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난제로 본 국민연금 35년

김서영 기자

국민연금은 올해로 시행 35년차를 맞았다. 선진국의 연금제도에 비하면 비교적 젊은 ‘청년’이지만 지나온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표적 논쟁거리인 기금 고갈 우려만 보더라도 사실 근래에 대두된 것이 아니고 국민연금과는 오래전부터 ‘빛과 그림자’ 같은 관계였다. 국민연금이 가는 곳엔 적자, 기금 고갈 걱정이 늘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런 우려를 덜고자 국민연금은 두 차례 제도개혁에 착수했고 5년마다 재정계산을 새로 하며 미래의 방향을 잡았다. 굵직한 변화를 중심으로 국민연금의 역사를 살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전 국민 연금’과 두 차례 개혁

국민연금 도입 이전에는 1973년 만든 국민복지연금법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74년부터 국민복지연금제도를 시행하려 했으나, 1973년 10월 오일쇼크가 터지며 불발에 그쳤다. 그후 1986년 제5차 사회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국민복지연금법을 국민연금법으로 전면 개정하고 우리가 아는 국민연금이 1988년 첫발을 뗐다.

이후 국민연금은 점점 더 넓은 대상을 품으며 덩치를 키웠다. 이른바 ‘전 국민 연금’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 국민연금은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사업장가입)을 대상으로 했다. 이후 1992년 5인 이상 사업장, 1995년의 농어촌거주자(지역가입)에 이어 1999년 도시 자영업자로 범위를 넓혔다. 2006년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까지 포함했다. 이후 소득이 없어 연금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전업주부나 27세 미만 학생의 임의가입까지 받기 시작하면서, 공무원 및 사립학교·일반교직원과 직업군인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를 제외하면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덩어리가 커진 만큼 조정이 불가피했다. 국민연금이 작동하는 구조, 즉 ‘몇살부터 받을 것이냐(수급개시연령)’와 ‘얼마를 받을 것인가(40년 가입을 기준으로 납부자의 생애평균소득 대비 수령 연금액을 의미하는 소득대체율 혹은 연금급여율)’를 어떤 형태로든 손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해 1996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을 꾸렸고 김대중 정부가 1998년 1차 제도개혁에 나섰다.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개시연령을 기존 60세에서 2013년 61세, 2033년 65세로 단계적 상향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한마디로 ‘더 늦게 시작해 덜 받는’ 쪽으로의 개편이었다.

2003년 제1차 재정계산에서 보험료율(9%)과 소득대체율(60%)을 현행처럼 유지하면 2036년에 국민연금이 적자로 돌아선다는 전망이 나왔다. 적자 이후 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으로 예측했다. 2003년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국민연금을 막 도입한 1988년(1.55명)에 비하면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든 상태였다. 이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보험료율(기준소득대비 보험료 납부액의 비중)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즉 ‘더 내고 덜 받는’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7년 2차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후보 토론 때만 하더라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하향해야 한다는 상대측 후보에게 “용돈 연금을 만들 것이냐”고 반박했지만, 취임 후 입장을 선회했다. 2003년 제1차 재정계산의 결과가 암담했기 때문이다. 2차 연금개혁은 ‘똑같이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소득대체율을 기존 60%에서 장기적으로는 40%까지 내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2008년 50%로 하향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0.5%p씩 인하해 2028년 40%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2차 연금개혁 덕에 2008년 나온 제2차 재정계산에서 후대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국민연금 적자 전환 시점을 2036년에서 2044년으로, 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에서 2060년으로 늦췄다. 제3차 재정계산(2013년) 또한 적자 전환 시점을 2044년, 기금 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전망했다.

■보험료율 조정이란 ‘역린’

연금개혁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사회 진입이라는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수급개시 연령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방향(‘더 늦게, 더 적게’)이 일반 국민에겐 ‘손해’로 다가갔기에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2005년쯤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국민연금 8대 비밀’이나 ‘안티 국민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이전보다 국민연금을 못 받는다는 데 따른 불만 표출이었다.

중요한 점은 두 차례 연금개혁 모두 ‘얼마를 낼 것인가’, 즉 보험료율을 건드리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얼마를 내느냐’는 ‘언제부터 받느냐’, ‘얼마를 받느냐’와 더불어 국민연금을 이루는 세 기둥이나 번번이 손질을 비껴갔다. 뻔히 예상되는 반발을 감안할 때 보험료율 개혁이란 정부로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逆鱗·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로, 건드려선 안 되는 약점을 비유)이나 마찬가지여서다. 그 탓에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88년 3%로 시작해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이래 24년째 9%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 대비 확연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보험료율을 2003년 13.6%에서 2017년 18.3%로 인상했고, 독일은 18.7%, 미국은 12.4%를 낸다(2018년 기준).

문재인 정부도 보험료율 문제를 피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현행유지를 포함해 소득대체율을 45~50%로, 보험료율을 12~13% 수준으로 올리는 방안 등 4가지 안을 제출했지만, 하나도 채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반려했다.

이제 다시 5년이 지나 내년이면 제5차 재정계산을 발표한다. 그사이 출산율은 1.05명(2017년)에서 0.84명(2020년)으로 더 떨어졌다. 국민연금제도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인구 구조로의 진입이다. 더구나 지난해 말 통계청은 코로나19로 결혼과 출산이 줄어들며 2025년 출산율이 0.52명으로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2025년은 다음 정부 임기가 한창인 시점이기도 하거니와,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상으로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 해다. 3년 뒤에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란 얘기다. 차기 정부 앞에 연금개혁이라는 역린을 지혜롭게 풀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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