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더좀비>, 이미 재난을 경험 중이던 청년들의 좀비 재난물

위근우 칼럼니스트

바깥 세상이 이미 재난인 청년들… 불편하지만 좀비와 공생을 택하다

생존이 지상과제가 되는 재난물의 세계관 안에서 웹툰 <위아더좀비>는 생존 너머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래희망이 ‘평범한 사람’인 아르바이트생 인종, 학교폭력 피해자 소형 등은 그들을 낙오시킨 바깥세상보다 좀비 사태가 벌어진 쇼핑몰에서 도리어 안정감을 느낀다.    네이버 웹툰 <위아더좀비> 캡처

생존이 지상과제가 되는 재난물의 세계관 안에서 웹툰 <위아더좀비>는 생존 너머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래희망이 ‘평범한 사람’인 아르바이트생 인종, 학교폭력 피해자 소형 등은 그들을 낙오시킨 바깥세상보다 좀비 사태가 벌어진 쇼핑몰에서 도리어 안정감을 느낀다. 네이버 웹툰 <위아더좀비> 캡처

이미 재난을 경험 중이던 청년들의 좀비 재난물. 네이버 웹툰 <위아더좀비>의 주제의식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갑자기 세상에 좀비가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초거대 쇼핑몰 서울타워에 갇혀 그곳의 풍부한 자원을 소비하되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간략한 설정만 보면 마치 영화 <새벽의 저주>를 거의 그대로 차용한 듯하지만, <위아더좀비>는 앞서의 주제의식을 더해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좀비 사태가 발생한 즉시 군은 3시간 만에 그들을 제압한 뒤 쇼핑몰을 봉쇄하고, 타워 안에선 주인공 김인종처럼 미처 대피하지 못해서 혹은 각각 나름의 이유로 밖에 나가길 거부하는 생존자들이 남아 좀비 무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중요한 건 그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다. 표면적으로는 타워를 봉쇄한 군 병력에게 좀비로 오인당해 죽을까봐 탈출을 시도하지 않지만, 그들에게 바깥세상은 이미 일종의 재난 상태이다. 주인공 인종은 장래희망이 ‘평범한 사람’일 정도로 큰 욕심 없는 청년이지만 바로 그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에 질려버렸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적당히 열심히만 하면 적당히 살아지는 줄 알았는데요, 아니더라고요.” 그의 동료가 되는 탈영병 임경업 역시 군인으로서의 좋은 자질이 있지만 “납득이 안 가는 거”는 참지 못해 군에서 ‘폐급’ 취급을 당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야말로 재난의 핵심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영화 <엑시트> 중 취업준비생 기백(김강현)의 대사처럼 “우리 상황이 재난”인 상황인 셈이다. 좀비들과 갇힌 타워 생활이 더 행복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굳이 바깥으로 나가야 할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무난한 삶을 사는 무난한 인간이 간절히 되고 싶었지만 그게 그토록 힘들었던 인종이, 정작 무난하게 지내길 요청받는 타워 안에서 사고뭉치로 인식되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역전이다.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조정석)이 평소엔 잉여적인 것으로 취급되던 등반 실력을 발휘해 가스 테러 상황에서 살아남는다면, 인종은 타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조차 잉여 전력 취급을 받는다. 인종이 타워에서 홀로 1년을 생존하고 만난 김소영과 그의 무리는 인종을 합류시킬지에 대해 토론한다. 그중 한 명인 소현명은 “적어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영입해야” 한다며 인종에 대해 “그냥 물살에 통통하고 근육 없는 사람 아닙니까”라며 합류를 반대한다. 인종은 좀비를 육탄전으로 제압할 수 있는 김소영, 임경업 같은 능력자 멤버들과는 거리가 멀다. 택배 아르바이트 시절 알게 된 타워 내 VVIP 엘리베이터 통로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그것으로 활약을 하기보단 타워 내 좀비들을 크게 자극하기만 할 뿐이다. 소영의 동생을 찾으러 가는 모험에선 짐을 물에 빠뜨리고, 멤버 중 유일한 어린이인 왕왕이에게 말실수를 했다가 일이 커져 왕왕이를 밖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지도를 찾는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다행히 그때마다 운(혹은 주인공 보정)이 따라 소영의 동생을 찾고, 지도를 찾는 작전 중 간신히 살아남고, 왕왕이를 달래는 데 성공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는 스스로 원치 않음에도 사건을 일으키는 역할을 맡는다.

생존이 지상과제가 되는 재난물의 세계관 안에서 <위아더좀비>가 생존 너머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이 지점이다. 잘 만든 좀비 재난물이 생존을 위한 분투 안에서 윤리적 딜레마와 생명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면, <위아더좀비>에서의 생존은 훨씬 느슨하게 그려진다. 당장 실질적 이야기는 인종이 어찌어찌 1년을 살아남았다며 시작되고, 소영 무리에 속하기 위한 자기소개에선 “어차피 망한 인생 좀 쉬다가 나가려고 했”다고 밝힌다. 소영의 동생 소형이 속해 있던 청소년 그룹 ‘트리플 H’의 리더 역시 “그냥 하루하루를 즐기자”고 말한다.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소형 역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타워 바깥이 어렵고 때때로 위험한 세상이라면, 타워 안은 위험하지만 아주 어렵진 않다. 이미 재난이었던 세계에서 내몰린 이들로선 상수가 된 좀비떼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생존은 그럭저럭 할 만한 것이다. 변수만 없다면. 그리고 그 변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인종이다. 새 보금자리를 찾으려고 밤에 VVIP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조명 때문에 좀비들을 자극했던 것처럼, 그가 중심에 선 사건 중 상당수는 헛소동에 가깝다. 생존을 위한 합목적성과는 거리가 멀다. 소현명은 그를 사고뭉치로 본다. 하지만 그 소동극을 통해 인종과 소영은 소영처럼 동생을 찾는 삼형제를 만나 동료애를 쌓고, 어른들은 왕왕이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왕왕이 역시 착한 아이 증후군을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의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며 소위 ‘정상적 삶’으로부터 멀어졌던 이들이, 위험이 일상인 지옥도에서 오히려 생존에 방해되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적 삶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그러니 진정한 재난의 조건은 생존의 어려움이 아닌 생존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모두가 생존을 위한 레이스에 올라타 일부가 승리하고 다수가 패배하는 구조에서 생존 유무는 선택이 아닌 결과다. 하지만 경쟁을 벗어난 타워에선 상존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확률을 판돈 삼아 삶의 우연성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주제의식을 노골적인 알레고리가 아닌 개그만화의 호흡으로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것은 <위아더좀비>의 또 다른 성취다. 등장인물 중 대놓고 둥글둥글 개그만화 캐릭터로 만들어진 인종이 누구보다 시니컬하게 굴며 생기는 독특한 간극을 통해 <위아더좀비>는 잔잔한 일상 개그와 블랙코미디를 오간다. 경업이 군대에서 겪은 부조리한 일들을 고백하며 자신이 얼마나 군에 안 어울리는지 구구절절 눈물겹게 설명하지만,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인종에겐 그야말로 군대 얘기하느라 신난 군대 체질 인간의 꼴 보기 싫은 모습이다. 좁은 창고에 갇혔다가 겨우겨우 좀비떼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뒤 경업이 다시 영화 <300>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인용하려 하자 인종은 진심으로 환멸에 찬 표정으로 “X발 말 좀 그만해요”라 한다. 상황의 심각함과 인물 반응의 괴리를 통한 시니컬하게 웃긴 장면이지만, 또한 이러한 블랙코미디 안에서 이토록 타고난 군인인 경업이 단지 불합리함을 참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군 조직의 부조리는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종이 소원을 빌어도 된다고 하자 왕왕이 “형, 누나들이랑 여기(타워)서 평생 살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장면의 개그 센스도 발군이다. 소원을 빌라고 했더니 악담을 하는 식의 개그 신이지만, 이것은 또한 좀비 가득한 타워 내에서나 겨우 유의미한 공동체를 이룬 이들의 현실을 역설한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웃기고, 그렇게 웃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위아더좀비>의 세계는 그래서 탁월하다.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웃음을 주는 게 개그만화로서의 탁월함이라면, 웃으면서도 마냥 웃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재난만화로서의 탁월함이다. 어울리지 않는 상황과 인물이 마주칠 때 의외의 웃음이 만들어지지만,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을 그 상황으로 밀어넣은 건, 그들을 낙오시킨 세상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작가는 좀비에 의한 재난이라는 장르적인 요소를,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나가고 싶지 않은 바깥의 세계가 얼마나 심각한 재난 상황인지 웃으면서 폭로하는 예술적 가상으로 구현해낸다. 그래서 제목 <위아더좀비>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주인공들은 좀비가 아니지만, 타워 안에 좀비와 함께 생존자들을 가둬놓고 격리 중인 세상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들을 좀비나 다름없이 없는 사람 취급하는 중이다. ‘우리는 좀비’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우리도 인간’이라는 외침으로 이해해야 한다. 타워는 없지만 종종 누군가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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