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서로 다른 어린이들…활기찬 우주의 질서가 보인다

김소영

어린이의 ‘고유한’ 개성

“물고기 길러요” “만화책 만들어요” “이빨 큰 동물 다 좋아”

어렸을 때 나는 별명이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고’씨면 ‘고사리’, ‘지’씨면 ‘지렁이’ 하는 식의 유치한 별명들이라도 그랬다. 정작 당사자들은 질색할 때가 많아서 나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별명이 없었다. ‘김’씨는 영 심심한 성이고, ‘소영’은 너무 흔해서 별명을 붙일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직접 만들어볼까도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마땅한 게 없었다. 나는 이름마저 너무 평범했다.

일러스트 | 김덕기 기자

일러스트 | 김덕기 기자

나는 나만의 특징을 가지고 싶었다. 눈에 띄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김소영’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거나, 달리기를 잘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노래를 잘하거나 힘이 센 것도 좋겠지. 아니면 쌍둥이라거나, 이름이 독특하다거나, 강아지를 키운다거나. 그러나 내가 찾아낸 남다른 점은 머리를 짧게 자르면 오른쪽이 뻗친다는 것 정도였다. 내가 바란 특징과는 영 거리가 있었다.

“선생님이 모를 것 같은 나에 대한 다섯 가지 사실”을 말해달라고 하면
좋아하는 것·친구 등 색다르지 않은 답들이 모여 고유한 모습 그려져
갈등 해결 방법도 제각각인데…이상하게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타고난 것·경험들이 뒤섞여 어린이의 개성은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다른 특징도 하나 있기는 했다. 왼쪽 허벅지에 오이처럼 길쭉하게 난 희미한 흉터였다. 부모님은 그게 냄비에 덴 자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나에게 흉터는 처음부터 거기 있는 무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게 마음 쓰이셨던 모양이다.

“이산가족 되더라도 소영이는 이 흉터로 찾을 수 있다.”

“이게 있어야 진짜 소영이지.”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애절하게 가족을 찾는 사람들, 가족을 찾아서 기쁨에 오열하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던 때였다. 두 분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그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도 이산가족이 될 수 있구나’ 싶어서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내 흉터를 들여다보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랬다. 내게는 이름보다도 확실하게 나의 신원을 확인해줄 흉터가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에 두 분이 “아직 어려서 그렇지, 흉터는 크면 다 없어진다” “벌써 많이 흐려졌다” 같은 말씀도 하셨다는 것이다. 흉터가 있어야 진짜 나인데 크면 흉터가 사라진다는 논리는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때는 두 이야기를 모두 믿었다. 지금은 그런 기억만 남아 있고 흉터는 지워졌다. 결국 둘 다 맞는 이야기였다.

독서교실 어린이들에게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듣다 보면 심심치 않게 상처 자랑이 나온다. 상처가 클수록 무용담도 화려하다. 어떤 어린이는 내가 만류해도 기어이 반창고를 떼서 상처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팠겠다, 쓰라리겠다 하고 내가 인상을 쓰면 신난 얼굴로 “전에는 이것보다 더 크게 다친 적도 있어요” 하면서 온몸을 짚어가며 흉터를 보여주려고 한다. 어린이로서는 아쉽게도, 대개의 상처에는 새살이 돋아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혹시 어린이들도 내가 그랬듯이 자기만의 특별한 점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나는 ‘개성’이라고 하면 유별난 점,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독보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장점이나 장점으로 봐줄 만한 무언가여야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 덕분에 개성이란 ‘고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이들이 저마다 가진 고유한 특징들을 몇 가지만 꼽아 보아도 알 수 있다.

첫 수업 때 나는 어린이에게 “선생님이 모를 것 같은 나에 대한 다섯 가지 사실”을 말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학교나 가족 관계, 눈에 띄는 재능 같은 것은 이미 부모님께 들어서 알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해서 최근에 들은 자기소개들은 다음과 같다.

“물고기(구피)를 기른다. 피자보다 치킨(안 매운 양념)을 좋아한다. 강아지를 좋아한다. ㅇㅎㅈ이랑 친한데 1학년 때부터 친했지만 2학년 때 전학온 애랑 같이 놀면서 더 친해졌다. 그림 그리기보다 책(만화책) 읽기가 좋다.”

“고양이를 좋아한다. 친척이 많다. 좋아하는 음식은 나물비빔밥. 한자를 좀 많이 안다. 의사가 되고 싶다.”

“ㅇㅅㅎ를 좋아하는데 전화번호는 모른다. 친구가 엄청 많다. 회장을 해봤다. 내가 생각해도 상상력이 뛰어나다. 요즘에 ㄱㅎㅈ이랑 같이 만화책을 만들고 있다.”

학년이나 성별 같은 것을 지우고 보면 어린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느낌이다. 하나하나의 정보는 색다른 점이 없지만, 그런 것이 모이면 어린이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누구랑 비교할 필요가 없는, 어린이의 고유한 모습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은규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동아리를 만들려고 신청서를 냈다고 했다. 면접은 일곱 명이 다같이 보았단다. ‘인원이 이렇게 많은데 지각하거나 잘 참여하지 않는 친구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왔을 때 은규의 답은 이랬다.

“회장의 권위를 높여서 해결하게 해요. 회장을 민주적으로 뽑으면 돼요.”

나서기 싫어하는 한편 효율성을 중시하는 은규다운 답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재준이와 우찬이의 반응이다. 같은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할 거냐고 물었더니 재준이는 “일단 경고해요”라고 했고, 우찬이는 “바로 잘라요! 그럼 확실히 본보기가 될 거예요”라고 했다. 전에 옛이야기 속 ‘젊어지는 샘물’을 얻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은규는 “그런 게 있을 리 없죠”라고 일축했지만 재준이는 “아내하고 나눠 마셔요”라고, 우찬이는 “사업을 해요”라고 했다. 어쩌면 이렇게 제각각인지.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한 어린이는 한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경복궁에 놀러 갔을 때는 남자 한복을 입고도, 여자 한복을 입고도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그 사진들을 보고 조금 놀린 모양인데, 어린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또 어떤 어린이는 아버지와 텔레비전으로 자연 다큐멘터리 보는 게 취미라며 “저는 이빨이 큰 동물은 다 좋아해요”라고 했다. 그 어린이는 내가 빌려준 상어에 관한 책을 읽고 ‘이빨 책’을 만들어왔다. 다양한 동물의 이빨과 자기네 가족의 이들이 그려져 있었다.

독서교실 가방 말고도 늘 조그만 보조가방을 메고 오는 어린이도 있었다. 정중하게 부탁해서 그 가방에 뭐가 들어 있는지 구경한 적이 있다. 빗, 호루라기, 물휴지, 메모지, 볼펜, 예쁜 돌멩이 같은 게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종일 놀이터에서 살다시피 하는 어린이라 솔직히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어린이 말은 이랬다.

“놀다가 필요한 게 있어서 집에 갔다 오면 놀 시간도 없고 엄마가 자꾸 그만 놀고 들어오라고 해서 안 돼요.”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으니 그렇게나 신나게 뛰어놀면서도 틈틈이 머리도 빗고 손도 닦고 한단다.

“우리집에서 제일 깔끔해요. 동생도 제 오빠 같지 않거든요. 저도 남편도 털털한 편인데, 누구를 닮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녀들은 애초에 부모를 그렇게 닮지 않았다. 물론 얼굴이나 체형은 한 번씩 ‘아 맞다, 가족이지!’ 할 만큼 꼭 닮은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생활 습관, 말투 같은 것도 닮은 데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린이를 설명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이의 개성은 그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들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들이 그렇듯이.

어린이가 누군가와 닮았다고 하면 설명이 쉬워진다. 나는 한때 작은 조카의 얼굴과 입맛이 나와 닮았다는 사실에 집착해서, 그애에 대한 모든 것을 ‘이모 닮은꼴’ 필터로 관찰했다. 책상 앞에 이것저것 써붙인 것, 친구랑 돈 모아서 비싼 음식 사 먹으러 간 일, 의외의 순간에 태평해지는 성격도 다 나를 닮은 것만 같았다. 남편이 조심스럽게 우리가 그렇게까지 닮지는 않았다고 말해주었을 때 속으로는 내 근거가 빈약하다는 걸 알았지만 “당신이 어렸을 때의 나를 몰라서 그래요”라고 대꾸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그애가 왜 나처럼 공부에 안달복달하지 않는 건지 내가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닮은 점을 중심으로 보니까, 닮지 않은 부분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애가 어떤 일로 속상해서 울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어린 내가 상처받은 것처럼 괴로웠다. 그런 것은 좀 닮지 말았으면 싶었다. 한마디로 나는 기대도 걱정도 그냥 내 맘대로 하고 있었다. 이모도 이러니, 부모님들이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간다.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메리 올리버의 문장들이 떠오른다.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완벽한 날들> 중에서)

머리가 한쪽으로 뻗치고 허벅지에 흐릿한 흉터가 있는 어린이, 왜 나는 별명이 없을까 골똘히 고민하던 어린이를 떠올려본다. 나는 아마 ‘평범해 보이는’ 어린이였을 테고, 다른 아이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지렁이’라고 불리는 게 싫어서 왜 나는 김씨가 아닐까 분통을 터뜨리는 어린이도 있었겠지. 키우는 강아지가 언니하고만 친해서 강아지를 원망하는 어린이도, 노래는 잘하지만 남들 앞에 서는 게 싫어서 음악 시간에 빠지고 싶은 어린이도 있었겠지. 지금도 어딘가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전혀 다른 어린이와 어른이 있겠지.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이야말로 사무적으로 보일 만큼 안정적인 질서다. 그런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된다. 우주가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사실도.



[김소영의 어린이 가까이]들쭉날쭉 서로 다른 어린이들…활기찬 우주의 질서가 보인다

▶김소영

독서교실에서 어린이와 함께 읽고 쓰고 배우고 가르친다. 비양육자로서, 돌봄과 교육의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린이’에 관심이 많다. 어린이에게 좋은 세상이 어른에게도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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