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통제하자고 했던...'특별히 불평등한' 특별사면의 역사

이혜리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사진)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사진)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벽두에 ‘사면’ 카드를 꺼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건의하겠다”는 이 대표 말에 정치권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관한 권한은 헌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는 헌법 제79조입니다.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아, 대통령이 결정하면 시행됩니다.

한국에서 사면의 역사는 늘 논란과 함께했습니다. 사회에 중대한 해악을 끼친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특혜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마음대로 풀어줄 것이면 왜 법을 지켜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형평성과 자의적인 기준이 문제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국회에 낸 개헌안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 권한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면론에 반발이 이어지자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입니다. 당장 박근혜·이명박 대통령이 사면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어떨까요? 대통령의 특별사면, 이대로 괜찮을까요?

■정치인·재벌에 관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사면은 서양에서는 함무라비 법전,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제도입니다. 군주제에서 군주가 은혜로써 죄인을 풀어준다는 은사권(恩赦權)에 뿌리를 둡니다. 법원이 사실관계와 법리를 검토한 뒤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하고 형벌을 부과했는데, 이것을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변경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권력 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면 제도는 현대사회까지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사면법과 관련된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한 결정문에서 대통령 사면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면권은 전통적으로 국가원수에게 부여된 고유한 은사권이며, 국가원수가 이를 시혜적으로 행사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 이념과 다른 이념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로도 파악되고 있다.”(2000년 헌재 결정문)

즉 법원 재판에서 혹시 오류가 발생했을 때 시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형벌을 없애줌으로써 원활한 교정과 사회복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회통합’의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통해 국민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1997년 12월22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정부의 특별사면조치에 따라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각각 석방된 뒤 그동안의 수감생활과 사면조치 등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12월22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정부의 특별사면조치에 따라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각각 석방된 뒤 그동안의 수감생활과 사면조치 등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논란은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에서 불거집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입니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비자금 사건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내란죄·뇌물죄 등이 적용된 이들에게 법원은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무렵인 1997년 12월 두 사람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합니다.

당시 청와대는 “국민대통합을 이뤄 당면한 경제난국 극복에 국가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선자 신분이던 김대중 대통령과도 협의했다고 했습니다. 새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비롯된 갈등의 잔재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국민대통합론의 요지였지만, 성공한 쿠데타도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고 한 법원 판결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사면해 논란이 됐습니다. 김씨는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청와대는 “20세기 마지막 광복절을 보내며 화해와 용서의 정신,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법 집행의 형평성이 결여되고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반발했습니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선심 행사’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2021년 1월4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

2021년 1월4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재벌 총수들이 대거 사면 대상에 올랐습니다. 2008년 8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9년 12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사면했습니다. 그밖에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도 이명박 정권 때 사면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2012년 “어떤 형을 구형하고 (선고)받았는데도 지켜지지 않고 계속 뒤집히는 것은 법치를 바로 세우는 데 악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 8월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6년 8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사면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경우에는 결국 이건희 회장 사면과 관련해 삼성그룹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2심 재판부는 제3자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강한 반대 여론에도 특별사면을 강행했고, 이 회장 사면은 삼성의 주요 현안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보고받은 것으로 인정된 이 회장 사면 관련 문건에는 다스 미국 소송에 대한 삼성의 자금지원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 개헌안엔 “대통령 사면권 통제”

정치인 등에 대한 사면이 시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헌재는 번번이 각하 결정을 합니다.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안 된다며 구체적인 심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 권력분립과 법의 형평성이라는 법치국가 원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현행 헌법의 개혁 과제로 특별히 대통령의 사면권을 언급했습니다.

4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4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 사면권이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온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 판결을 변경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하고, 부정부패나 선거사범 등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사면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최근 몇 년간 매해 4000~6000명을 대상으로 큰 규모로 시행되는 반면, 국회 동의가 필요해 요건이 까다로운 일반사면은 1996년 이후 시행된 적이 없습니다. 통제 절차가 없는 대통령 사면권이 정권 편의대로 활용된다는 의심이 되는 대목입니다. 특별사면도 법무부장관 아래의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사면법에 규정돼있지만 형식에 불과하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은 사례에 대해서도 사면이 가능한지, 대통령이 사면권 행사를 남용한 경우 정치적 책임과 별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와 같은 쟁점도 등장합니다. 이석민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은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 보고서에서 이를 분석했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연방헌법은 탄핵은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탄핵과 별도로 형사판결에 대해서는 사면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지만, 탄핵된 박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가능한 것입니다.

반대로 앤드류 존슨 미국 대통령의 탄핵 사유에는 사면권 남용이 포함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도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탄핵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도 가능합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반역·살인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아예 사면을 배제하도록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는데, 한국 사면법에 명문의 규정은 없는 상태입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국회에 낸 헌법 개정안에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개정안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사면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헌법에 못박겠다면서 “대통령의 자의적 사면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절차적 통제 규정을 헌법상 명문화한다”고 했습니다. 개정안은 폐기됐습니다.

1997년 9월3일 시민들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9월3일 시민들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추미애·윤석열은 “대통령 권한…의견내기 어려워”

대통령 사면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오는 단골 질문이기도 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국회에 낸 답변서에서 “사면제도는 역사적으로는 군주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로서 삼권분립이 확립된 현대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으나, 국민의 결단으로 제정한 헌법에 명시한 제도인 만큼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보다는 합리적인 운영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면권은 국가이익과 국민통합이라는 제도의 취지에 걸맞은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투명한 절차를 거쳐 ‘보충적·예외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부정부패 공직자, 선거법 위반범에 대한 특별사면권 행사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019년 12월 국회에 낸 답변서에서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어서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고만 했습니다.

2019년 7월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회 답변서를 살펴봤습니다. 윤 총장은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을 수사한 책임자입니다. 재벌 총수 특별사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윤 총장은 “사면은 개개 사건 및 대상자, 국민감정 등 제반요소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냈습니다.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 사면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윤 총장은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검찰총장이 의견을 적극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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