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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본,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발표 때 기업 요구로 ‘성분명’ 숨겼다

윤지원 기자

2011년 SK케미칼 등 업체 주장 수용…회사명도 안 밝혀

초기 독성실험에선 예비시험 생략 등 부실 진행 드러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1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2011년 가습기살균제 원료 주성분(CMIT/MIT)의 독성 실험이 허술하게 진행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1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2011년 가습기살균제 원료 주성분(CMIT/MIT)의 독성 실험이 허술하게 진행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201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습기살균제의 인체유해성을 조사했을 당시 수차례 기업들과 면담한 뒤 이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결과 발표에서 기업명과 성분을 숨긴 것으로 확인됐다. 질본은 2012년 SK케미칼·애경이 제조한 ‘가습기메이트’에 대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근거가 된 실험이 부정확한 조건으로 허술하게 진행된 사실도 드러났다. 질본의 2012년 연구 결과는 현재 진행 중인 SK케미칼과 애경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형사재판에서도 기업 측 주장의 주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질본과 SK케미칼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기업들은 2011년 8월26·27·29일 3차례 비공개 면담을 했다. 당시 질본은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전방위 조사에 착수해 ‘옥시싹싹’ 원료(PHMG)의 유해 가능성 및 SK케미칼·애경의 가습기메이트 원료 주성분(CMIT·MIT)을 파악한 상태였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SK케미칼은 면담에서 유해성이 최종 확인되기 전까지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 유발 요인일 수 있다는 점과 기업 및 성분명을 외부에 공개하지 말 것을 질본에 거듭 요청했다. 질본은 3차 면담 이틀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인미상 폐질환 요인이 가습기살균제일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도 제품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질본은 그해 11월 옥시 등 제품 6종에 대해 수거 명령을 내리면서도 끝까지 가습기메이트는 제외했다. 사참위 관계자는 “(가습기메이트에 대한) 초기 질본의 소극적 대처로 피해가 계속됐다. 국민의 알권리, 건강을 위해서 (기자회견 당일인) 8월31일 제품명과 기업명을 공개하고 수거 명령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질본의 제품명, 성분 미공개 방침은 향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기업이 자료 제출을 지연하는 구실이 됐다.

2011년 10월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된 애경이 CMIT·MIT 공급사인 SK케미칼에 안전성 자료를 요구하자 SK케미칼은 이를 거부했다. SK케미칼은 애경에 보낸 답변서에서 “질본의 입장을 존중해 질본 발표가 있기까지 (제품 안전성과 기능성 자료의) 대외적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1년 질본의 초기 독성실험이 유독 CMIT·MIT 성분만 예비시험을 생략하는 등 허술하게 진행된 정황도 드러났다. 질본의 동물흡입실험은 통상 기도 내 투여량을 결정하는 예비시험, 기도 내 투여시험, 흡입독성시험 순으로 진행된다. 사참위 조사 결과, 질본은 2011년 10월 CMIT·MIT에 대해 예비시험을 건너뛰고 곧바로 기도 내 투여 시험을 실시했다. 이때 투여량은 이미 예비시험을 거친 PHMG 투여량(제품 1/10 희석 배율)과 동일하게 맞췄다. PHMG는 CMIT·MIT보다 독성이 높기 때문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CMIT·MIT에서 독성이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실제 동물실험 결과, 폐섬유화가 확인된 PHMG와 달리 CMIT·MIT 투여 쥐에서는 폐섬유화 증상이 나오지 않았다. 질본은 예비시험이 누락된 이유를 “제품의 성분 파악이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참위는 “(실험 당시) 애경에 대해 이미 현장 역학조사를 한 상태였기에 성분을 확인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부실한 실험 조건으로 나온 질본의 연구 결과는 향후 ‘가습기메이트의 인체 유해성은 없다’는 SK케미칼과 애경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됐다. SK케미칼과 애경은 2012년, 2016년 공정위에서 무혐의·심의절차종료 처분을 받고 2016년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CMIT·MIT의 흡입 독성은 2019년에야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기도 내 투여’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사참위는 “(2019년 연구에서 확인된 시험 조건을 환산한 결과) 질본이 2011년 예비시험에 CMIT·MIT를 포함했다면 동물에서 폐손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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