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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없던 ‘하나’가 계속 생겨야 더 좋은 세상이 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을 때 한 여성이 아기를 안고 들어섰다. 그러곤 잠시 두리번대더니 한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청소복을 입은 여성 두 분에게 다가갔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요. 아기를 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는 얼굴로 보던 두 분은 곧 “그래요, 그래.” “여기 주고 어서 들어가요.” 하며 아기를 받아 안았다. “맞아. 화장실 간다고 아기를 모르는 사람한테 맡길 수는 없지.” “아기가 너무 예쁘네. 울지도 않고.” 두 분은 아기 엄마가 들어간 화장실 문 바로 앞에서 아기를 어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두 분도 사실 ‘모르는 사람’이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아기 엄마를 안심시키려는 듯 일부러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도 보기 좋았다. 다급한 상황에서 거기서 일하는 분들에게 아기를 맡긴 것도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거기에 두... -
동심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동심을 간직했기에 어른이 된다
‘순수한’ 동시에 ‘미성숙한’ 것으로 취급되는 어린이의 마음언제부터가 어른의 마음인 걸까…동심이 어른과 아이 나누는 기준인가우리는 마음을 버리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나라는 사람의 안 쪽으로 들어가면 어린이의 마음이 있다실시간 온라인 강연 중에 작은 방송사고를 냈다. 강연은 출판사에서 마련한 ‘독자와의 만남’ 행사로,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문학 작품들과 어린이를 그린 그림 등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그중에는 노먼 록웰의 ‘발견(Discover)’이라는 그림도 있었다. 한 어린이가 부모님 것으로 짐작되는 서랍장에서 산타 옷과 수염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얼굴로 서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화면에 띄우고 화가의 재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카메라 너머 출판사 분들도, 댓글 창도 술렁였다. 시청자 중에 어린이도 있다는 것이었다.방송을 시작할 때 ‘어린이와 함께 보고 있어요’라는 댓글도 읽어 놓고는 깜빡 잊었다. 나는 하던 말을 얼버무리고 얼른 화면을... -
끝나지 않는 겨울방학…‘친구’를 잃지 않게 학교부터 열 순 없을까
“선생님, 제가 뭐 입었는지 보이세요?”지난주 줌 수업 시간, 노트북 화면 너머에서 현준이가 물었다. 현준이는 한겨울인데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거 저희 반 티예요. 원래는 체육대회랑 체험학습 때 입는 건데요, 올해는 이거 입고 학교도 못 갔거든요. 너무 아쉬워서 그냥 오늘 입었어요.”오죽하면 독서 선생님한테 반 티를 자랑할까. 떨어져 있지만 그 마음만은 나에게 절절히 와닿았다. 현준이는 워낙에도 친구를 무척 좋아한다. 나에게 들려주는 일상 이야기도 대부분 친구에 대한 것이다. 친구 누구랑 축구 한 일, 누구 생일에 영화 본 일, 친구들이 집에 와서 잔 일, 싸우는 친구들 말린 일과 자기가 싸운 일 등. 현준이는 지난해 4학년을 시작하면서 제일 기대되는 일이 새 친구들을 만나는 거라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개학 자체가 미루어지고 등교수업도 엄격한 방역수칙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조차 현준이는 살짝 들뜬 모습이었다. ... -
‘착해야만 한다’는 건 편견…제대로 이해하려면 눈앞의 어린이를 보아야
연말을 맞이해서 독서교실의 묵은 자료들을 정리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모아 놓은 자료들이 많았다. 온갖 출판사의 팸플릿, 도서관 프로그램 홍보물, 근처 초등학교의 추천 도서 목록,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세미나 자료집들은 이제는 낡은 자료라 처분하기로 했지만, 헌책방에서 겨우 구한 절판된 이론서들은 그러기가 어려웠다. 책을 펼치면 그때 공부하던 내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이 책들이 새롭게 출간되더라도 밑줄을 긋고 메모해가며 읽은 책을 버릴 수는 없을 거로 생각했다. 어린이들이 두고 간 글과 그림 역시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버릴 수가 없었다. 자기 이름도 고른 크기로 쓰지 못하던 어린이들이 언제 커서 중·고등학생이 되었나 생각하니 세월이 새삼스럽고, 그들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다는 것에 뿌듯해졌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전 이것저것 메모한 공책을 넘기다가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밑도 끝도 없이 한 문장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못... -
말수 적어 늘 주눅 들어 있고 표현력이 부족하다는데…그건 오해다
10초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나는 윤서 덕분에 알게 되었다. 열한 살 어린이와 단둘이 마주 앉아 있는 교실에서 대화가 뚝 끊겨 버린 10초. 첫 수업을 하는 한 시간 동안 거의 모든 대화에 그 10초가 생겼다. 내가 무슨 어려운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다. “떡볶이는 매운 게 좋아, 안 매운 게 좋아?”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인데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결국 내가 다시 질문하거나 말을 돌리거나 해야 했다.“선생님은 매운 걸 잘 못 먹어. 근데 떡볶이는 매워야 맛있잖아? (윤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늘 매운 떡볶이를 먹고 후회해. 윤서는 어떠니?” “매운 거 잘 먹어요.” “평소에 언니랑 윤서랑 얘기 많이 하니? (고개를 젓는다) 그럼 언니가 독서교실 어떻다고도 얘기 안 해줬어? (고개를 젓는다) 얘기는 했구나. 뭐라고 했어?” “재미있대요.” 이런 식이었다. 이렇게 말이 없는 어린이는 처음이었다. 어찌어... -
어린이가 우는 진짜 이유는, 어른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며칠 전부터 주변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긴장하고 있다. 어린이가 아니고 내 얘기다. 성인은 안 맞아도 된다는 기사가 있지 않을까 샅샅이 검색했지만 허사였다. 병원이 북새통이라는 소식, 서둘러 맞으라는 전문가의 조언만 잔뜩 읽었다. 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올해는 정말 너무하는 것 같다.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교실에서 단체로 예방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 간호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담임 선생님이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소영이가 먼저 씩씩하게 맞자.”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작은 수술 때문에 입원했을 때 주사를 안 맞겠다고 하도 몸부림을 치고 주삿바늘을 튕겨내서 결국 발등에 링거 바늘을 꽂은 전력이 있는 어린이였다. 하지만 알릴 겨를이 없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
“턱스크 쓴 어른께 잘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안 해주셨어요”
나는 ‘도자기 찻잔론’의 창시자다. 이 거창한 이름을 스스로 붙였다면 부끄러워서 이렇게 쓰지 못할 것이다. 존경하는 어린이문학 연구자 C 선생님이 붙여주신 이름이라서 한 번쯤은 자랑 삼아 발표하고 싶었다. 사실 이 이론이랄까 주장의 내용은 싱겁다. 독서교실에서 어린이에게 차를 대접할 때 플라스틱 컵을 내놓지 않고 제대로 된 찻잔을 꺼내는 것. 언젠가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신 C 선생님이 멋있는 이름으로 격려해주셨다. 내가 어린이에게 받침이 있는 찻잔이나 사기로 된 머그잔에 차를 내준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는 분도 있다. 어린이는 조심성이 없는데 혹시 깨뜨리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태 독서교실에서 그릇을 깬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독서교실에서는 집에서보다 훨씬 의젓하게 행동하는 데다 그릇을 곱게 다루기 때문이다. 차를 쏟는 경우도 정말 드물다. 머그잔은 받침과 함께 내는데, 잔을 들고 자리를 옮길 때면 모든 어린이가 그 받침도 꼭 챙긴다. 격식을 갖추... -
들쭉날쭉 서로 다른 어린이들…활기찬 우주의 질서가 보인다
어렸을 때 나는 별명이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고’씨면 ‘고사리’, ‘지’씨면 ‘지렁이’ 하는 식의 유치한 별명들이라도 그랬다. 정작 당사자들은 질색할 때가 많아서 나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별명이 없었다. ‘김’씨는 영 심심한 성이고, ‘소영’은 너무 흔해서 별명을 붙일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직접 만들어볼까도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마땅한 게 없었다. 나는 이름마저 너무 평범했다. 나는 나만의 특징을 가지고 싶었다. 눈에 띄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김소영’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거나, 달리기를 잘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노래를 잘하거나 힘이 센 것도 좋겠지. 아니면 쌍둥이라거나, 이름이 독특하다거나, 강아지를 키운다거나. 그러나 내가 찾아낸 남다른 점은 머리를 짧게 자르면 오른쪽이 뻗친다는 것 정도였다. 내가 바란 특징과는 영 거리가 있었다. “선생... -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스스로 되뇌이며 올바른 길을 찾는 것
독서교실에는 ‘누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공책이 있다. 빌려 가는 책의 제목과 빌린 사람을 적어두는 공책이다. 이름 대신 사인을 남겨도 된다고 안내하는데 이름을 적는 어린이는 아무도 없다. 처음 온 어린이들은 일생을 결정하는 일인 양 고심해서 사인을 만든다. 그러고는 다음주에 그 사인을 까먹어서 다시 만든다. 결국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매번 다른 사인을 하기 때문에 이 공책은 이제 낙서장처럼 되어버렸다. 어린이들은 암호 같은 말을 적기도 하고, 하트나 ‘스마일’ 같은 간단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지원이도 그랬다. 주로 웃긴 그림을 그렸고 이모티콘 같은 그림으로 사인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원이가 자기 공책에 그린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여성의 토르소가 공책 한 면을 다 채우는 크기로 그려져 있었다. 조금 긴 얼굴에 턱은 뾰족했고 입은 꼭 다물었고(웃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 모습이었다. 긴 머리를 대충 묶어 한쪽만 귀가 보였는데... -
말썽도 장난도 아닙니다…‘불편·답답’ 극복하려는 삶의 행동이죠
마스크 사러 줄 선 아이에게 “살 수 있나” 어떤 할아버지의 뜻밖 물음‘아무리 몸집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어른들이 그 사실을 깜빡하는 듯 어느 휴일 저녁, 세준이 어머님이 연락을 주셨다. 세준이와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딸기농장 체험을 다녀오는 길이라며, 아이들이 직접 딴 딸기를 나눠 드리고 싶어하는데 잠깐 들러도 되겠느냐는 말씀이었다. 세준이 사촌들은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오며가며 본 적이 있었다. 어린이들의 깜짝 방문도, 신선한 딸기도 당연히 환영이었다. 밤에 초인종이 울렸을 때는 나와 남편이 함께 나가 문을 열었다. 아홉 살, 일곱 살, 네 살 어린이 셋이 조르르 서서 연습이라도 한 듯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마주 인사를 하고, 딸기를 받고, 감사를 전하고, 딸기를 따는 요령에 대한 세 전문가의 짧은 강의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어린이는 정말 작구나’ 하는 것이었다.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만나 그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