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서 14개월 갇혔던 난민 신청자의 호소 "한국 도움 절실”

김태희 기자
지난해 2월부터 14개월 동안 인천공항 환승구역 안에서 생활했던 리카씨의 모습. 고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오게 된 리카씨는 현재 시민단체 후원금으로 인천에서 생활하면서 난민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리카씨 제공

지난해 2월부터 14개월 동안 인천공항 환승구역 안에서 생활했던 리카씨의 모습. 고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오게 된 리카씨는 현재 시민단체 후원금으로 인천에서 생활하면서 난민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리카씨 제공

아프리카에서 온 리카씨(47·가명)는 인천국제공항에서 1년 2개월간 ‘갇혀’ 있었다.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나온 그는 ‘난민’이지만,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인천공항 43번 게이트 환승구역에서 오도가도 못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리카씨는 본국으로 강제송환된다. 한국에서 했던 활동들이 자칫 고국에 알려지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는 이름은 물론 모국이 어디인지, 왜 떠나왔는지도 밝힐 수 없는 처지다.

리카씨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모국을 탈출해 남태평양 섬나라로 가던 중 환승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들어왔다가 여권을 잃어버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리카씨는 ‘한국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는 난민 신청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환승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법무부는 “환승객 신분은 난민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제가 타고 온 비행기는 돌아갔고, 저는 환승 구역에 남겨지게 됐죠.”

죽음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또 공항 밖으로도 한 발자국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공항 난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터미널>과 같은 일이 리카씨에게 벌어진 것이다.

공항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돼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은 모두 떨어졌다. 굶기를 반복했다. 어쩌다 환승구역에 온 외국인들이 건넨 돈으로 음식을 사먹으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리카씨에게 인천공항 환승구역은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엔난민기구(UNHCR)를 통해 그의 사연을 뒤늦게 접한 시민단체 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음식과 이불, 샴푸 등 생필품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잠자리는 환승구역 내 의자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공항 내 화장실이 그의 세면장이자 샤워실이었다. 불규칙한 식사와 밤낮을 분간할 수 없는 생활, 영양 불균형 탓에 건강은 날로 악화했다. 리카씨는 탈장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면서 그는 매일 노심초사하며 감염 걱정에 시달렸다. 리카씨는 “그 곳(공항)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면서 버텼다”고 밝혔다.

리카씨가 인천공항 내 환승 구역 안에서 찍은 대한항공 비행기. |리카씨 제공

리카씨가 인천공항 내 환승 구역 안에서 찍은 대한항공 비행기. |리카씨 제공

리카씨는 지난 4월에서야 긴 공항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 외국인청을 상대로 ‘수용 임시 해제’ 신청을 낸 덕분이었다. 현재는 시민단체 후원금으로 인천의 한 주택에 살며 난민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공항에서 버틴 시간들은 후유증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신경수술을 받았지만 통증이 심해 약을 먹으며 버틴다. 그는 한국을 “난민에게 ‘닫혀 있는 국가’”라고 말했다. 1994년 1월부터 2021년 7월까지 한국의 난민신청 건수 대비 통과율은 1.5%에 그친다.

“한국에 난민이 (생각보다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은 난민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걸 느꼈어요.”

리카씨에게는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는 것 외에는 다른 생존 방법이 없다. 고국은 여전히 내전 중이고, 그의 형제와 지인들은 정부군에 의해 사망했다. 리카씨 역시 돌아가면 비슷한 위험에 처한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리카씨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한국에서 난민으로 사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라며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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