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소녀 아닌 호랑이…사법부 바뀔 때까지 지켜볼 것"

이호준 기자
최말자씨가 13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온라인으로 마련한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최말자씨가 13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온라인으로 마련한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57년 전에는 소녀였지만 이제 호랑이가 돼서 똑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법부 정말로 안 변할건지 끝까지 지켜볼겁니다.”

1965년 18세였던 그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 가해자가 됐다. 경찰에서는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을 가해자로 사건을 검찰에 올려보냈지만 검찰에서는 되려 그를 남성의 혀를 자른 중상해 가해자로 기소했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당연히 정당방위가 인정될줄 알았던 재판 결과 그는 가해자가 됐다. 성폭행을 시도했던 남성은 특수주거침입죄외 협박죄만 인정받아 고작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건의 당사자인 최말자(74) 할머니는 그때부터 57년동안 단 한 순간도 그 날들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억울함과 부당함을 세상에 호소하고 싶었지만 약자였기 때문에, 무지했기 때문에 세상에 드러내는데 56년이 걸렸다고 했다. 13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온라인으로 마련한 ‘56년을 가로지른 연대, 최말자 님과의 대담’에 나온 최 할머니는 “정말 너무 억울해서 이거는 세상에 밝혀야 한다는 다짐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면서 “법도 모르고 피해자가 뭔지, 가해자가 뭔지 모르는 18세 소녀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사법부를, 이 억울함을 반드시 고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50여년을 삭혀온 응어리는 2018년 세계적으로 미투(ME-Too)운동이 한창일 때 세상으로 터져나왔다.

최 할머니는 “학교에서 글을 배우면서부터 눈을 떴다”고 운을 뗀 뒤 “제 한도 너무 억울하고 밝혀야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투 운동을 보고, 내가 나가면 이 사회에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털어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최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많은 이들이 재심을 준비하는 과정을 도왔다. 활동가들과 법조인들, 수 천명의 서명과 청원이 순식간에 쌓였고 마침내 지난해 5월 법원에 재심 청구서가 접수됐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과정에서 무시됐던 새로운 증거가 첨부됐고, 협박과 위협 등 당시 검찰과 법원의 부당한 권리행사에 대한 증언도 추가됐다.

하지만 지난 2월 부산지방법원은 최 할머니의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재심 개시 사유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재심 추진을 위해 모였던 많은 이들은 “가정폭력을 집안일로 치부하는 통념, 여성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시스템, 이같은 폭력 가해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하는 사법체계가 여전히 57년 전과 마찬가지로 살아있기 때문”(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이사)이라는데 공감했다.

최 할머니와 변호인단은 재심 기각과 동시에 항고장을 제출, 현재 항고가 진행중이다.

최 할머니는 “지금 기각이 됐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행복했다. 이제 정말로 행복하게 산다”면서도 “그러나 나 때문이 아니라 이 사건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가고 말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는 끝까지 잘못 채워진다. 사적인 일이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도 생각한다”면서 “우리 후손에게 또 이런 피해 있어서는 안된다. 옛날 18세 소녀가 아니라 끝까지 호랑이처럼 눈을 뜨고 지켜보면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법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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