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당근 김치’…러시아풍 노래방…서로 나누며 파티 즐기는 거리

송윤경 기자

인천 밀집촌 ‘함박마을’

2017년부터 아들딸과 함께 인천 함박마을에 거주 중인 차 이고르·방 따찌아나씨 부부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함박로에서 포즈를 취했다.

2017년부터 아들딸과 함께 인천 함박마을에 거주 중인 차 이고르·방 따찌아나씨 부부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함박로에서 포즈를 취했다.

2017년부터 대거 모이기 시작해
마을 주민의 절반 가까이 고려인
한국말 배우는 고려인문화원 생겨
마을 곳곳 식료품점·식당들에는
러시아·중앙아시아의 풍토 섞여

“지금부터 러시아말 하면 안돼.”

지난 15일 오후 4시, 인천 연수구 연수동 함박마을의 고려인문화원에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고려인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이 한창이었다. 고학년과 저학년이 함께 모여 ‘빙고 게임’을 했다. 두 글자로 된 과일과 동물, 교실 내 물건 이름 16개를 각자 적기로 했다. “선생님, 이거 써도 돼요? 자…장문?”이라며 창문을 가리키거나, “필토?” 하면서 필통을 들어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어느 새 다시 러시아어가 흘러나온다. 디아스포라연구소와 고려인문화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박봉수 원장(56)이 몇 차례 “러시아말 안돼” 하고 주의를 준다. 중학교 3년생인 장 아나스타샤양(15)은 이 수업의 ‘통역 조교’다. 아이들이 러시아어로 복잡한 질문을 하면 장양이 박 원장에게 통역을 해준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고려인은 약 6000명. 그중 대다수가 연수동의 함박마을에 모여 산다. 함박마을의 전체 주민 절반에 이르는 이들이 고려인이다. 이곳은 고려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마을 중 한 곳이다. 약 20년 전 구획이 반듯한 신도시로 조성된 이 동네는 함박로가 곧게 뻗어있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거리는 깨끗하고 조용해 신도시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인천 고려인문화원에서 고려인 초등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는 모습.

인천 고려인문화원에서 고려인 초등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는 모습.

함박마을에 고려인이 대거 모이기 시작한 시점은 2017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수도권 내 고려인 최대 밀집 지역은 ‘땟골’이라 불리는 경기 안산시 선부동이다. 이곳에는 2010년 만들어진 ‘고려인너머’라는 고려인지원 시민단체가 있다. 하지만 함박마을에 고려인이 지난 2년간 폭발적으로 늘면서 ‘고려인너머’의 도움으로 이곳에도 ‘고려인문화원’이 생겼다. 박 원장과 고려인 차 이고르씨(41)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고려인 밀집도가 높은 곳이다보니, 함박마을에는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와 식당, 빵집이 거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에서, 1937년부터는 중앙아시아의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살아온 고려인들의 식문화엔 한민족의 전통과 함께 각 지역의 풍토가 녹아 있다.

월세 비싸도 보증금 없는 곳 많아
고려인들 모이는 데 긍정적 작용
아이들 안심하고 키울 수 있도록
자체 순찰대 만들고 가로등 설치
지난해 대비 범죄율 70% 낮아져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가게는 반찬과 빵, 치즈 등을 파는 식료품점이다. ‘당근김치’라고도 불리는 당근채 무침은 어느 식료품점을 가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인들이 러시아에서 당근채로 김치를 담가 먹은 데서 유래한 반찬이다. 식료품점에 놓인 빵은 썰지 않은 채로 판다. 주식으로 먹는 빵이기 때문에 밀도가 높고 딱딱하다. 호밀식빵은 그 단단함이 가벼운 벽돌을 연상케 했다. 실제로 러시아식 호밀빵은 다른 지역보다도 호밀 함량이 높다.

냉장고에는 돼지고기·쇠고기 소시지와 치즈가 진열돼 있다. 3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장 아나스타샤양은 “한국에 와서 접한 떡볶이, 냉면, 제육덮밥도 좋아하지만, 햄(소시지)과 치즈만큼은 고려인 가게에서 사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했다. 치즈와 햄·소시지류는 주로 러시아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진열장의 맨 위층엔 다양한 보드카가 놓여있다. 고려인들은 소주보다는 주로 보드카를 마신다고 한다. 해바라기씨와 해바라기씨로 만든 과자도 식료품 가게의 인기상품이다.

고려인의 빵집에서 팔고 있는 고려인 음식 베고자(돼지고기, 양파 등을 넣은 큰 만두)

고려인의 빵집에서 팔고 있는 고려인 음식 베고자(돼지고기, 양파 등을 넣은 큰 만두)

‘레표시카’라는 빵집에선 우즈베키스탄 방식으로 화덕에 굽는 빵 세 종류를 판다. 지름이 약 30㎝ 남짓으로 가운데가 오목한 빵의 모양은 같지만 우유의 함량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뜯어 먹어보니, 처음엔 딱딱했지만 두 세번 씹다보면 금세 물렁해져 마치 녹는 듯 식도를 넘어간다. 맛은 슴슴했다.

‘레표시카’는 러시아어로 납작하고 둥근 빵을 의미한다. 차 이고르씨에 따르면 이 빵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오비논’ 혹은 ‘바뜨논’으로 불린다. ‘레표시카’의 신 알렉산더씨(55)가 갈색 종이봉투에 빵을 하나 담아 내밀었다. 값을 치르려 하자 차 이고르씨가 말했다. “어른이 주시면 받는 거예요.” 신씨도 ‘그냥 가져가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차씨는 “어린 시절, 우즈베키스탄에서 시장에 가면 고려인 상인들이 고려인 아이들에게 초콜릿 같은 걸 그냥 주곤 했다”면서 “그때 ‘어른이 주시면 받는 거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며칠 후 ‘레표시카’를 또 찾았을 때에도 신씨는 “이 빵은 안 먹어봤지?” 하면서 다른 종류의 빵을 내밀었다. 신씨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조선말’을 조금 배웠다고 한다.

소고기 요리를 파는 음식점에 들렀다. 두 명의 고려인 남성이 레표시카와 유사한 모양의 빵과 소고기국밥을 함께 먹고 있었다. 식당에선 러시아 주스와 보드카도 판다. 홀에서는 러시아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식당 직원인 박 스베틀라나씨(20)는 지난해 2월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한국에 왔다고 한다. 박씨는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지만 일하는 데엔 지장이 없다. 주로 고려인이나 우즈베키스탄인들이 고객이기 때문이다. 박씨가 있는 식당뿐 아니라 여느 고려인 가게를 가도 직원들은 러시아어로 손님을 맞는다.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을 보여주는 신 알렉산더씨.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을 보여주는 신 알렉산더씨.

고려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노래방에 갔다. 간판이 따로 없는데도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노래 책자엔 온통 러시아 노래뿐이다. 노래방의 고려인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고려인들은 주로 러시아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고려인들은 파티를 즐긴다. 고려인문화원의 박 원장은 지난 3월8일 저녁 고려인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빽빽하게 들어찬 여성 손님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날은 ‘세계여성의날’이었다. 한껏 차려입은 고려인 여성들이 여성의날을 기념하기 모여든 것이다.

함박마을의 월세는 30만~45만원으로 그리 싼 편은 아니지만, 보증금이 없는 곳이 많다. 이런 조건이 고려인들이 모여드는 데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인천에서 오래 살아온 박 원장에 따르면 고려인 이전에는 이곳에 주로 중국동포, 중앙아시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았다. 낯선 이들이 많은 탓에 한국인들은 함박마을에 들어서려 하지 않았다. 고려인문화원에서는 고려인 20여명을 모아 자체적으로 ‘순찰대’를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 마을을 둘러보고 쓰레기를 줍는다. 연수구청에서도 컴컴한 골목에 가로등을 추가로 설치했다. 박 원장은 “고려인들에게 ‘마을에 범죄가 있으면 아이들도 안심하고 키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설득하면서 동네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함박마을 통장들은 지난주 모임을 갖고 박 원장을 초대해 ‘고려인의 역사’ 강의를 들었다. 차 이고르씨에 따르면 이곳 부동산중개소 사무실에서는 고려인 직원을 채용해 ‘통역’ 역할을 맡기기도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과 고려인,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최근 함박마을의 범죄율은 지난해 대비 70% 낮아졌다. 지난 20일 오후, 다시 찾은 함박마을 거리 한쪽에 어린이집 차량이 도착했다. 긴 머리를 화려하게 땋은 아이를 내려준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 어머니에게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이 머리, 어머니가 해주신 거예요? 너무 예뻐요”라고 말을 건넸다. 한국말을 잘할 줄 모르는 여성은 수줍게 웃었다.

<고려인 아버지의 삼촌·고모를 찾습니다>

고려인 김엘라씨가 보내온 아버지 김상니씨의 사진. 엘라씨의 아버지의 형제자매를 찾고 있다. 김엘라씨 제공

고려인 김엘라씨가 보내온 아버지 김상니씨의 사진. 엘라씨의 아버지의 형제자매를 찾고 있다. 김엘라씨 제공


“도라지~ 도라지~ 백 도라지~”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 선부동의 카페 ‘우갈록’에서 만난 고려인 김엘라씨(63)는 한국어는 못하지만 아버지가 즐겨 부른 노래는 기억한다면서 ‘도라지 타령’의 한 소절을 불렀다. ‘우갈록’은 ‘모퉁이’라는 뜻으로 고려인 지원단체 <고려인 너머>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한국에 온 엘라씨는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입국한 딸 내외가 일하러 간 사이 손녀 둘을 돌보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한국에 온 후 그는 농장에서 평생 고생만 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졌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고향 얘기를 참 많이 했는데, 우리는 한국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건 아버지 꿈에나 나오는 얘기지’ 하고 말았어요. 그때 자세히 적어놓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돼요”

그는 기자에게 아버지의 형제·자매를 찾고 싶다고 했다. 엘라씨는 아버지 김상니씨가 남겨놓은 메모를 갖고 있다. ‘19세 때 군대에 강제징집되었다가 러시아군으로 편입됐고 러시아에서 결혼했다’는 내용이다. 김상니씨가 우즈베키스탄 농장에서 일한 것은 1950년 즈음부터라고 한다.

“삼촌, 고모가 어디엔가 살 텐데 죽기 전에 보고 싶어요” 김엘라씨가 기자에게 보내온 그의 아버지 김상니씨의 사진과 출생지 등을 싣는다.

 이름 : 김상니
 출생 : 1926년 혹은 1927년
 출생지 : 경남 밀양
 부모님 : 아버지 김주리, 어머니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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