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아동 쉼터 365일 꽉 차는 슬픈 대한민국

권순재 기자
‘학대’아동 쉼터 365일 꽉 차는 슬픈 대한민국

대전의 한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최용선양(15·가명)에게 집은 감옥과 같은 공간이었다. 최양의 친부는 알코올중독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취해 있었다.

친부의 학대는 최양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6년부터 시작됐다. 술에 취해 쏟아내던 폭언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최양에 대한 친부의 학대는 점점 정도가 심해졌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친척도 없었다. 최양은 결국 2017년 주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학대피해아동쉼터를 찾게 됐다.

하지만 최양이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에는 관련 쉼터가 없었다. 결국 15㎞ 정도 떨어진 다른 자치구에 있는 쉼터를 이용해야 했다. 쉼터 관계자들이 차량으로 통학을 지원해줬지만, 쉼터가 바쁜 날에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등·하교해야 했다. 최양은 3개월 정도를 해당 쉼터에서 지내고 가정으로 복귀했지만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에 따른 학대가 되풀이되자 쉼터에 다시 입소했다. 지난해 학대피해아동쉼터를 퇴소한 최양은 여전히 아버지와 떨어져 대전의 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갈 곳 없는 학대 피해 아동들

위탁 시설 전국에 72곳뿐
1곳 5~7명 500명 수용 가능
연간 피해 아동은 2만여명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해 위탁운영하고 있는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적으로 72곳에 불과하다. 학대피해아동쉼터는 학대를 받은 아동을 학대 행위자로부터 분리한 거주시설에서 보호하고 심리치료 등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학대 행위자 등과의 차단을 위해 일반 다세대주택 등을 활용해 비공개로 운영한다. 운영지침상 피해 아동이 3~9개월 생활할 수 있지만 더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1년 이상 생활할 수도 있다.

최양을 보호했던 학대피해아동쉼터 관계자는 “최양처럼 쉼터에만 들어갈 수 있어도 다행”이라며 “전국적으로 관련 쉼터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전국 대부분의 학대피해아동쉼터는 1년 내내 정원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자리가 나면 곧이어 새로운 학대 피해 아동이 들어온다.

현재 대전의 학대피해아동쉼터는 남아 보호시설 2곳, 여아 보호시설 2곳뿐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 행위자와 분리시켜야 할 피해 아동을 확인할 때마다 빈자리가 있는 학대피해아동쉼터에 아동을 배정한다. 쉼터가 적은 데다 남녀 구분을 하기 때문에 피해 아동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 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도 단위 지자체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인구수가 많은 지역 정도에만 학대피해아동쉼터가 있는 실정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 경기도(13곳)지만 인구수 등 지자체 규모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다. 대구·인천·광주·울산은 2곳씩에 불과하고, 세종은 1곳에 그친다.

■7명이 월 250만원으로 생활

학교 통학 힘든 먼 곳 태반
결국 다시 위험한 ‘집’으로
쉼터 공간·예산 확대 시급

학대피해아동쉼터의 정원은 1곳당 5~7명, 전국 시설의 정원은 500명 정도로 파악됐다.

2018년을 기준으로 아동학대 사례가 2만4604건인 것에 비해 학대피해아동쉼터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이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부족한 탓이다.

학대피해아동쉼터 관계자들은 쉼터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피해 아동을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게 관련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학대피해아동쉼터 관계자는 “학대피해아동쉼터에 지원되는 예산이 부족해 전문심리치료사를 상시 고용할 수 없어 프리랜서 형식의 심리치료사가 주 1~3회 쉼터를 방문해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다”며 “상주할 수 있는 전문심리치료사를 채용해 심도 있는 심리상담을 진행하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월 250만원 정도를 아동 7명의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 가정처럼 아동들을 위한 문화활동이나 사교육 등을 지원하는데 항상 예산이 부족해 못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직원의 처우도 좋지 않다. 직원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활동하는 열악한 여건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 관계자는 “올해 학대피해아동쉼터 4곳을 추가하는 등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을 늘려나가겠다”며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제공하는 심리치료 등 관련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지만 지원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예산을 늘리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음달 9일까지 복지부, 교육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아동안전 합동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다. 경찰은 또 아동학대 신고 접수 시 무조건 출동해 확인한다는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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