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10명 중 7명 “한국에 인종차별 있다”

김희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가인권위원회.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무리 봐도 너네는 좋은 데 시집 가려고 한국 대학원 다니면서 학위 따는 것 같아” 한국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ㄱ씨는 재중동포란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ㄱ씨는 자신이 여성이고 재중동포이기 때문에 늘 결혼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는 말을 대놓고 듣는다고 했다.

난민 ㄴ씨는 동사무소에 가는 일이 꺼려진다. ㄴ씨는 “동사무소에 가면 ‘난민 왔어!’ 라고 큰 소리를 지른다”며 “큭큭 거리며 웃는 사람들은 내가 혼자 가면 잘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무슬림인 ㄷ씨는 ‘사장님이 히잡을 쓰는 건 부적절하기 때문에 싫어한다’는 이유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렸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이주민 10명 중 7명이 한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21일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을 앞두고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결과 보고서를 19일 발표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22일부터 9월5일까지 이주민 3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8.4%가 한국 사회에 인종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인종, 민족, 피부색, 출신국, 언어 등 각 차별 사유별로 차별 경험 정도를 물었을 때 ‘한국어 능력’(62.3%), ‘한국인이 아니어서’(59.7%), ‘출신국’(56.8%)이 주된 차별 사유였다.

이주민들이 겪은 차별 경험은 다양했다. ‘언어적 비하’(56.1%), ‘사생활을 지나치게 물어본다’(46.9%), ‘다른 사람이 기분 나쁜 시선으로 쳐다본다’(43.1%) 순으로 차별 경험을 답했다. 채용 거부(28.9%)와 일터에서의 불이익(37.4%)을 답한 이들도 있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주민 중 절반은 차별을 경험했을 때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48.9%)고 답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말했다’(50.2%)거나 ‘친구나 회사동료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31.9%)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차별에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서’(57.8%)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45.3%)와 ‘보복이 무서워서’(23%)가 뒤를 이었다.

인권위는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한국인 중심주의’ 또는 ‘한국 우월주의’에 기반해 출신 국가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위계를 나누고, 이를 근거로 이주민 집단을 무시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며 “한국인과 이주민 간 위계적 구분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체계적인 법으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인종차별 관련 국내 법제로는 인종, 민족, 피부색,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원칙을 밝히는 조항을 많은 법률에 두고 있으나, 대부분 선언에 그치고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인종차별 전반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절차를 마련하는 법제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인권위는 차별적 인식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마련한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에서도 드러났다고 했다. 인권위는 “정부의 대책에서 유학생,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이주노동자 등 백만명에 가까운 이주민이 배제됐다”며 “이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차별적 인식이 드러난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소외되는 사람 없는 마스크 보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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