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지문과 홍채 정보도 압수되고 있다

이범준·전현진 기자

‘열쇠’가 된 생체정보…‘거부권’을 허하라

[전자정보 압수수색 시대](4)지문과 홍채 정보도 압수되고 있다
“컴퓨터와 관련된 프라이버시 권리가 특별하고도 두껍다는 것을 수사기관은 알아야 한다. 부당한 압수수색을 받지 않을 헌법상 권리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2018년 캐나다 대법원 판결)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피의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통신기기의 잠금해제용으로 지문과 홍채정보 등을 채취하라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당시 영장담당 판사가 충분히 연구해서 발부한 것은 아니고 검찰이 일단 넣어본 청구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법원 내부에 알려지자 스마트폰 잠금을 열도록 참고인과 피의자를 강제하는 데 생체정보가 쓰이는 것은 위험하지 않으냐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그러자 이후로는 지문이나 홍채정보라고 명시하는 대신 ‘압수·수색 대상: 전자정보가 암호화되어 있는 경우 암호해제된 상태의 전자정보’라고 적힌 영장이 나오고 있다.

머릿속에 있는 숫자나 패턴, 지문이나 홍채 등 암호를 밝히도록 강제하는 것은 헌법 위반 우려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참고인이나 피의자에게 압수수색을 감내토록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떠한 행위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형사소송법에는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있어서는 건정(자물쇠)을 열거나 개봉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수사기관이 자물쇠를 여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당사자에게 열라고 강제하는 것은 현행 형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수원고등법원 관계자는 “머지않아 기억을 몸에 심는 장치도 등장할 텐데, 수사기관이 그걸 다 열도록 해주자는 말이냐”고 했다. 그는 “신원 확인을 위한 지문채취 영장은 과거부터 나왔지만 그건 일종의 행정 절차라 얘기가 다르다”고 했다.

수사기관, ‘포렌식’ 등 방법 있음에도
지문·비번 등 통신기기 잠금 해제 압박
현행 형사소송법 허용 범위 밖 행위
학계 “영장, 진술거부권 부정하는 것”

스마트폰과 노트북 잠금장치를 열도록 강제하는 영장 발부는 법원이 헌법에 보장된 진술거부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학계는 지적한다. 암호는 진술의 일종이어서 강제하지 못한다는 이 같은 견해는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 미국 버클리대 법학 박사인 조성훈 변호사는 “패스워드 등 정보가 피의자 등의 불리한 증거로 연결되는 점은 분명하고, 진술거부권을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제5조의 진술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다수”라고 했다. 한국 헌법 제12조도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자기부죄(自己負罪) 거부 원칙’을 정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에는 판사들이 헌법 제12조를 존중해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인을 신문하는 게 불리한 진술 강요가 될 수 있다고도 본다. 그래서 되도록 하게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인데 암호를 풀라는 영장을 내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에서 스마트폰 잠금해제 문제를 다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는 아직 없다.

수사 개시 단계에서 위헌적인 영장이 발부되니, 수사기관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은 인권침해에 더욱 둔감해진다. 방수환 법무법인 담정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거리낌 없이 비밀번호를 강요한다고 했다. “외국인 피의자가 경찰에 체포됐는데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대라고 강요받았다. 거부했지만 거듭해서 윽박지르니 견디지 못하고 알려줬다.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았다면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2020년 이 사건을 재판한 서울서부지법도 “경찰관의 억압이나 강압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비밀번호를 자발적으로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행위는 임의수사로서 적법하다”며 수사기관의 수사 방식을 인정했다. 조성훈 변호사도 “수사기관은 암호를 밝히는 게 피압수자의 의무인 듯 말하거나 밝히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일부 판사들은 휴대전화 암호를 수사기관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형을 높이기도 한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2020년 사기 사건 피고인에게 징역 3년8개월을 선고하면서 휴대전화 잠금패턴을 수사기관에 알려주지 않은 점을 불리한 양형 사유로 들었다. 법원 관계자는 “헌법이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있어 피고인의 진술 여부가 양형을 높이거나 낮추는 사유가 되지는 못한다”며 “그런 양형 이유를 쓰면 피고인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야 법원이 좋게 봐주고 권리를 행사하면 괘씸하게 보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많은 수사를 담당해온 한동훈 검사가 자신의 스마트폰 잠금해제에 협조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형소법 이념에 가장 부합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전자기기 압수를 매우 엄격하게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의 한 남성은 부인에게 폭력을 썼다가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 이 무렵 부인은 자신과 남편이 함께 쓰던 노트북에 아동포르노가 있다고 신고했고, 경찰은 부인의 동의를 받아 노트북을 압수해갔다. 수사기관은 법원에서 수색영장을 받아 아동포르노 사진 140장과 영상 22개를 찾아내 남성을 기소했다. 하지만 2018년 캐나다 대법원은 노트북 압수가 위헌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사람과 컴퓨터를 공유하는 일이 국가의 부당한 압수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 아동포르노물을 증거로 인정한다면 사법 절차는 오명을 안게 될 것이다.”

당사자가 암호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수사기관이 전자기기를 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검찰청과 경찰청 등 수사기관은 잠금장치 해제 등 포렌식에 필요한 외국산 장비를 사들이고, 자체 개발하는 데도 적지 않은 예산을 쓰고 있다. 오히려 수사기관이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지 변호인도, 재판부도 알지 못해 위법 수사가 계속 늘어난다는 우려도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법 가운데는 1초에 100만개 정도 암호를 입력하는 무작위 대입 공격(brute force attack), 컴퓨터 사용자의 키보드 움직임을 탐지하는 키로거(key logger), 네트워크를 타고 전자기기로 들어가는 방법 등이 있다. 최신 휴대전화는 암호를 잇따라 잘못 입력하면 초기화되는데 이를 막는 기술도 있다고 한다.

최근엔 카카오·네이버 등 우회 수색
이 역시도 당사자엔 내용 안 알려줘
독일은 “관련 법규정 없다”는 이유로
‘생체정보 제공 강요’ 절대 허용 안 해

최근에는 수사기관이 전자정보 가입 당사자 대신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를 압수한다. 지난해 검찰이 받아낸 압수수색영장 가운데 대상이 카카오인 경우가 3만1423건, 네이버가 7248건이다. 인터넷 서비스 회사로 우회하는 이유는 압수수색 과정에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압수수색영장 제시부터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만 한다. 압수수색 과정에 당사자 참여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이 역시 가입자는 해당하지 않는다. 무엇을 압수했는지도 사업자에게만 알려준다. 당사자는 나중에야 압수 사실을 알게 되는데, 검찰이 기소나 불기소 결정을 내린 뒤이고, 그것도 수사기관이 통지해준다. 영장 집행 과정이 이렇게 자유로운 이유는 현행 형소법이 보호의 대상을 ‘처분을 받는자’로만(이 경우 카카오나 네이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형소법에 정해진 압수수색 대상은 아날로그 유체물(有體物)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전자정보 시대에는 유추해석조차 힘들다고 법조인들은 설명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법률을 우선으로 해서 판례를 보충하는 시스템이지만 현행 형소법으로는 전자정보 압수수색 문제를 판결하거나 해결하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독일은 형소법이 허용하지 않는 수사는 못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최근 소개한 독일 문헌에는 “독일에서는 수사기관은 피의자에게 휴대전화나 암호화된 정보의 패스워드를 제공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면서, 생체정보에 관해서도 “형소법에 허용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입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스마트폰 잠금해제를 위한 생체정보의 제공 강요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형소법이 금지하지 않으면 수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은 형사소송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자 최고의 목표이다. 외국에서 시행 중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최근 한 토론회에서 말했다. 그는 진술거부권도 재검토 대상이라고 했다. “데이터의 암호화는 예상하지 못했던 개인들의 사적 무기로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국가의 우월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진술거부권 등은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보안성 강화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증거의 극히 일부만을 가려줄 수 있을 뿐인데, 그것을 새로운 ‘사적 무기’인 것처럼 말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수사권력 우월성을 외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도한 수사를 막겠다는 문재인 정부도 전자정보 기기 암호 제공을 강제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법무부는 현재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협력의무 부과’라는 이름으로 형소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앞서 20대 국회에서도 있었다. 검사 출신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보면 정보저장매체 소유자에게 접속에 필요한 협력을 요구할 수 있고, 이에 불응하면 1억원 이하 과태료 또는 하루 1000만원 이하 이행강제금을 부과토록 했다. 법원행정처와 대한변협은 반대했다. 간단히 말해, 검사가 집행하지 못하면 그만이란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압수영장 집행기관의 협력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였다고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위헌일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입장을 밝힌 대법원이 앞으로 관련 사건에서 어떤 입장을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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