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들어주면 쓰레기 반입거부 실력행사’ 혐오시설지구의 명암

글·사진 박용근 기자
25일 전북 전주시의 한 아파트 쓰레기 수거장에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봉투가 쌓여 있다.

25일 전북 전주시의 한 아파트 쓰레기 수거장에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봉투가 쌓여 있다.

전북 전주시가 2주일째 쓰레기 대란에 시달리고 있다. 전주시내에 쓰레기가 넘쳐나는 일은 연례행사다. 혐오시설지구(매립장, 소각장, 종합리싸이클링타운) 주민지원협의체가 정상적인 쓰레기 반입을 방해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원인은 무엇일까. 전주시는 혐오시설지구 주민들이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대신 해당 지역에 주민지원금을 준다. 3개 협의체에 지원하는 액수가 16억원에 달한다. 이 지원금은 주민들 대표들로 구성된 주민지원협의체가 일임해 집행한다. 적지 않은 돈을 만지게 되니 협의체는 ‘권력’을 쥐게 됐다. 지원금 배분을 둘러싸고 횡령·고발 등 잡음은 끊이질 않았다. 4억원을 지원받는 매립장주민지원협의체의 경우 전주시민회와 전북녹색연합이 조사한 결과 지난 2019년 주민에게 지급된 돈은 2억7000여만원에 그쳤다. 시민 혈세를 지원하는 전주시로선 협의체를 지도감독 해야 하지만 ‘갑’은 협의체였다. 쓰레기 대란을 무기로 삼는 협의체앞에 전주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전주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가 지난 24일 쓰레기매립장 주민지원협의체의 전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주시의회 제공

전주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가 지난 24일 쓰레기매립장 주민지원협의체의 전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주시의회 제공

이번 쓰레기 대란은 왜 발생했을까. 그나마 전주시의회가 대의기구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전주권광역폐기물매립장 주민지원협의체는 주민참여 위원 6명을 우선순위를 매겨 2배수 선정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예상대로라면 쓰레기 대란을 우려한 시의회가 협의체 말을 순순히 들어줬어야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협의체 의도대로 위원을 선정하지 않고 ‘반기’를 든 것이다. 협의체는 즉각 실력행사로 응수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성상검사(쓰레기봉투를 일일이 검사)를 하며 쓰레기 반입을 방해했다. 성상검사가 시작되면서 전주시내에서 하루에 수거되는 생활폐기물 235t 가운데 50%가 수거되지 못하고 있다. 지원금을 내는 시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 안고 있는 셈이다.

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는 24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시의회는 이날 “주민협의체는 수년간 기득권의 리더로 군림한 특정인이 포함된 구성원을 수용하라고 의회에 요구했지만 들어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협의체 구성은 법과 조례의 범위와 원칙에 따라 적법한 절차로 이행됐다”면서 “주민협의체의 일방적인 겁박의 심각성은 도를 넘은 지 오래며 최근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고, 실명을 거론한 협박성 현수막을 거는 등의 행위를 무차별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의회는 “전주시 청소행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그간의 전횡과 병폐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지역 5개 시민단체들이 26일 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주민지원협의체의 불법행위 근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북녹색연합 제공

전북지역 5개 시민단체들이 26일 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주민지원협의체의 불법행위 근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북녹색연합 제공

전주시민회와 전북녹색연합·전북환경운동연합 등 5개 시민단체도 26일 기자회견을 갖고 주민지원협의체의 불법행위 중단을 요구했다. 단체는 “이번 전주시의회의 위원 추천은 협의체의 투명성 확보와 신뢰도를 높여서 피해 주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권리행사였다”면서 “폐기물 행정과 주민지원협의체의 정상화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5번째 위원장 연임을 넘보고 있는 A씨를 구하기 위해서라며 배경을 적시했다. 단체들은 “A씨는 폐기물 매립장뿐만 아니라 소각장과 리사이클링센터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매립장 주민협의체 주민대표 추천과는 전혀 무관한 소각장 주민협의체를 동원해 쓰레기 반입을 저지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5월 매립장 위원장직을 사퇴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위원장으로 복귀했으며, 시의회가 자신을 비롯한 3인을 제외하자, 추천된 위원들에게 자진 사퇴를 종용했다”며 “결국 4인의 사퇴서를 받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추천위원 2인은 협의체에서 제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장본인”이라고 설명했다.

단체는 “전주시는 매립장 협의체 운영에 편법이 판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문제 해결에 급급해 위원장의 독선과 편법을 묵인했고 시의 행정 권한을 활용해 협의체 제도 개선에 나서기는 커녕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돈으로 해결하고 협의체의 요구를 들어줬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시민 불편을 볼모로 한 매립장 주민협의체의 폐기물 반입을 막는 불법 행위와 주민협의체 구성 간섭 중단을 강력 촉구한다”면서 “전주시는 폐기물행정을 바로잡고 매립장 주민협의체의 운영정상화에 적극 나설 것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19년 환경부는 전주시가 혐오시설지구 주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묻는 질의에 대해 ‘주민들을 위해 지원사업을 펼치는 것은 타당하지만, 기금 집행 등의 사업 주관은 주민지원협의체가 아닌 전주시가 직접 하는 게 옳다’고 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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