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자폐를 일으킨다’는 그들에게…체리피킹, 음모론, 가짜뉴스 '백신 거부자들'의 역사

이혜인 기자

백신 거부자들

조나단 M. 버만 지음·전방욱 옮김|이상북스|336쪽|1만8000원

지난 5월15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 주 콩코드에서 열린 마스크&백신 반대 집회에서 시위 참석자들이 ‘백신은 부상과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의 푯말을 들고 서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지난 5월15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 주 콩코드에서 열린 마스크&백신 반대 집회에서 시위 참석자들이 ‘백신은 부상과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의 푯말을 들고 서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백신 접종에 대한 두려움은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백신 발명 초기부터 백신 거부 운동도 시작됐다. 1796년 영국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 바이러스를 접종해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얻게 하는 우두법을 발표했다. 현대 과학에 따른 최초의 백신 발명이다. 영국왕립학회는 제너의 논문이 “너무 환상적이고 이전에 알려진 것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부했다. 당시 벤저민 모슬리라는 사람은 “인간의 특성이 네발짐승의 감각으로부터 이상한 돌연변이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제너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책자로 출간해야만 했다.

1853년 영국 정부는 생후 4개월 이상의 모든 유아에게 우두 백신 예방접종을 하도록 의무화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백신 거부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듬해 존 깁스라는 대지주는 백신 거부 의사가 담긴 소책자를 출간했다. 그는 “백신 접종법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으며, “사람들을 자신의 건강에 대한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로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책 <백신 거부자들>의 저자 조나단 M 버만은 “그의 소책자에 나타난 주장과 현대의 백신 거부자들이 하는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고 말했다.

<백신 거부자들>은 미국 의과대학 교수이자 과학옹호가인 저자가 백신 거부 운동의 역사와 백신 거부론자들의 주장을 다룬 책이다. MMR 백신(홍역·볼거리·풍진 혼합백신)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불러일으킨 웨이크필드 사건, 2018~2019년 홍역 백신 거부 움직임 등 주요 백신 거부 사건을 자세하게 다뤘다. 저자는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이 책을 내놨다. “19세기 초부터 오늘날의 소셜미디어 전쟁에 이르기까지 백신 거부 운동의 전모를 보다 완벽하게 제공”하고, “독자들이 이미 노출됐을 수도 있는 잘못된 정보들에 대한 대책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현대의 백신 거부 운동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웨이크필드 사건이다. 1998년 저명한 과학저널인 ‘랜싯’에는 ‘아동의 회장 결절성 림프양 증식증, 비특이적 염증, 전반적 발달장애’라는 제목의 한 논문이 발표됐다. 영국 의사인 웨이크필드는 이 논문을 통해 당시 영국에서 제공된 MMR 백신과 어린이들의 자폐성이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웨이크필드의 논문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실험이나 통계적 근거가 없는 부실한 논문이었다. 랜싯은 논문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도 같이 수록했다. “백신 접종과 부작용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부작용에 대한 의문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랜싯의 논문 내용을 보도한 언론들은 MMR 백신의 위험성을 기사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다음날 언론에는 랜싯 논문에 대응해 즉각 행동해야 한다는 경고성 머리기사들이 등장했다. 가디언 1면은 ‘어린이에 대한 주사를 조심하라’라고 보도했다. 두 살까지의 어린이에 대한 MMR 예방접종은 다음해 91.5%에서 2004년 79%라는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웨이크필드의 연구보다 더 정교하게 수행된 수십개의 연구 결과들이 MMR 백신과 자폐증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결론내렸으나 백신 거부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MMR 백신에 대한 공포는 10년 넘게 계속됐다. 2000년대 후반 미국 배우 제니 매카시는 <오프라윈프리쇼> 등에 출연해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고, 배우 짐 캐리는 허핑턴포스트에 백신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사설을 썼다. 이 밖에 수많은 유명인사가 백신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저자는 이 같은 백신 거부 사례들을 다루면서 백신 거부 운동이 공통적으로 가진 속성을 짚는다. 웨이크필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비과학적인 주장은 언론을 매개로 해 급속히 퍼진다. 저자는 일부 ‘황색 언론’은 논외로 하더라도, 언론이 과학적 사실을 보도할 때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는다. 우선 “(언론은) 위험과 실패를 경고하며, 사건을 보도·설명 또는 논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어떤 사실들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상태에서 우선 뉴스로 다뤄진다. 양쪽 입장을 다 다루려는 언론의 습성은 백신과 관련해서는 오작동한다. “많은 뉴스 매체가 백신 접종을 논의할 때 이른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균형은 논쟁을 보도할 때는 언론의 미덕이지만, 과학적 의문에 균형을 도입하는 것은 종종 웨이크필드와 같은 극단적 소수자의 입장을 잘못된 동등성의 불균형적 지위로 끌어올린다. 이것을 잘못된 균형이라 한다.”

저자는 백신과 관련된 잘못된 주장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과학자와 언론인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은 과학자보다는 언론인 역할이 좀 더 중요해 보인다. “기자들은 과학 지식을 밝혀내는 과정과 방법이 그들이 진실을 알아내는 데 채택하는 접근법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학에서 종종 현상을 전복하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울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신이 자폐를 일으킨다’는 그들에게…체리피킹, 음모론, 가짜뉴스 '백신 거부자들'의 역사

언론이 백신 거부 주장을 증폭시킨다면, 유사과학자, 사이비 전문가, 사기꾼들은 작정하고 거짓 정보를 설파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면역을 획득하기 위해 백신을 접종하는 대신, 사이비 전문가들이 설파한 면역요법을 따른다. 한때 미국·호주 등에서는 수두 예방접종 대신 수두에 걸린 아이를 집에다 불러놓고 자기 아이에게 수두를 자연스럽게 옮기도록 해 면역을 획득하게 하는 ‘수두 파티’가 유행했다. 어떤 사람들은 모유 수유나 프로바이오틱스 섭취가 면역력을 제공해 백신 접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과학 거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단일한 연구를 체리피킹(취사선택)하고, 과학적 합의를 설명하기 위해 음모론에 의지하고, 잘못된 논리에 의존하며, 실제 전문가를 부정하고, 가짜 전문가를 내세우며, 확실성 측면에서 연구가 제공해야 할 결과에 대해 불가능한 기대를 만들어낸다.”

백신 거부 움직임의 역사는 유구하고, 사람들은 잘못된 믿음을 쉽사리 버리지 않는다. 저자는 백신 거부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대응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가짜뉴스’의 틀린 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백신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이 없음을 보여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문서 정보는 백신 접종에 대한 오해는 줄여주었지만 백신 접종 의향을 증가시키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던 정보와 모순된 정보에 노출될 경우, 새로운 정보가 맞을지라도 기존의 그릇된 믿음을 더 확고히 유지하는 경향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백신 부작용에 대한 개인적 증언과 온라인상의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사진, 영상, 언어요소)을 전파시키면서 잘못된 믿음을 강화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설득 전략은 너무 ‘착한 해법’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는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상에서의 대결과 개인적인 싸움은 피하고, 긍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메시지에 집중하라”며 “상대방을 비판하지 않고 백신을 접종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추천한다. 책에서는 지역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백신 옹호자’를 훈련시키는 SNS 프로그램, 약국이나 식료품 가게와 같이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에 백신 정보가 쉽게 정리된 소책자를 배포하는 것 등을 소개한다.

어찌보면 백신 접종의 역사는 지난한 설득과 부단한 투쟁의 역사다.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 거짓 정보에 대한 정보의 승리는 당연한 결론이 아니다. 과학의 가치를 이해하는 정치인들이 선출되고, 임상의들에게 자신과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최선의 행동 방침을 환자들에게 납득시킬 충분한 도구들이 있고, 호소력 있는 거짓말들이 결코 어렵게 찾은 진실에 승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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