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키우는 소나무…침엽수가 재해에 취약한 숲 만든다

배문규 기자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 이틀째인 5일 오전 속초시 한화콘도 골프장 인근에서 육군 8군단 소속 장병들이 잔불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 이틀째인 5일 오전 속초시 한화콘도 골프장 인근에서 육군 8군단 소속 장병들이 잔불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4일 강원 산불은 건조한 날씨 탓에 메마른 강원 영동 지방에 태풍에 버금가는 ‘양간지풍’이 불어들면서 대형 화재로 번졌다.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은 소나무였다. 강원도 산림에 많은 소나무는 테레핀이라고 하는 기름 성분이 20%를 차지해 불이 오래 잘 타고, 가벼운 솔방울에 불이 붙으면 바람을 타고 수백m를 날아가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해마다 소나무 등 침엽수가 대형 산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으로 복구 과정에서 활엽수 비중을 늘려 산불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산림청의 ‘2018 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에서 산림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은 강원도로 전체의 22%를 차지한다. 2015년 기준 강원도의 침엽수림은 43만6591ha(헥타아르)로 전체의 31% 정도이지만, 실제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인 혼합림을 합치면 60%에 이른다. 침엽수 중에는 소나무가 24만9402ha를 차지한다. 특히 이번 산불 피해의 지역의 80~90%는 원래 소나무 등 침엽수가 밀집한 곳이다. 지형적 요인 외에도 애초에 불에 나면 크게 번지기 좋은 조건인 셈이다.

한국의 산림은 재해에 취약한 구조다. 과거 국토 녹화 사업을 벌이면서 소나무, 낙엽송, 리기다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로 단순 조림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 침엽수는 척박한 땅에도 잘 정착하고 성장 속도가 빨라서 숲을 만드는데는 좋았지만, 산불 위험을 키운 셈이다. 침엽수는 뿌리가 수평으로 뻗어 산사태에 취약하고, 재선충병 등 각종 병해충에도 약하다.

경제적 이유로 소나무를 심은 것도 있다. 식용 버섯 중 으뜸으로 치는 송이버섯이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기 때문에 당장 소나무가 사라지면 송이 채취 농가의 생계가 막막해진다. 이 때문에 강원도에서 산불이 난 뒤에는 송이밭 복원이 주요 과제다. 불이 난 뒤에도 다시 소나무를 심게 되는 것이다.

7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야산들이 산불로 검게 그을려 있다.    | 연합뉴스

7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야산들이 산불로 검게 그을려 있다. | 연합뉴스

근본적으로 산불 등 각종 재해에 잘 견디는 건강한 숲을 만들기 위해선 산림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법은 활엽수림을 늘리는 것이다. 상수리나무나 참나무 같은 활엽수들은 물을 많이 머금고 잎이 넓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에 잘 버틴다. 특히 화재가 잦은 겨울과 봄에는 나무에 잎사귀가 없기 때문에 큰 불이 번지지 않는다.

1985년 50%를 넘겼던 침엽수림 비중은 2010년 40% 까지 떨어지고, 활엽수림은 같은 기간 18%에서 27%로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침엽수림의 조림 비중이 높다. 2015년 기준 수종별 조림 면적을 보면, 강원도에는 침엽수를 2544ha 심었고 소나무가 1036ha를 차지했다. 활엽수는 1292ha로 침엽수의 절반이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근본적으로 지역적 특성에 맞춰 활엽수와 침엽수의 비율을 적절히 안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숲을 조성하는데 30~40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단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경북 포항부터 강원 고성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지대에서 소나무가 띠처럼 마을을 둘러싼 곳이라도 소나무를 제거하고 활엽수를 심어 내화수림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숲은 사유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하고, 법적으로 이격거리를 지정하는 등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