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가정폭력 대응 때 ‘반의사불벌죄’ 매뉴얼 바꾼다

선명수 기자

피해자들, 보복범죄 공포로 처벌 요구 안 하는 경우 많아

재범 위험 높다고 판단되면 가해자 분리·형사 처벌 가닥

지난해 11월26일 서울 강남의 한 다세대주택 앞에서 20대 여성이 이혼조정 중이던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살해됐다. 사망 두 달 전에도 이 여성은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경찰에 신고했지만, 남편은 처벌받지 않았다. 보복을 우려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말 때문이었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전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성도 2016년 흉기를 든 채 자신을 협박한 전남편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다. 이 남성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무시하고 전처 주변을 맴돌았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었던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초기 대응 매뉴얼이 바뀐다. 보복 범죄에 대한 공포로 가해자를 신고한 뒤에도 처벌을 요구하지 못하는 가정폭력 범죄의 특성과 재범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재범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사건을 수사하는 방향으로 가정폭력 현장 처리 지침을 마련할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형법상 폭행과 협박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없는 사건들은 형사 조치하지 않고 현장 종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재범위험성조사표를 통해 재범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접근금지 등 긴급임시조치를 내리고 학대예방 경찰관이 피해자에게 재차 연락해 다시 의사를 확인하는 등 ‘범죄 유형별·단계별 가정폭력 사건 처리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현행범 체포 요건이 되면 가해자를 현행범 체포하고, 현장에서 피의자 신병 확보가 되지 않으면 ‘사건발생 보고’로 지구대가 경찰서 여성청소년 수사팀에 연계해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가정폭력 유형과 상황별로 구체적인 처리 지침을 마련해 내달부터 서울 3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하고, 개선점을 보완해 전국으로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느슨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재범위험성조사표’ 역시 조사 항목들을 구체화하고 일선에서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개선한다.

강서구 주차장 살해사건처럼 가해자가 경찰의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한 경우 일시적으로 유치장에 유치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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