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치로 온몸 그을린 고양이… 반복되는 동물학대, 안잡나 못잡나

심윤지·이창윤 기자

동물들 동선 파악 어렵고

인적 드문 곳서 범죄 발생

목격자나 CCTV 안 나오면

용의자 특정 못해 사건 종결

"동물 죽으면 사진 몇 장 끝"

경북 김천시 아포읍에 사는 박영범씨(33)는 지난달 6일 온몸에 화상을 입고 현관 앞에 쓰러져있는 고양이 ‘호순이’를 발견했다. 누군가가 등을 잡고 토치로 그을린 듯 했다. 호순이는 박씨가 1년 전부터 돌보던 길고양이다. 평소 마당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다가도 밥을 먹거나 잠을 잘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박씨는 “사라진 지 5일만에 뼈만 남은 모습으로 현관 앞에서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호순이가 생활하던 김천시 아포읍의 한 주택 앞마당. 이곳에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쓰러져있던 호순이는 현재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호순이가 생활하던 김천시 아포읍의 한 주택 앞마당. 이곳에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쓰러져있던 호순이는 현재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박씨는 동물자유연대의 도움을 받아 김천경찰서에 신고를 접수했다. 사건 발생 3일만에 수사가 시작됐다. 한 달이 넘은 9일 현재까지 용의자는 특정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아포읍 일대에 폐쇄회로(CC)TV가 한 대 뿐이다. 호순이가 집을 나가고 돌아온 시점 사이에 5일이란 시차가 있어 사건 발생일을 특정하기도 어렵다”며 “목격자를 찾는 전단지를 뿌려 제보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서대문구·관악구 일대에서도 길고양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담팀까지 꾸려 수사에 나선 곳도 있지만 범인이 검거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동물학대, 안 잡는 것일까 못 잡는 것일까.

1차적인 원인은 동물학대 범죄의 특성 때문이다. 사람과 달리 동물은 학대를 당하고도 고통을 표출할 수 없다. 대부분 동물학대 범행은 사람 발길이 드문 곳에서 일어난다. 목격자 진술이나 CCTV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증거가 남아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경찰 관계자는 “불특정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길고양이는 언제 어디서 학대를 당했는지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CCTV가 사람이 다니는 길을 따라 설치돼 있다보니 동물의 동선을 추적하기 어렵기도 하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된 호순이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된 호순이

동물단체들은 경찰의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했다. 동물학대 사건이 여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경찰이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CCTV에 찍히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부검을 의뢰하거나 탐문 수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도있다.

김현지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은 “몇달 전 길고양이 사체를 발견해 신고했는데 경찰이 부검할 생각도 하지 않고 활동가들에게 알아서 사체를 처리하라고 한 경우가 있었다”며 “이런 사건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안일하게 대처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한다”고 했다.

토치로 온몸 그을린 고양이… 반복되는 동물학대, 안잡나 못잡나

동물학대 처벌은 강화되는 추세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3월 동물학대 형량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했다. 내년부터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추가 상향된다.

처벌 강화에도 동물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은 부족하다. 이는 부실한 초기대응으로 이어진다. 김용환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출동한 경찰들이 동물보호법을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람이 죽어 있으면 ‘국과수’를 부르고 현장을 보존한다는 매뉴얼이 있는데, 동물이 죽으면 현장에서 사진 몇장 찍고 돌아가거나 사체를 그대로 두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토치로 온몸 그을린 고양이… 반복되는 동물학대, 안잡나 못잡나

동물학대범이 실형을 받는 사례도 드물게 나오고 있다. 지난 해 10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주택가에서 반려견 ‘토순이’를 살해한 정모씨에게 징역 8월이 선고됐다. 같은 해 6월 경기도 화성시에서 고양이가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다음 날 저녁에는 분양받은 고양이가 반항한다는 이유로 살해한 김모씨가 징역 4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동물보호법’ 위반만으로 나온 형량은 아니다. 모두 주인이 있는 동물을 살해해 ‘재물손괴 혐의’가 함께 적용된 사건들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19년 6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69명 중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이들은 2명에 불과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김현지 팀장은 “범인이 잡히고 처벌을 받아야 ‘동물학대는 해선 안 되는 범죄구나’라는 사회적 인식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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