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크 조코비치, 카이리 어빙, 에릭 클랩턴은 여전히 위대할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위근우

‘안티백서’ 스타들의 팬데믹 이후

전 지구적 팬데믹 앞에서 노바크 조코비치는 ‘테니스를 세계에서 가장 잘했던 접종 거부자’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

전 지구적 팬데믹 앞에서 노바크 조코비치는 ‘테니스를 세계에서 가장 잘했던 접종 거부자’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

남자 테니스계의 GOAT(Greatest Of All Time)는 누구일까.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흔히 ‘페나조’라 불리며 오랜 시간 라이벌 관계를 유지한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 노바크 조코비치 셋 중 하나일 거라는 데에 부정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이 중 조코비치는 전성기에 누구보다 압도적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부상을 극복하고 페더러, 나달과 동일한 그랜드슬램 20승을 기록한 현재 여전히 높은 랭킹(1월25일 현재 1위)을 기록 중이라 조만간 두 경쟁자를 제치고 GOAT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다. 이미 9번이나 우승한 호주오픈에서 10번째 우승을 거뒀더라면 두 경쟁자보다 명백히 한발 앞서게 될 터였다. 하지만 정작 이번 호주오픈을 계기로 그는 사람들에게 훗날 역대 최고의 남자 테니스 선수 혹은 최고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보다는, 반지성적 안티백서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반대 메시지를 꾸준히 내던 그는 지난 1월 초 호주오픈 출전을 위해 호주에 입국했지만 호주 연방정부에 의해 비자가 취소되어 격리되었고, 입국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논란까지 벌어지며 법정 공방 끝에 강제 추방되었다. 호주오픈에서 1번 시드를 받으며 우승 시동을 걸던 그의 선수 경력엔 제동이 걸렸고, 스포츠 스타로서의 이미지엔 치명적 흠결이 남았다. 이것은 팬데믹이라는 우연적 상황에서 벌어진 평판의 문제일까. 조코비치만이 아니다. 역시 백신 접종을 거부 중인 NBA 선수 카이리 어빙, 아예 백신엔 독성물질이 있다고 믿어 백신 자체를 반대하는 블루스 기타의 전설 에릭 클랩턴 등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잘못된 메시지를 전파 중인 안티백서 스타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안티백서로서의 과오로 그들의 성취를 덮는 것이 과잉해석일 수 있지만
그 이전에 그들의 성취가 기록되는 방식 역시 과잉해석적인 면이 있다
조코비치나 에릭 클랩턴이 누린 명성이 사회적 맥락과 해석에 기댄 만큼
그들의 ‘반사회적 행위’는 그 명성을 비슷한 차원에서 침식할 수 있다

무책임한 시민을 위대한 선수, 훌륭한 예술인으로 기억해도 되느냐는 포괄적 질문을 하려는 건 아니다. 시민의 책무가 우선한다는 것이 개인의 다른 모든 미덕과 성취를 지워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억지로 지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팬데믹이라는 우연적 사건에 집중하고 싶다. 유명인 안티백서의 명백한 공적 해악과 별개로, 그들의 등장은 코로나19라는 이례적 상황이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서로에게 불운한 경험일까.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뒤이어 질문할 수 있다. 전 지구적 팬데믹 앞에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행위는, 통신 및 중계 기술의 발달을 통한 전 지구적 스포츠 비즈니스의 확장과 그 안에서 특정 종목의 달인이라는 이유로 역시 전 지구적 동경의 대상이 되고 천문학적 상금과 연봉을 획득하는 행위보다 특별히 더 우연적이고 더 예외적인가? 흑인 음악의 전파와 거대 음반 산업의 부흥이라는 특정한 시대적 맥락 안에서 역시 기타를 잘 치는 것으로 전 지구적 명성과 존경을 획득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경험이라 할 수 있는가? 팬데믹이 당연하진 않지만 외면할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인 배경이라면, 전 지구적 문화·스포츠 산업은 현실적이지만 그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은폐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백신 접종을 거부 중인 NBA 선수 카이리 어빙. 연합뉴스

백신 접종을 거부 중인 NBA 선수 카이리 어빙. 연합뉴스

백신 자체를 반대하는 블루스 기타의 전설 에릭 클랩턴도 안티백서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연합뉴스

백신 자체를 반대하는 블루스 기타의 전설 에릭 클랩턴도 안티백서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연합뉴스

안티백서는 안티백서고, 테니스와 농구, 기타 실력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흔한 해명은 그래서 굳이 도덕적 접근을 하지 않더라도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언제나 기능인 이상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의 백핸드 스트로크와 어빙의 크로스오버 드리블과 클랩턴의 ‘Layla’ 기타 솔로를 남들이 따라할 수 없다는 것이, 그로부터 그들이 얻은 상징적·물질적 가치를 당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산업의 규모와 기술의 발달, 종목과 장르의 인기 등 수많은 우연적 요소들이 개입한다. 즉 안티백서로서의 과오로 그들의 지난 성취를 덮는 것이 과잉해석일 수 있지만, 그 이전에 그들의 성취가 기록되는 방식 역시 과잉해석적인 면이 있다. 가령 카이리 어빙은 현존하는 최고의 드리블러다. 드리블만 따진다면 그 역시 GOAT에 꼽힐 법하다. 하지만 묘기에 가까운 그의 테크닉이 마냥 신기하기만 한 기예가 아닌 위대한 무엇으로 느껴지기 위해선, 2015~2016 시즌 파이널 7차전에서 사실상 소속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우승을 결정지은 위닝샷으로부터 도전과 배짱과 헌신의 가치를 읽어내는 서사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삶의 여러 순간마다 개차반이었던 에릭 클랩턴이 그럼에도 노년까지 기타의 신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기타 선율에 채보로는 기록할 수 없는 영혼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부당하진 않더라도 과도하다. 여기엔 피에르 부르디외가 ‘일루지오’라 명명한, 문화 생산과 향유를 유지하기 위한 참여자들의 공모로서의 환상적 가치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수준에서 작동한다.

‘안티백서’ 조코비치는 지난 1월 초 호주오픈 출전을 위해 호주에 입국했지만 법정 공방 끝에 강제 추방됐다.  연합뉴스

‘안티백서’ 조코비치는 지난 1월 초 호주오픈 출전을 위해 호주에 입국했지만 법정 공방 끝에 강제 추방됐다. 연합뉴스

조코비치나 에릭 클랩턴이 누린 명성이 다분히 사회적인 맥락과 해석에 기댄 것인 만큼, 그들의 반사회적 행위는 그 명성을 비슷한 차원에서 침식할 수 있다. 이것은 양수와 음수를 더한 합 같은 것이 아닌,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의미를 재구성 및 재서술하는 것에 가깝다. 조코비치에 대해 테니스를 세계에서 가장 잘했던 접종 거부자로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본인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믿음으로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치열하고 논쟁적이었던 경쟁 구도를 우스꽝스럽게 만든 원흉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GOAT에서 Greatest의 의미를 상당 부분 희생하지 않고선 그가 다시 GOAT의 유력 후보가 되긴 어렵다. 에릭 클랩턴도 말년에 백신 음모론에 빠진 왕년의 기타 영웅이 아닌, 반지성주의 음모론을 심지어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음악이 세상에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자기 기반을 스스로 짓뭉갠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는 고정된 사실로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과 새로운 맥락에서 새로 쓰일 수 있다. 2012년 호주오픈 결승에서 조코비치가 나달과 벌인 초인적인 장기전의 놀라움, NBA 결승전 마지막 경기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스테픈 커리 앞에서 성공한 어빙의 위닝 3점슛의 짜릿함, 한국 대중이 그토록 사랑했던 ‘Tears In Heaven’의 가사와 멜로디의 따스함 모두.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물론 유명인 안티백서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냐는 문제는 그들의 실천적 해악과 그에 대한 대응만큼 시급하진 않다. 조코비치가 GOAT가 되느냐 마느냐는 것은 그의 존재로 인해 수천 수만의 안티백서가 용기를 내 발언하는 것에 비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안티백서에 대한 공적 비판은 자칫 그들만 아니었으면 누릴 수 있거나 그들만 협조하면 언젠가 되돌아갈 수 있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세계라는 환상을 강화한다. 하지만 애초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세계는 없으며, 그것은 팬데믹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세계를 이상화하기 위해선 상당한 허위가 필요하다. 안티백서 스타들의 상징적 가치를 해체하는 과정은 그들의 공적 해악에 대한 비판을 더 수월하게 해주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상도 결코 당연한 것만은 아니라는 팬데믹 시대의 통찰을 유지하게 해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며 위대함에 대한 기준 자체가 새롭게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테니스계의 GOAT와 기타의 신의 위상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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