘비키니시위’ 캠페인을 떠올리고 있다. 특히 후자는 일정한 역사적 변증법에 의해 탄생한 역사적 시민모델인 ‘좌파-리버럴’의 젠더가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점, 그것이 지닌 정치적 상상의 임계를 명확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비키니시위론’을 펼친 당사자가 지금의 ‘미투 정국’에서 예의 그 ‘공작예언설’을 펼친 장본인이라는 점도 우연이 아닌 이상,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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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의 진보

‘미투(나도 고발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미투(나도 고발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상의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평등인식과 젠더감수성의 결여를 은폐·합리화하고, ‘성’을 ‘진보정치’의 의제에서 기각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진보’ 진영 특유의 논리와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메커니즘은 역사를 거듭하며 분기·변주된다. 개발독재시대에는 ‘민족·민주·노동’ 운동의 이름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성적 자유’를 표방하는 ‘리버럴’ 레토릭과의 결합을 통해 ‘진보’ 진영은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성적 지배와 착취관계를 승인하고 탈정치화했다.

더구나 최근 우승열패, 적자생존, 능력지상주의 등이 정언명령으로 등장하게 된 신자유주의시대에 ‘진보’ 진영은 성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언어를 장착한다. 그것은 일종의 ‘거래’의 문법을 취하는데, 최근 미투운동을 통해 고발된 대부분의 성폭력 사례에서 ‘성관계’는 안정적인 미래와 기회를 저당 잡힌 청년여성들에게 일종의 ‘거래’의 대상으로서 ‘제안’됐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허위로라도 피해자들에게 ‘일자리’ ‘승진’ ‘데뷔기회’ ‘지면’ 등과 같은 경제적·사회적 ‘자원’ 혹은 ‘보상’을 약속해야 했고, 피해자들의 섹슈얼리티 제공 여부는 곧 그가 속한 노동현장에 대한 애착과 열정, 능력, ‘진정성’ 등에 대한 증거로 의미화되기도 했다. “꽃뱀”이나 “소파승진”처럼 여성을 ‘(공정하다고 상정되는) 시장질서를 거스르고 편법을 동원해 부당이득을 얻으려는 경제동물’로 상정하는 레토릭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이는 숭고하고 거창한 역사적 ‘대의명분’을 내세워 성적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과거의 방식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자율적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임을 입증하라는 요구에 동원되는 대상이자, 적자생존의 법칙이 강요되는 신자유주의시대에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 ‘보상’이 약속되(지만 결코 지켜지지 않)는 ‘거래’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이 모든 (신)자유주의적이고 시장지상주의적인 레토릭이 ‘진보’의 인식론과 양립 불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럽게 결합해 상보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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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역사적으로 ‘진보’는 성적 착취와 무관한 이름이 아니었으며, 늘 당대의 주류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성적 지배와 착취를 승인하고 정당화해왔다. 물론 ‘진보’ 진영이 성정치의 구조를 탈정치화해온 오랜 관행에 대한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간 ‘진보’ 진영의 유일한 문제는 ‘주요모순과 부차모순’ 구분에의 강박, 즉 (여)성 문제를 민족·민주·통일·노동해방 등의 문제에 비해 사소하게 여기는 위계화된 인식론이라고 느슨하고 불철저하게 이야기돼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진보’ 진영의 진짜 문제는 ‘성정치’의 문제를 다른 ‘주요’ 모순에 비해 ‘사소하게’ 여겨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이름으로 지배와 착취의 성정치를 동원하고 승인하기 위한 정치적·문화적·언어적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가동해왔으며, 그러한 기획을 지속적으로 은폐하거나 정당화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투’는 성정치의 관점에서 ‘진보’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기획이어야 하고, 성적 지배를 묵인하고 동원함으로써 자기보존을 꾀했던 일군의 세력이 오염시킨 ‘진보’라는 이름을 탈환하는 기획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내게 ‘미투’는 성적 권력관계의 민주화를 약속·실천하지 않는 세력들을 ‘진보’라고 부르기를 거부하겠다는 뜻, 지금까지 지속된 ‘진보’라는 용어의 화용론적 맥락들을 재검토하고, 그 용법의 자연화를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진보’라는 단어에 작은따옴표를 붙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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