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전 군인 “70여구 시신 봐…중대원들 사살했다 들어”

박용필 기자

‘학살 피해 주장’ 베트남인 정부 상대 소송 재판서 첫 증언

류진성씨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경종 울려 주고싶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가족을 학살당한 베트남인 응우옌티탄이 2018년 국회 정론관에서 당시 상황에 관해 증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가족을 학살당한 베트남인 응우옌티탄이 2018년 국회 정론관에서 당시 상황에 관해 증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베트남전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과 관련, 파월 참전 군인이 16일 법정에 나와 당시 상황에 대해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회고했다. 베트남인 피해 생존자가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최초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재판에서다. 참전 군인이 법정에 나와 학살 의혹에 대해 증언한 것도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에서 발생한 학살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4번째 변론기일을 이날 진행했다.

응우옌티탄과 그를 대리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의 베트남TF(태스크포스)는 1968년 2월12일 한국군 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 들어가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4명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응우옌티탄은 당시 여덟 살로 복부에 총상을 입었고, 가족들도 죽거나 다쳤다고 했다.

그는 2015년부터 한국을 찾아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지난해 4월에는 청와대에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공동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고, 이에 그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판에는 당시 퐁니·퐁넛 마을에서 작전을 수행한 참전 군인 류진성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1967년부터 1년 넘게 베트남에 파병됐던 류씨는 사건 직전인 1968년 1월부터 그해 6월까지 일병 계급으로 해당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류씨는 법정에서 “마을 쪽에서부터 총격이 있었고, 이에 마을 수색작전을 벌였다”며 “불타는 가옥에서 노인이 나와 소리를 지르며 내 쪽으로 다가오자 뒤에 있던 선임병이 사살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음날 도로 정찰을 나갔는데 해당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군중이 눈에 핏발이 선 채 모여서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고, 옆에는 70구가량의 시신들이 거적때기 위에 놓여 있었다”며 “그 인파를 헤치고 전진해야 했는데 등골이 서늘했다”고 했다.

류씨는 “중대에 돌아와 무슨 일인지 물으니 다른 소대원들이 주민들을 죽인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며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민간인들을 인근 논에 모아놓은 뒤 중대원들이 모두 사살한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피고인 정부 측 변호인은 류씨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류씨가 당시에는 마을 이름을 알지도 못했고 일시도 기억하지 못하다가 수십년이 지나 관련 시민단체의 주장을 듣고 자신이 겪은 일을 해당 사건으로 추측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취지였다.

또 당시 작전지도에 따르면 해당 마을 인근에 월맹군 기지가 다수 존재한 점, 해당 사건이 있기 얼마 전 인근 지역에서 한국군이 우군으로 위장한 베트남 공산유격대(베트콩) 6명과 교전한 사실 등을 근거로 한국군으로 위장한 베트콩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류씨는 “실제 어린아이나 노약자, 부녀자 등이 갑자기 국군을 공격하는 일은 흔했다”며 “당시 민간인들은 낮에는 한국군이나 미군 편에 섰고, 밤에는 베트콩 편에 섰다”고 했다. 또 “작전지역으로 지정된 마을에는 사전에 대피령이 내려지기 때문에 텅텅 비게 되고, 때문에 수색과정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는 게 원칙이었고 사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학살이 위장한 베트콩의 소행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게릴라인 그들이 청룡부대 코앞에서 노출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류씨는 “재판의 승패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증언에 나선 이유에 대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정한 것인가를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세상에 경종을 울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