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앞 ‘쥴리 벽화’는 새까만 페인트로 덧칠돼 있었고, 또 그 덧칠조차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낙서로 뒤덮여 있었다. 이번에는 당초 벽화 그림과 반대되는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향한 욕설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의 논문 표절 의혹을 상징하는 ‘YUJI’ ‘유지’라는 글귀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벽화 위에는 “맘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셔도 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 벽화와 덧칠, 비방 낙서 등은 2021년 8월 현재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벽화를 보려고 일부러 주말 오전부터 걸음을 했다는 한 시민은 기자에게 “벽화를 그리는 것도, 지우고 그 위에 새로 뭘 쓰는 것도 전부 표현의 자유”라 말했다. 벽화 앞 상황을 나흘 내내 지켜봤다는 한 유튜버는 “(벽화 속 여성 ‘쥴리’가) 김건희씨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 벽화를 여성 비하나 인권 침해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면서 “보수 유튜버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주자들 그리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욕을 썼다는 제보를 받고 오늘 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벽화를 그릴 ‘표현의 자유’는 옹호하면서도 보수 유튜버들의 ‘표현의 자유’에는 이의를 제기한 셈이다.
벽화 공간을 채웠던 그림과 비방 낙서 등이 주로 그들의 부인을 포함한 여성을 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쥴리 벽화’는 애초 이른바 ‘윤석열 X파일’에서 등장하는 ‘쥴리’가 윤 전 총장 부인 김건희씨로 지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려진 벽화였다. 김씨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이날 오전에도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씨를 겨냥한 ‘혜경궁’, 배우 김부선씨를 향한 ‘부선’ 등의 표현을 비롯해 ‘페미, 여성단체 어디갔냐’는 글귀가 발견됐다.
본인이 지지하지 않는 상대 진영 유력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면서 사적 영역, 그중에서도 부인 등 여성이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벽에 적힌 대부분의 비방에는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여성들의 이름이나 별칭 등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