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인권교육'이 건학이념에 어긋난다고요?

심윤지 기자

연세대는 지난 6일 “온라인 인권 강좌로 연세정신을 배운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2020년부터 학부 신입생 전원에게 ‘연세 정신과 인권’이라는 온라인 필수 과목을 이수하게 해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체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 전경. 연세대 홈페이지 갈무리

연세대 신촌캠퍼스 전경. 연세대 홈페이지 갈무리

그런데 최근 이 강의가 ‘반동성애’를 내건 보수·개신교 단체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연세대가 건학 이념을 무시하고 기독교 가치에 어긋나는 무분별한 인권교육을 의무화하려 한다”는 반발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는 당연한 권리이자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해야 한다는 개념인 인권이 어쩌다 공격 대상이 됐을까요.

‘연세정신과 인권’은 2020년부터 신입생 필수 교양 과목으로 지정되는 1학점짜리 온라인 강의입니다. 총 15명의 교수가 13주에 걸쳐 역사·사회정의·젠더·아동·장애·노동·환경·난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연세대에 따르면 이 강의는 1년전부터 사전 기획됐고, 2019년 2학기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거칠 예정입니다. 강의 영상 역시 촬영을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개신교 단체들은 강의 주제 중 ‘젠더’와 ‘난민’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문제삼습니다. ‘연세대를 사랑하는 국민 모임’은 지난 13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연세대 건학이념을 무시하는 젠더·인권교육 필수화 웬말이냐’라는 집회를 열고 “학생들이 극단 페미니즘과 감상적 난민포용 교육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적 성을 일컫는 ‘젠더’ 개념이 ‘동성애 옹호’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결혼제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혐오세력의 오랜 논리 역시 되풀이됐습니다.

연세정신과 인권 커리큘럼.

연세정신과 인권 커리큘럼.

‘인권과 젠더’ 강의를 맡은 김현미 교수는 이러한 반발이 “구체적인 수업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비난과 낙인찍기”라고 말합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30분 분량의 강의는 유엔이나 학술 영역에서 사용되는 ‘젠더 폭력’ 개념을 다룹니다. 사회적 성으로서 ‘젠더’ 개념이 탄생하면서 여성들이 사적인 영역에서 겪던 폭력을 ‘인권 침해’로 보는 인식이 생겨났음을 짚고, 일상에서의 성폭력·성차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연세대 역시 이러한 강의가 ‘진리와 자유’라는 건학 이념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연세대는 논란 이후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보호하는 일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품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살아가려는 기독교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한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학교는 2학기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한 뒤, 교육 과정을 수정·발전시키겠다는 기존 일정도 재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혐오 세력의 조직적 반대가 이어지면 인권에 대한 논의가 위축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연세대 관계자는 “강의 개설 사실이 알려지고 학교로 항의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고 했습니다. 일부 개신교 커뮤니티에서는 연세대 학사지원처 전화번호를 공유하며 항의전화를 독려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강의 목록을 찾아내 공유하는 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실제 이들의 반대로 정책 결정이 뒤집힌 사례도 있습니다. 경남교육청은 지난 3월 반동성애 단체와 교계 반발을 받아들여 기존 학생인권조례 발의안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성평등’ 용어를 삭제하고 ‘성주류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추가됐지만, 교계가 지난달 도의회 본회의 시점까지 폐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결국 자동 폐기됐습니다. 경기도의회가 공공기관에 양성평등을 강화하는 내용의 ‘성평등 조례’ 개정안을 발의하자 일부 보수단체들이 욕설이 담긴 문자를 보내는 등 의원들을 공격한 적도 있었습니다.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정치적 용어가 되고 특정 세력의 공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 교수는 “당사자로서 인권을 보는 관점의 부재”를 언급하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인권은 고정적이고 범주화된 개념이 아니에요.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같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만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누구나 특정 사회적 조건 하에서는 인권 침해와 차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핵심도 결국은 당사자로서 인권 문제를 바라보고 사회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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