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죄’ 밝힐 정보만? 현실은 ‘인생’ 정보 통째로 압수

이범준·전현진 기자

휴대전화가 넘어가면 벌어지는 일들

[전자정보 압수수색 시대](2)‘죄’ 밝힐 정보만? 현실은 ‘인생’ 정보 통째로 압수

“과거 피의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로 인식되던 시대에,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라고 한 판례의 정신은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전자정보를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에 대하여 그대로 관철될 필요가 있다.”

(2015년 7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의 보충의견)

요즘 수사기관이 압수수색하는 전자장비의 대부분은 휴대전화다. 2019년 경찰청이 전국에서 압수해 분석한 전자정보기기를 보면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가 전체의 82.4%(4만6551건), 노트북 등 컴퓨터가 12.9%(7295건)이다. 10년 전인 2009년에는 반대로 휴대전화가 12.0%(658건), 컴퓨터가 69.6%(3820건)였다. 특히 휴대전화는 기기를 통째로 압수하고 있다. 2012년 형사소송법이 바뀌어 원칙적으로 필요한 정보만 추출하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 2017년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휴대전화 압수수색의 98.9%가 통째 압수이고, 반면 컴퓨터는 15.1%가 통째 압수다. 검찰은 이런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는 오현석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최근 논문에서 대검찰청 서버에 저장된 파일의 성격을 분석한 자료다.

원칙은 ‘필요한 정보만 추출’
현실은 98%가 휴대폰 통째 압수
민감 정보, 피의자 ‘족쇄’ 됨에도
상당수 판사들 범행도구로 인정

수사기관이 휴대전화를, 그것도 통째로 압수하려는 것은, 휴대전화 대부분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이 안에 피의자의 거의 모든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거의 왕’이 더 이상 진술이 아니라 이제는 휴대전화라는 말이 나온다. 정보가 사람에서 기기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인권침해 우려가 생겼다. 영장담당 판사를 지냈던 홍진표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피의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피의자에게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수사관이 동성애자인 피의자의 민감한 정보를 임의로 탐색해 알게 됐고, 수치심을 느낀 피의자가 체포 및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다툴 여지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방어권을 포기한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고 말했다. 김진형 법무법인 가로수 변호사는 “휴대전화가 압수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내 인생이 통째로 수사기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뭐라도 문제 되는 게 없는지 걱정하고, 하다 못해 술집 간 것까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A씨는 사기 혐의로 2018년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휴대전화를 가져가면서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했고, 확보한 비밀번호로 휴대전화를 열어 데이터를 탐색했다. 휴대전화 속 정보들을 파악한 경찰은 정식으로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합법적인 증거로 만들었다. A씨 변호인은 경찰이 비밀번호를 진술하라고 강요한 것은 위법수사라 주장했지만, 법원은 문제 삼지 않았다. 체포 과정에서 미란다원칙을 고지했으므로 비밀번호 진술을 거부할 권리도 함께 알려준 것이라고 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은 이후 경찰관들의 요구에 따라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자발적으로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행위는 임의수사로서 적법하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특별한 경우 영장 없이 사람을 체포할 수 있지만, 휴대전화까지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을까. 대법원 판례를 보면 칼이나 몽둥이 같은 범행도구는 압수가 가능하다. 이에 기반해 현재 상당수 판사들이 휴대전화가 범행도구라면서 긴급체포 현장에서 압수해도 된다고 판결한다. 이런 생각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대라면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휴대전화를 범행도구로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에 반대하는 판사들이 나오고 있다. 휴대전화에 든 기록은 뇌 속의 기억과 차이가 없어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도, 진술거부권 고지 없이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것도 불법이란 반론을 제기한다.

2018년 의정부지법은 누군가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면 그 사람이 가진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아도 괜찮다는 대법원 판례에 문제를 제기했다. 형사소송법 제212조는 현행범은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고, 제218조는 (피의자가) 자유롭게 내는 물건은 압수해도 된다는 조항인데 대법원이 뒤섞었다는 것이다. 의정부지법은 “수사기관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에게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갖기 때문에 임의제출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예상하기 어렵다. 체포 현장에서 자기 죄책을 증명하는 물건을 스스로 제출할 의사가 피의자에게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민의 관념에 어긋나, 사법 신뢰를 잃기 쉽다”며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휴대전화를 일단 확보한 뒤 법원의 영장을 받아 분석을 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2019년 대법원은 별다른 설명 없이 이 판결을 파기하고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전자정보 압수수색 시대](2)‘죄’ 밝힐 정보만? 현실은 ‘인생’ 정보 통째로 압수

검찰은 휴대전화 자체를 압수하는 이유를 자신들이 증거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혐의와 관련된 정보만 추출해서는 ‘증거 무결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현장에서 선별해 압수할 수 있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휴대전화의 경우 선별 압수를 하게 되면 증거의 무결성과 관련한 사후 검증에 어려움이 있어 휴대전화 자체를 압수한다”고 최근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밝혔다. 이에 대해 조지훈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노트북에 연결할 케이블이 없다거나 스마트폰 기종에 맞는 장비가 없다면서 휴대전화를 가져가려 한다”면서 “기기를 가져가도 좋다는 동의까지 받으면 수사기관에서 계속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가져간 휴대전화를 재판이 끝날 때까지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데이터를 그대로 이미징(복제)해 대검찰청 서버에 올려두고도 범행도구라는 이유로 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피고인은 휴대전화를 열어야만 꺼낼 수 있는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도 재판부에 제출하지 못한다. B씨는 마약류를 운반한 혐의로 2019년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됐고 휴대전화도 빼앗겼다. 이후 검찰은 B씨 휴대전화 압수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마약 관련 정보만 추출하고 기기는 돌려주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기기를 확보하고 형사재판 마지막 공판까지도 돌려주지 않았다.

B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부동산 사업을 하는데 공범으로 지목된 일부 사람들은 고객이며 이를 입증할 정보가 휴대전화 안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범에게 연락해 수사를 방해할 수 있다면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휴대전화를 주지 않았다. 이 사건을 변호한 이예지 리앤리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안의 정보를 자기 기준에 맞도록 이용한다. 자신들의 프레임을 지키기 위해 휴대전화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휴대전화에서 어떤 정보를 압수했는지 목록을 줬는데 복잡한 파일명만 있었다”면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게 무슨 파일인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검찰에 밉보이면 구형량이 높아질 수도 있어 휴대전화를 돌려달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서도 휴대전화 수사는 가장 중요한 인권 문제이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회원국 최고법원의 휴대전화 관련 판결을 뒤집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인 C씨는 범죄단체 관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이 C씨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는데, C씨는 자신이 변호사와 의논한 내용은 보지 말라고 했다. 경찰이 휴대전화 분석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경찰은 변호사 상담 내용은 보지 않겠지만, 분석은 정보 훼손 우려를 고려해 직접 하겠다고 했다. 이에 C씨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대법원까지 패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유럽인권재판소는 7000유로(약 950만원)를 C씨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개인정보를 보호할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경찰이 스스로 증거를 분석한 것은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 위반이라고 했다.

“증거 무결성 때문”이라는 검찰
재판 끝날 때까지 안 돌려줘
유럽선 과도한 휴대전화 분석에
“개인정보 미보호 배상을” 판결

한국에서도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법정책연구원은 “휴대전화에는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전화통화 내역, 전화번호부, 위치정보 등 다양한 유형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법원은 수사기관에 압수할 정보의 종류, 저장 또는 송수신 기간 제한 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특정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최근 보고서에서 밝혔다. 앞서 2009년 국회도 e메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압수수색 요건을 구속영장 발부 수준으로 강화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지만, 법무부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형사소송법 박사인 조성훈 변호사는 “휴대전화는 신체의 연장이라는 취지의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이 있다. 법원은 인신 구속영장만큼이나 휴대전화 압수영장 발부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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