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 위반하면 ‘징역형’까지···가정폭력 처벌 강화한다

이혜인 기자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이 합동으로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윤중 기자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이 합동으로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대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윤중 기자

앞으로 가정폭력 가해자가 접근금지조치를 위반하고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만들어진다. 여성가족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관련 부처들이 27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보고했다.

대책은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접근금지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은 가해자가 법원·경찰이 내린 접근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어길 경우에 과태료 처분을 받는 것에 그치고 있으나, 앞으로는 징역이나 벌금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가정폭력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한다. 경찰은 가정폭력 사건을 다룰 때 ‘범죄유형별·단계별 가정폭력 사건 처리지침’을 따라 처리해야 한다. 가정폭력 신고이력 보관기간은 1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가정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범행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접근금지 범위를 대폭 넓히기로 했다. 현재는 접근금지 대상이 피해자의 거주지와 직장 등 특정 장소로만 지정되는데, 앞으로는 피해자나 그 가족 등 특정 인물 자체에 접근하지 못하게끔 제도가 바뀐다. 가해자가 자녀를 만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범죄를 막기 위해 가해자의 자녀 면접교섭권도 제한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도 보완한다. 여가부 등은 내년부터 3~4개 지역에서 가정폭력 피해자 자립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보호시설에 머물러야 하는 피해자에게는 1인당 500만원의 자립지원금을 내년부터 지급할 예정이다.

■ 접근금지 범위 넓히고 처벌 강화

정부가 27일 내놓은 가정폭력 방지대책은 지난달 22일 서울 강서구에서 김모씨가 전 부인을 흉기로 찔러서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나온 것이다. 전 부인과 함께 김씨의 위협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온 딸들은 “경찰에 아빠를 신고해도 두 시간 만에 집에 돌아오니 소용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법원에서 김씨가 전 부인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접근금지명령을 내렸으나, 김씨는 “위반해도 과태료 500만원만 내면 된다”며 전 부인과 딸들을 계속 위협했다.

이번 정부 대책은 김씨처럼 가족을 여러차례 폭행하고, 주변을 맴돌며 위협하는 범죄를 막는 데 주력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를 위반할 경우 현행 과태료 처분에서 징역 또는 벌금으로 형사처벌 수위를 높이고, 접근금지 범위를 피해자 거주지와 직장 등의 특정 ‘장소’로만 규정했던 것을 피해자나 피해자의 동거인 등 특정 ‘개인’으로 변경했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경찰관이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하거나, 피해자와 긴급 임시격리조치를 하게 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김항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과장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더라도 경찰이 보기에 재범 위험성이 있으면 현장에서 긴급임시격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남편일 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한 집에 계속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연 500만원의 자립지원금을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내용도 대책에 포함됐다.

■ 문제는 국회…‘법’이 바뀌어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비인권적 폭력행위가 ‘가족유지’라는 명목으로 합리화되던 시대를 끝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피해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단체들은 ‘당장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그동안 요구해온 접근금지 대상 변경 등이 담겼지만 법이 바뀌기 전엔 현장에서 적용될 수 없는 것들”이라며 “정부가 가정폭력에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적용할 수 없고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 대부분은 국회에서 가정폭력처벌법이 개정돼야만 실시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은 경찰이 가정폭력 사건 처리지침을 만든다는 것, 피해자 상담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김현원 여성가족부 권익보호과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 위주로 대책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은 18건이나 된다. 여가부는 “개정안이 빨리 통과될 경우 올해 안에 시행할 수 있는 대책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에도 국회의 의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 ‘가정 유지’ 치중한 법 조항 등 ‘핵심’ 안 건드려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 조항’ 등 근본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은 대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가정폭력처벌법 1조에 나오는 법의 목적은 ‘피해자 인권 보호’가 아닌 ‘가정 유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현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목적 조항을 바꾸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데도 이번 대책은 목적조항에 대한 논의는 담지 않았다.

폐지 요구가 계속돼온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도 일부만 수정됐다. 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성실하게 상담받는 조건으로 검사가 아예 기소를 유예하는 이 제도는 가정폭력 재범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돼왔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피해자 지원에서도 500만원 자립지원금보다는 임대주택 제공 등 주거안정성을 확보해주는 쪽으로 구체성을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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