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신고에 첫 반응 “왜 시끄럽게 다녀”

오경민 기자

‘직장갑질 119’ 사례 분석

2018년 3월13일 전국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직장 내 성폭력 예방 주무부처로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8년 3월13일 전국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직장 내 성폭력 예방 주무부처로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처음 사내에 성추행을 신고했을 때 면담자의 첫마디가 ‘너 요즘 왜 이렇게 시끄럽게 다니냐’였다.”

“성희롱 사실을 알리자 사장이 회식 자리 전 직원 앞에서 ‘가해자를 너무 오해하지 마라. 따뜻한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31일 민간 공익단체인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직장인 성희롱, 괴롭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10건 중 9건이 수직적 권력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 조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업주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지체 없이 조사에 착수해야 하지만 조사는커녕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공개석상에서 피해자 망신주기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가해자 조사 기간 피해자와의 분리 조치가 단행되지 않은 사례도 많다.

공개석상서 피해자 망신 줘 성적수치심 느끼게 해
가해자 처벌 후 보복 조치도…피해 신고 37% 그쳐

한 피해자는 “가해자가 사과했지만 받아주지는 않았는데 다른 상사가 ‘가해자가 잘생겼으면 안 그랬을 것 아니냐’고 했다. 가해자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고 이후에 또 다른 가해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증언했다. 다른 피해자는 “제가 피해자인데 부서도 옮겨지고, 가해자는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모두가 합세해 저를 몰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성희롱 신고부터 징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사 및 징계권자들과 면담을 해 본 적이 없다. 가해자만이 그들과 소통했다”면서 “사건이 처리되는 동안 성희롱이나 직장 내 따돌림을 조성했던 사람과 같이 근무해야 했다”고 말했다.

어떤 회사의 경우 피해자가 남자 직원의 성희롱을 호소하자 이를 은폐하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좋아한 것처럼 모욕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내용을 사장이 e메일로 작성한 뒤 전체 직원에게 회람했고, 그 이후 피해자에 대한 업무 평가는 ‘최하 등급’으로 떨어졌다.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구체적인 성희롱 제보 364건 가운데 신고 비율이 37.4%(136건)밖에 안 되는 점도 이처럼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직장 밖 신고에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토록 한다. 그러나 2018~2019년 노동청, 수사기관 등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는 2380건인 데 반해 사법처리에 이른 사례는 20건에 불과하다.

가해자 처벌 이후 보복이 뒤따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고서에는 “가해자는 징계를 받았지만, 가해자와 친분이 깊은 사람이 제 선임으로 발령되면서 인사도 무시하고 업무 공유가 되고 있지 않다”거나 “4개월 동안 보복이 분명한 상사의 괴롭힘을 당했고 직장 동료도 저와 친하다는 이유로 직장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나온다.

의지할 곳 없는 피해자들은 극도의 우울감 속에 ‘최악의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매일 본사 건물에서 투신하는 상상을 한다” “성희롱 신고 후 2차 가해로 우울증과 불면증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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