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일하다 돌아가신 선생님…” 서울대 교정 덮은 ‘청소노동자 추모’ 포스트잇

민서영·조해람 기자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사진전 앞을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사진전 앞을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노동자가 죽는 서울대에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또박또박한 글씨가 담긴 핑크색 포스트잇이 바람에 흔들렸다. “고귀한 목숨임을 학교가 꼭 인지하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사람의 글귀가 적힌 초록색 포스트잇도 그 옆에서 나풀거렸다. 18일 한 장 한 장 늘어난 알록달록한 포스트잇 80여장이 서울대 중앙도서관 터널형 통로 내벽을 덮었다. 지난달 이 학교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청소노동자 A씨를 추모하기 위해 학생들이 붙인 포스트잇이다.

서울대 교정 곳곳에는 A씨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중앙도서관 통로의 포스트잇들은 “학교를 깨끗하게 해주던 당신이 하늘나라에선 부디 편안하길 바랍니다” “노동자들이 죽지 않는 사회와 대학을 만들겠습니다”라며 한목소리로 A씨를 추모했다. 인근에 있는 자유게시판에는 여러 단과대학 학생회에서 작성한 대자보들이 붙어 있었다. 사회학과 학생회는 “구성원의 권리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서울대의 첫 마디는 진심을 담은 사과였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민주노총 전국일반노조는 “고인이 사망 전 서울대로부터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 힘든 노동 강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중간관리자 B씨가 청소노동자들로 하여금 학교 시설물 이름을 영어와 한자로 쓰는 시험을 보게 하는가 하면 매주 열리는 회의에 정장 차림으로 참석하라고 요구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시험은 직무교육의 일환이었고 업무평가와는 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노조는 ‘점수는 근무성정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적힌 화면 아래에서 청소노동자들이 필기시험을 치르는 사진을 공개했다.

중앙도서관 통로 옆에서는 지난 15일부터 A씨를 추모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노조가 공개한 필기시험지와 근무성적평가서 등 열악한 업무 환경을 암시하는 사진들이 걸렸다. 2019년 8월 사망한 또다른 청소노동자가 머물렀던 열악한 휴게실,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하는 여성 노동자를 찍은 사진 등이 보였다. 사진전을 기획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의 이시헌씨는 “글로는 전해지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을 동료 학생이나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며 “사진으로나마 감정을 전달하고, 청소 노동자들을 비인간적 태도로 대해왔던 학교당국을 고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사진전 앞을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사진전 앞을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주변을 지나던 학생들은 걸음을 멈추고 추모 포스트잇과 사진들을 살펴봤다. A씨가 일했던 기숙사에서 살았다는 사회과학대 3학년 C씨(21)는 “그분의 목소리나 얼굴을 알고 인사도 했었기 때문에 (사건 소식을 듣고) 더 놀랐다”며 “2019년 여름 청소노동자가 사망한 후 휴게실 문제는 많이 개선됐다고 들었는데, 너무 조금씩 바뀌는 게 문제다. 학교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C씨는 직접 가져온 카메라로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들을 담아가기도 했다.

A씨가 숨진 생활관 근처에는 별도의 분향소가 마련됐다. 추모객들이 놓고 간 국화꽃이 켜켜이 쌓인 분향소 벽에는 포스트잇이 줄지어 붙었다. “나를 위해 일하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가까운 곳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항상 웃으며 근무하시던 선생님,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학생회관 추모 게시판에도 30여개가 넘는 포스트잇이 보였다. 포스트잇에는 “우리의 일상이 당신의 노동에 빚지고 있었음을 잊지 않겠다” “청소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도서관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공간 부착된 포스트잇 추모의 글.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도서관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공간 부착된 포스트잇 추모의 글.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도서관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공간 부착된 포스트잇 추모의 글.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18일 서울대 도서관옆에 마련한 청소노동자 사망 추모공간 부착된 포스트잇 추모의 글.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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