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못 끊는 ‘전자발찌’

문광호 기자

올 13명 훼손…무단 외출도
상해 등 추가 범죄로 이어져
‘사회 복귀 촉진’ 역할 못해

“발찌만 끊으면 자유라 착각
적극적 교화 상담 등 필요”

강제추행상해죄로 2017년부터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해온 이모씨(47)는 지난해 10월18일 오전 1시10분쯤 경남 김해시의 한 도로에서 20대 여성 2명을 차로 들이받았다. A씨는 이를 시작으로 2시간 동안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특수상해, 특수협박, 주거침입 미수 등 총 4건의 범행을 저질렀다. 외출제한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위법행위를 한 이씨는 사건 당일 오전 4시40분 흉기로 전자발찌를 잘라내고 도주했다. 창원지법은 올해 1월 이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50대 남성 A씨는 성범죄로 수감됐다 출소한 지 4개월 만에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출소 후 직업을 구하지 못한 A씨는 병원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지난해 8월 흉기와 전기충격기로 피해자를 위협해 휴대전화 등을 빼앗아 달아났다. A씨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주거지 근처에서 전자발찌를 절단했다.

31일 경향신문이 대법원 판결문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최근 2년간 전국 지방법원에서 선고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전자발찌를 고의로 훼손하거나 외출제한을 무시한 경우가 다수 확인됐다.

최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기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씨(56) 사건처럼 전자발찌 훼손 및 외출제한 무시가 다른 범죄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불구속 재판을 확대하고 범죄인의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한 전자장치부착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발찌 훼손은 해마다 발생한다. 2010년 10명이던 훼손자 수는 2018년 23명까지 늘어났다. 2019년에는 제주에 사는 B씨(54)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자발찌를 분리한 채 주거지에 두는 수법으로 수십차례 외출해 제주지법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법무부는 이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분리형이던 전자발찌를 일체형으로 만들고 금속 두께도 3배 보강했다.

그러나 성능을 개선했다고 하는데도 전자발찌 훼손 범행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4월21일 휴대전화를 개통하려고 사문서를 위조한 C씨(52)는 다음날 오후 천안의 한 숙박업소에서 공업용 절단기로 전자발찌를 절단하고 도주했다. 같은 달 25일 D씨(47)는 경북 구미시의 자택 인근에서 가위로 전자장치를 훼손하고 도주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D씨는 2016년 강간치상죄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출소한 상태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자발찌를 훼손한 피의자는 올해 1~8월 13명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부착자들이 전자발찌를 상당히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보호감찰관의 감독도 형식적이다 보니 전자발찌만 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적극적인 상담과 감시 등을 통해 교화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Today`s HOT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폭격 맞은 라파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