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 ‘줌’이 파고든 일상

노도현·김원진 기자
경향신문 기자들이 9월 9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9월 9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제는 이게 노멀(normal·표준)이잖아요.”

로스쿨 재학생 A씨(29)는 지난봄부터 줄곧 화상수업을 들었다. 2학기에는 대면수업을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재유행에 없던 일이 됐다. 그는 “당연히 현장 강의보다는 못 하지만 이 외에 떠올릴 방법이 없지 않나. 이제 굉장히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의 수업은 전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이뤄진다.

코로나19 속 일상은 곧 ‘비대면’이다. 미국 화상회의 플랫폼 기업 줌(ZOOM)은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시대의 승자로 평가받는다. 올 2분기 월평균 사용자 수가 무려 1억4840만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00% 폭증한 수치다. 정보기술(IT) 공룡인 IBM의 시가총액도 뛰어넘었다. 줌은 편리한 사용성을 강점으로 비대면 만남의 기본값이 됐다. 비대면 회의·수업을 한다고 하면 줌부터 떠올리고 본다. 줌을 쓰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익숙해진 ‘비대면’

김대성 광주전남연구원 박사는 전남 나주에 있는 연구원으로 출근한다.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자리에 모이지는 않는다. 각자의 연구실이나 자리에서 줌을 켠다. “조금 전에도 화상회의를 했어요.” 김 박사는 9월 7일 통화에서 말했다. 일터에선 줌으로 회의하고, 지자체나 유관기관과 협의할 땐 MS 팀스·구글 미트 등 다양한 화상회의 플랫폼을 이용한다. 모니터만 들여다봐야 하니 금세 피곤해지고, 감정을 주고받으며 친밀도를 쌓기는 힘들다는 게 아쉽긴 하다. 하지만 시간만 맞으면 외국의 동료들과 만날 수 있고, 굳이 서울이나 부산, 제주까지 출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단점을 상쇄한다.

처음 그가 연구원 사람들에게 화상회의를 제안했을 땐 반응이 시큰둥했다. ‘원내에 있으면 얼굴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소리가 안 난다, 얼굴이 안 나온다며 어려워하던 동료들은 점점 적응해가는 중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올라가서 화상회의를 하는 것도 있지만 연습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김 박사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 7월까지 미국에 방문학자로 다녀왔다. 출국 전 인터뷰도 줌으로 했지만 어떤 프로그램인지도 잘 모르고 썼다. 상황이 달라진 건 지난 3월부터다. 매일 줌으로 수업을 듣고 세미나를 했다. 자녀의 학교수업도 줌으로 했다. 그는 “기능이 단순해서 한번 익숙해지면 사용하기 편하다”며 “예전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 욕설을 하는 줌 바밍(Zoom Bombing) 같은 보안 문제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많이 보완된 것 같다”고 했다. 줌은 보안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5월 ‘90일 보안 계획’을 내놓고 보안을 강화한 바 있다. 현재 중앙정부 부처에서는 자체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쓴다. “습관이란 게 있잖아요. 제도가 한번 만들어지면 쭉 유지되는 관성의 법칙, 경로의존성이 있는 것처럼 비대면은 지속되지 않을까요.”

각국 참가자들이 모이는 국제회의장의 작은 부스. 원래 이곳이 국제회의 한영통역사 박소운씨의 작업공간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집이 일터가 됐다. 화상회의는 또 다른 기회가 됐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종종 화상회의 통역을 했다. 주로 화상회의 장치가 갖춰진 기업 회의실에서 외국지사와 소통하는 식이었다. 이제는 훨씬 규모가 큰 회의인데도 각자 집에서 화상으로 만난다. 음질 좋은 마이크도 들여놨다. 회의장에서는 통역만 열심히 하면 되지만 이제는 소리가 잘 들리는지 점검하는 엔지니어 역할까지 맡는다. 회의가 다국적으로 열리다 보니 일하는 시간은 대중없다. 어느 국가 시간 기준인지, 서머타임을 적용하는지 확인은 필수다.

자신은 한국, 통역을 번갈아 하는 파트너는 영국에 있고 행사는 미국에서 주최하는 재미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박씨는 “통역에 너무 몰입하면 바통 터치할 타이밍을 잊을 때가 있다. (파트너에게) 줌에서 메시지도 보내고 카카오톡 메시지도 보내봤는데도 바로 옆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익숙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 안 들어왔어요?” 국제 화상회의 통역을 하기 24시간 전, 자고 일어났더니 메일이 와 있었다. 알고 보니 고객사에서 회의 날짜를 하루 뒤로 잘못 알린 것이다. 그가 꿈속에서 헤매는 동안 회의는 끝났다. 박씨는 “기술이 아무리 잘 구현돼 있어도 사람 실수로 문제가 난다”며 웃었다. 박씨는 “고객사들은 외국에서 연사 초청을 위한 항공료·호텔 숙박료와 회의장 대여료 같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걸 코로나를 통해 알게 됐을 것”이라며 “코로나 이후에도 이 방식의 회의가 대세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줌으로 회의하는 모습. 줌 홈페이지

줌으로 회의하는 모습. 줌 홈페이지

공기업 부장 B씨(47)가 생각하는 화상회의의 가장 큰 장점은 딱 할 말만 한다는 것이다. B씨는 “회의시간에 어젯밤 술 한잔 마신 얘기 같은 걸 하면 늘어지는데 화상회의에선 불필요한 말을 덜 하니 집중이 잘 되고 1시간 이내로 압축해서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무래도 회의가 팀워크를 다지는 면도 있는데 화상회의는 기계적인 느낌이 있다”고 했다.

B씨의 회사에선 웹엑스 등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한다. 기본 기능은 서로 비슷하다. 그는 “줌은 앱을 설치하고 회의창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반면 웹엑스는 앱을 설치할 때부터 인증해야 하는 등 보안성이 더 높다”며 “보안성은 좀 떨어질 수 있지만 비대면 수업처럼 학생들이 쓰기 편하다. 보안이 중요하지 않은 회의라면 줌이 나은 듯하다”고 했다.

요가도, 강연도 줌으로

줌 수업 도중 한 학생의 화면이 검게 바뀐다. 그 위에 ‘Reconnecting…(재연결 중)’이라고 뜬다. 교사는 시스템이 불안정하구나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 학생의 상태는 ‘재연결 중’이었다. 자세히 화면을 들여다봤다. ‘재연결 중’의 철자가 틀려 있었다. 학생이 쉬고 싶어 속임수를 쓴 것이다. 상의만 점잖게, 하의는 편하게 입었는데 바로 뒤 전신거울이 있어 ‘언밸런스 패션’이 공개됐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잠시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지금 자리를 비운 거냐”며 퇴장당한 사례도 여럿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선 아이가 부모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도 화면 너머로 종종 볼 수 있다.

경기 화성시에 있는 마산초 교사 김진환씨도 지난 1학기 줌과 구글 클래스룸으로 진행한 원격수업을 떠올린다. ‘송산포도’로 유명한 송산면에 있는 마산초는 전교생 40명의 작은 학교다. “수업 중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할머니가 들어오셔서 우리 반 아이의 동생을 혼내는 소리가 여과 없이 나오기도 했어요. 재미있는 기억입니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들은 아이들의 원격수업을 봐줄 여력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동영상 강의 링크만 보내주면 보지 않을 게 뻔했다. 수업 결손이 없게끔 쌍방향 수업을 했다. 한 반에 10명뿐이라서 학생이 딴짓을 하거나 무언가를 궁금해하면 곧바로 피드백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국어·수학·사회·과학 같은 과목은 지식전달이 위주다 보니 줌의 공유화면 기능으로 학습자료를 함께 보고, 소회의실 기능으로 모둠별 학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체능 과목은 줌으로 하는 게 한계가 있었다”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수원의 초등교사 최영인씨는 이번 학기부터 매일 아침 45분씩 ‘줌 조회’를 열고 있다. 오늘 배울 학습 내용을 미리 설명해주고 지난 수업에서 배운 개념을 복습하는 데 30분가량을 쓴다. 나머지 15분은 아이들과 함께 놀이활동을 진행하며 어색함을 푼다. 최씨는 “각자 집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 두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가림막도 없는 상태에서 쌍방향으로 만나다 보니 아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는 것 같다”며 “생활패턴이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면서 쌍방향 수업을 늘려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쌍방향 수업에 더 알맞은 교육용 플랫폼이 있지만 동시 접속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다수가 줌을 쓰고 그만큼 쉽기 때문에 이용한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윤모양은 수학·영어학원에 가는 대신 줌으로 수업을 듣는다. 강사와 10여명의 학원 친구들을 모니터 속에서 만난다. 그는 “영어는 선생님이 화면에 자료를 보여주면서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식인데 수학은 그렇지 않아서 불편하다. 수학선생님은 (줌의) 손들기 기능을 모르시는 것 같다”고 했다. 강의력에 더해 플랫폼을 다루는 기술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윤양은 학교와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직접 가면 ‘렉’ 걸릴 일이 없잖아요.”

지난 1학기 줌으로 원격수업을 하고 있는 마산초 김진환 교사의 책상. 김진환 교사 제공

지난 1학기 줌으로 원격수업을 하고 있는 마산초 김진환 교사의 책상. 김진환 교사 제공

코로나19를 피해 국내로 돌아와 줌으로 미국 대학 수업을 듣는 사례도 있다. 미국 애틀랜타 교민인 김모(47)씨는 지난 4월 시카고대 미대에 다니는 딸을 부산의 어머니 집으로 보냈다. 확진자가 급증하는 시카고에 딸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코로나19 검진이나, 치료에 있어서 한국이 미국보다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카고대는 가을학기 수업을 비대면으로 하고 있다. 김씨는 “딸은 한국에서 새벽에 줌으로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미술학원 등에서 실기를 배우고 있다”며 “미국 내 코로나19가 계속 확산 중이라 내년까지 머무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줌 PT, 줌 요가, 줌 발레…. 오프라인으로 진행됐던 각종 수업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제천시보건소는 9월부터 줌으로 ‘임산부 요가’와 ‘베이비 마사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피트니스 강사 안은선씨가 두 수업을 맡는다. “눈도 마주치고 스킨십을 하며 코칭을 해야 수업 질이 높아지는데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라 조금 걱정했어요. 그런데 아기들에게 집이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이기 때문에 오히려 엄마와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더라고요. 집에서 운동하면 주위 시선을 끌 필요도 없고요.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나간다면 비대면이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바일 화가 정병길씨(67)는 올봄 지인에게 줌 사용법을 배우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각종 기관에서 태블릿으로 그리는 모바일 그림의 매력을 알리고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전부 휴강된 터였다. 1학기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은 줌으로 강의를 녹화해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했고, 2학기부터는 쌍방향 수업을 하고 있다. 정씨는 “실시간으로 수업을 해보니 보다 생동감과 현장감이 있다”라며 “혼자 집에 앉아 할 수 있는 거라 어렵지 않다”고 했다.

언택트, 대안이지만…

마을미디어 용산FM의 황혜원 국장은 회의에 참가할 일이 많다. 마을미디어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용산구의 몇몇 학교에서 마을미디어 교육도 한다. 해방촌 동네 일에도 관여하고 있다. 회의는 주로 줌으로 진행된다. 황 국장은 “단순 회의 참가자로서는 특별히 힘들지 않다”며 “한번은 1시간짜리 회의를 주재했는데 그땐 에너지 소모가 엄청났다”고 했다. 그는 회의 주최자만 주로 말하고, 대화하는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듣고 있는지 확인이 안 되니까 ‘제 목소리 들리나요?’라고 몇 번씩 물어보게 돼요. 대화를 하고 있긴 한데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많죠.”

황 국장은 “나조차도 꼭 해야 할 말 아니면 안 하고 소극적이게 된다”고 했다. 할 말만 해서 좋다는 의견과는 정반대다. 비대면 만남의 효율성에 초점을 두느냐, 관계성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반응이 엇갈린다. 황 국장은 ‘로컬택트’라는 개념을 꺼냈다. “언택트를 시대에 맞는 흐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만나서 함께하는 속에서 얻는 것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언택트가 답이 아니라 로컬택트가 답이다’라는 말에 공감해요. 가까운 지역·마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게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요. 언택트를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은 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기업 사원이면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D씨도 “줌 자체는 연결이 빠르고 생각보다 잘 돼서 좋다”면서도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줌 같은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만남은 급하거나 일시적인 상황에서 활용하면 효과적이고 정기적이라면 대면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 본다”며 “매끄럽게 대화하거나 토론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면이 보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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