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받는 장애아 보호망 없는 국가

이영경 기자

어린이날 기획 ② 장애아동 학대 방치

일러스트 | 이아름 areumlee@kyunghyang.com

일러스트 | 이아름 areumlee@kyunghyang.com

김두영군(16·가명)은 ‘사랑’과 ‘환대’라는 단어를 알까. 지적장애 1급인 김군은 ‘말’을 하지 못한다. 의성어나 행동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김군이 사랑, 환대와 같은 단어를 모르는 것은 그가 지적장애 1급이어서가 아니라 태어나서 한번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적장애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갖고 있는 김군은 집에서 애물단지이자 폭력의 대상이었다. 김군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고 수시로 김군을 때린 데다 “죽어버려”와 같은 욕설을 일삼았다.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방임 속에 김군의 장애와 문제행동은 더욱 심해졌다.

김군이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처음 들어온 것은 4년 전이다. 김군의 얼굴과 다리에 멍과 상처가 있는 것을 본 이웃이 신고를 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폭력적 행동을 해서 훈육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당시엔 김군 어머니도 아버지의 말이 맞다고 했고, 경찰에 입건되지 않았다.

하지만 1년 뒤, 김군은 얼굴과 옷이 피투성이가 된 채 등교했다. 눈 밑엔 기다란 상처가 선명했다. 두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김군 아버지가 쇠붙이로 김군을 때려 얼굴에 상처가 난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의 편을 들던 어머니는 그제야 ‘진실’을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상습적으로 아이를 때렸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도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버지는 감옥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정폭력쉼터로 갔다. 김군은 발달장애인센터에 2주간 머물렀다. 응급상황에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시설이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김군이 갈 수 있는 곳을 백방으로 알아봤다. 수백 군데 연락을 해서 겨우 지방에 있는 장애인시설에 김군을 보낼 수 있었다.

보호 전문시설 ‘0’…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다

학대받는 장애아, 보호망 없는 국가

장애인시설에서 김군은 안정을 되찾아 갔다. 폭력에 노출돼 있었던 집에서와 달리 시설에선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관심을 기울였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자 공격적인 행동이 많이 호전됐다. 하지만 8개월 후, 시설에선 인력 문제 때문에 더 이상 김군을 데리고 있기 어렵다고 전해왔다.

2년 전, 김군은 어머니와 여동생 곁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가정은 안락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지원해준 집은 열악했다. 한여름을 지하방에서 셋이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했다. 어머니는 김군을 버거워했고,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엔 다니던 학원에도 다닐 수 없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풀어달라고 탄원서를 썼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온 가족은 다시 한 곳으로 모였다.

도돌이표가 그려진 악보처럼 모든 것이 반복됐다. 지난해 세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김군은 가슴에 멍이 드는 등 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가정폭력도 여전했다. 아버지는 감옥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은 집에 남았다. 김군은 갈 곳이 없었다. 김군은 받아주겠다는 시설이 없어서 결국 지난달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김군이 성장하면서 아버지로부터 학습한 폭력성이 나오고, 사춘기에 접어드니 어머니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받아주는 곳이 정신병원밖에 없었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사가 말했다. 김군은 병원에 길어야 2~3개월 입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김군은 어디로 가야 할까. 아무도 답해주지 못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도, 국가도, 그 누구도.

■ 국가가 방치한 존재, 학대 장애아동

“아동은 모든 형태의 학대와 방임, 차별, 폭력 등 어린이에게 유해한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보호의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 이 밖에 생존권·발달권·참여권을 4가지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989년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고, 한국도 1991년 비준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학대받는 아동을 정부가 책임지고 보호할 체계를 갖출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2016년 아동학대 신고는 2만9674건이고, 아동학대로 판단된 경우는 그중 1만870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방치된 존재가 있다. 바로 학대받는 장애아동이다. 학대를 당한 장애아동은 2016년 기준 690건으로 전체 아동학대 가운데 3.7%를 차지한다. 전체 아동 가운데 장애아동 비율이 0.8%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장애아동의 학대율은 일반 아동에 비해 매우 높다. 하지만 이들은 아동보호시설에서도, 장애인보호시설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오갈 데가 없다. 현재 학대 피해 장애아동을 위한 전문 보호시설은 0곳이다. 그 결과 10명 중 8명의 학대 장애아동이 보호시설을 찾지 못해 학대하는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장애아동 학대 재신고율은 2015년 기준 28.5%로 비장애아동의 재신고율 12%의 두 배가 넘는다.

“학대 피해 장애아동은 사회안전망 시스템에서 아예 보이지 않는, 국가에서 방치하고 있는 존재 같습니다.” 김은정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장은 말한다. 장애와 아동, 모든 약자성을 모아놓은 것 같은 장애아동은 학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국가 시스템 안에서 방치돼 있다. 그 결과 생존권, 발달권까지 박탈당하고 있다.

학대 장애아동들 오갈 데가 없다
학습한 폭력성으로 병원·보호시설에서 쫓겨나기도
10명 중 8명 다시 집으로 폭력 굴레…재신고율도 낮아
국가조차도 ‘무관심’…피해 아동 안전망에서 사라져

■ 오갈 데 없는 학대 장애아동

김군의 경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시설과 병원을 전전하다 오갈 곳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 또다시 학대를 당하고, 다시 신고돼 시설과 병원을 전전하는 것이 학대 피해 장애아동이 성장하는 방식이다.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학대아동이 발생하면 그 지역에서 아이를 보호할 환경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장애아동은 전국적으로 시설을 알아봐도 자리가 없다”며 “학대가 이뤄지는 원가정으로부터 분리·보호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대당한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 긴급히 보호해야 할 경우 법원에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해 아동을 시설에서 보호할 수 있지만, 장애아동의 경우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하기도 어렵다. 보낼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커버스토리] 학대받는 장애아 보호망 없는 국가

이소영양(12·가명)의 경우가 그렇다. 이양은 지적장애 2급에 ADHD이다. 이양은 어릴 때부터 공격적인 행동을 많이 보였다. 이양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때리는 것으로 이양의 행동을 다스렸다. 두 번째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 이양의 앞니는 부러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양은 학대아동 일시보호 시설에 머무르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첫 번째 병원에서 이양을 수용하기 힘들다고 해서 병원을 옮겼다. 치료와 보호가 가능한 장애인시설을 찾아 한 시설에 입소했으나 일주일 만에 퇴소했다. 이양의 공격적 행동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이양은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이양의 상담사는 “이양의 어머니는 양육기술도 없고, 학대 안 할 마음도 없다.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온 것만도 서너 번이다. 집에 보내면 안되는 걸 아는데 집밖에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ㄱ관장은 “학대 장애아동을 보호할 곳을 마련해달란 얘기를 수년간 해왔지만 아직까지도 반영이 안되고 있다. 장애아동은 학대가 잘 드러나지도 않고, 사회적 편견과 무시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장애아동이 여아인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들은 성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ㄱ관장은 “친부뿐 아니라 동네 아저씨, 또래로부터 성폭력을 많이 당한다”며 “지적장애가 있으면 성폭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3급인 박영지양(15·가명)은 이혼한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지 않자 또래와 어울리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박양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후 친아버지에게 맡겨졌다가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가출해 청소년 가출 패밀리와 어울리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다 탈출했다. 박양은 정신병원에 재입원했지만 부모가 양육을 거부해 청소년 성매매 피해자 시설로 들어갔다.

■ 학대는 장애를 심화시킨다

“장애아동 60%가량이 지적장애예요. 아동학대 후유증 연구를 보면, 아동이 학대를 받으면 뇌발달이 더뎌지면서 지적장애를 후천적으로 앓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경기도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말했다.

학대는 아이가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발달권마저 빼앗는다. 2016년 법무부가 펴낸 <아동학대가 피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 및 후유증 연구>를 보면 학대를 당한 아동의 평균 지능점수는 83.2로 85 이하가 53.6%를 차지했다. 학대당한 아동은 반항·충동·공격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고, 장애아동의 경우 과잉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21.7%로 비장애아동(8.5%)보다 2.5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공격적 행동을 ‘도전적 행동’이라고 부른다.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쓰는 공격적 행동을 일컫는데, 스트레스를 받거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하는 행동이다. 떼 쓰는 아이의 행동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훈육하면 떼쓰는 행동을 고치는 게 가능하듯 도전적 행동도 개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의 도전적 행동은 ‘교육 실패’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군과 이양은 둘 다 도전적 행동의 수위가 높았다. 김군은 활동보조인과 주변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양은 보호시설에서 용변을 주변에 바르거나, 샴푸를 마셔버리는 등 문제행동을 일삼아 결국 시설에서 쫓겨났다. 둘 다 성장과 함께 도전적 행동도 심해졌고, 부모는 때림으로써 이들의 행동을 통제하려 했다. 김군을 담당한 상담사는 “아이가 태어나서 욕구가 받아들여진 적이 한 번도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학습하면서 공격성이 더 커진 것 같다”며 “장애아동의 특성에 맞는 치료와 교육이 이뤄진다면 아이들의 행동이 개선될 수 있지만 그런 시스템이 없는 가운데 기피하는 존재가 된다”고 말했다.

ㄱ관장은 “장애인시설이든 병원이든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치료·훈련이 전반적으로 제공되는 시설이 없다.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정신과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집에 왔다가 다시 입원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성장하는 아동기에 폐쇄된 병동에 있으면 아동 입장에서는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루기 까다로운 장애아동이 ‘시설-정신병원-집’을 떠도는 가운데 이들이 발달하고 성장할 기회는 없어진다. 학대와 방치 속에 아이들의 삶과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잠재능력마저 빼앗는 폭력
지적장애 여아의 경우엔 성폭력당해도 인지조차 못해
학대받을수록 뇌발달 더뎌지며 ‘공격적 행동’ 높아져
반복되는 폭력…아이들 ‘삶·미래’ 송두리째 집어삼켜

■ 학대 장애아동 보호시설 전무

학대 장애아동을 위한 시설을 문의하기 위해 정부부처에 연락했다. 장애인시설은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아동시설은 아동권리과에 문의해야 했다. 황화성 전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은 “장애아동은 아동복지와 장애인복지 사이에서 다중으로 차별받고 소외되고 있다”며 “국가는 학대와 폭력 등에 노출된 장애아동을 보호할 책임이 있지만, 학대 피해 장애아동은 아동학대 지원체계 내에서 주류화되지 못해 이들에게 적절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의 학대 피해 아동을 일시적으로 보호해주는 쉼터는 60곳, 학대 장애인을 일시 보호해주는 시설은 7곳이다. 학대당한 장애아동을 전문적으로 보호해주는 시설은 한 곳도 없다.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학대 장애아동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다.

“장애아동을 응급상황에서 보호할 수 있는 전문 시설이 한 곳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말했다. 그는 “비장애아동 시설에선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아이들을 봐야 하기 때문에 거의 일대일 돌봄이 필요한 장애아동을 따로 돌볼 여력이 없다. 장애인시설은 성인 위주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돌보기 어려워 아이들이 배제되는 측면도 있다”며 “아동복지법은 학대로부터 보호해야 할 아동이 발생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들을 보호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은 아이의 장애 특성에 맞는 치료·보호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상태가 심각한 아이들을 보호해 줄 학대 장애아동 쉼터를 마련하고, 장애가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일반 시설에서 비장애아동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장애에 맞는 치료와 교육, 훈련이 가능한 전문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와 아동학대가 만나는 접점에 복지의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에서 약자 중 약자인 장애아동이 오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아동 가운데 권리가 최하위에 있는 아동이 장애아동인 것 같아요. 가장 피해를 많이 받는 아이들을 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거죠. 학대받는 장애아동을 위한 인프라가 조금이라도 구축되면 좋겠습니다.” ㄱ관장이 씁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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