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은 엄마의 노동에서 여성의 노동을 읽어냈다

심윤지·이하늬 기자

대형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김은화씨(35)는 퇴사 후 ‘딸세포’라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처음 낸 책은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2019). 은화씨 엄마 이야기였다. 은화씨는 직접 엄마를 인터뷰하고 엄마의 삶을 썼다. 엄마가 이혼한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엄마를 한 사람의 강인한 노동자로 바라보게 해줬다. 은화씨는 “책을 쓰고 나서 편해졌다”고 말했다. “엄마가 (내가)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매우 강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김은화씨(가운데)는 출판사 퇴사 후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2019)라는 책을 펴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부양자로 살아온 어머니의 노동을 기록했다. 사진은 은화씨와 어머니의 맞잡은 손. 김은화씨 제공

김은화씨(가운데)는 출판사 퇴사 후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2019)라는 책을 펴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부양자로 살아온 어머니의 노동을 기록했다. 사진은 은화씨와 어머니의 맞잡은 손. 김은화씨 제공

은화씨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엄마는 그간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같은 호칭은 남성에게만 명예롭게 주어졌다. 나는 여기에 대항해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다고, 아니 살렸다고. 그녀의 노동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엄마는 우리 가족의 생계부양자였으며, 진정한 가장이었다고 말이다.”

책이 출간된 뒤 은화씨는 “나도 엄마의 삶을 써 보고 싶다”는 여성 독자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나도, 우리집도 사실은 엄마가 먹여 살렸다는 딸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은화씨를 비롯해 엄마의 삶을 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는 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980~1990년대생인 이들은 왜 엄마의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엄마를 노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딸들의 시선은 자신을 포함해 여성들의 노동을 재평가하는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미안한데 답답했다

은화씨의 생애 첫 기억은 부엌 싱크대로 의자를 가져온 뒤 까치발을 들고 엄마 대신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늘 안 돼 보였거든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엄마를 도와줘야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많은 딸이 어릴 적부터 엄마의 정서적 공감자를 자처하고, 가정 내 엄마의 노동을 나눠 맡는다. 은화씨는 “어릴 때부터 오빠 물 심부름은 내가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집안 분위기가 흘러갔다”고 말했다.

은화씨의 엄마는 오전 6시에 일어나 자식들 도시락과 아픈 시부모님의 밥상까지 10인분의 밥을 차렸다. 공장 노동자부터 시작해 결혼 이후에도 하숙집과 만화방, 한복집을 경영했고 안경공장과 출판물류센터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요양보호사로도 오래 일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는 삶에서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곤 했다. 이혼 이후 엄마의 부정적 감정은 더욱 깊어졌고, 그런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은화씨의 책임감도 강해졌다.

7살 은화씨가 어머니(맨왼쪽)의 응원을 받으며 달리기를 하고 있다. 김은화씨 제공

7살 은화씨가 어머니(맨왼쪽)의 응원을 받으며 달리기를 하고 있다. 김은화씨 제공

엄마 윤순자씨(68) 삶을 바라보는 마혜원씨(36)의 마음도 복잡한 경로를 거쳐왔다. 혜원씨 남매는 부모님이 식당을 하는 동안 할머니 손에 컸다. 할머니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딸들에게만 공감을 바랐다. 혜원씨는 “할머니한테 말 걸면 엄마가 서운할 것 같고, 엄마한테 말 걸면 할머니가 서운할 것 같았다”며 “가족들이 저한테만 온갖 감정을 쏟아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원미라씨(36)의 기억 속 엄마는 늘 피곤해 보였다.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 집에서 엄마는 늘 지쳐 있었다. 밖에서 일하고 돌아와 할머니의 밥을 차리고 가사노동을 하는 엄마를 보며 미라씨는 미안함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꼈다. “엄마는 일하고 돌아와서도 계속 일을 하는구나 인식하게 됐어요. 미안한 마음 한편에는, 엄마는 왜 저렇게 사나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엄마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건 미라씨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라씨는 고교 졸업 후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목수인 아버지가 산업재해를 당해 다치면서 생계 활동에 뛰어들었다. 미라씨는 “취업을 하고서야 엄마 삶에서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가는 제 상황과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한 엄마의 상황이 겹쳐지더라고요. 엄마는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노동에 내몰려야 했구나. 그렇게 이해하게 됐어요.” 미라씨는 나중에 자신의 힘으로 대학에 갔다.

엄마를 사랑해도 엄마의 삶을 똑바로 바라보고 글로 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딸들은 자신 역시 가부장제의 가담자가 아닌지 자책한다. 은화씨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려면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내가 엄마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 미안함, 원망 같은 감정이 계속 떠올라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남성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빠르게 무너졌다. 이후 결혼한 여성의 경제 활동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진은 2001년 열린 ‘여성인력 활용 선진화방안’ 심포지엄.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남성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빠르게 무너졌다. 이후 결혼한 여성의 경제 활동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진은 2001년 열린 ‘여성인력 활용 선진화방안’ 심포지엄.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딸들은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사진은  대구에서 상경한 두 여성 청년이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면접 대기장소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19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딸들은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사진은 대구에서 상경한 두 여성 청년이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면접 대기장소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엄마와 딸을 이어주는 ‘페미니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이 사회 전면에 중요 의제로 등장한 것은 딸들이 엄마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이후 <마더북>(2019), <그 여자의 자서전>(2019) 등 딸이 엄마의 생애를 기록하는 책들이 잇따라 발간됐고, 엄마의 자서전을 쓰는 작업을 돕는 사회적 기업도 등장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만난 딸들도 엄마의 노동을 새롭게 보게 된 계기로 페미니즘을 꼽았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엄마의 노동과 가정폭력에 대해 연재하고 있는 김도미씨(34·필명)는 대학에서 여성학을 배우면서 엄마의 노동을 새로 보게 됐다. 도미씨 부모님은 작은 공장을 함께 운영한다.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에는 엄마의 노동은 ‘아빠 뒤치다꺼리’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아빠가 하지 않는(못하는) 그 많은 일을 엄마가 했기에 집과 공장이 돌아갈 수 있었더라고요.” 페미니즘은 많은 딸에게 ‘그냥 우리집 일’로 여겨지던 것들을 사회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남성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빠르게 무너졌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여성들은 엄마가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을 목격하며 자랐다. 이들은 1990년대 남녀평등 의식 확산과 함께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세대를 “여성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집단적으로 정립한,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독특한 세대”라고 표현했다. 신 교수는 “이들이 엄마를 보는 감정은 경외심과 두려움”이라며 “앞선 세대와 비교해 결혼과 출산, 육아를 당연한 규범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경력단절 없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고민은 여전히 크다”고 했다.

딸들은 엄마가 자신의 노동을 긍정하길 바란다. 류벼리씨(32)는 ‘엄마 역할을 잘 못했다’는 엄마의 자책을 듣고 구술생애사 작업(한 사람의 생애를 듣고 글로 옮기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벼리씨의 엄마는 35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대학교 시간강사였던 아버지를 대신해 사실상의 생계부양자 역할을 했다. 평생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을 분주하게 오갔으면서도, 늘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하는 엄마가 안타까웠다. “엄마에게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다, 엄마 스스로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 엄마가 울었거든요. 페미니즘을 배워보라는 말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바뀌기 싫다’고 하시는 거예요. 엄마한테는 페미니즘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혼하라는 얘기로 들린대요.”

원미라씨는 15년을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로 일한 어머니를 떠올리며 2020년 12월 집단해고된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연대집회에 참여했다. 사진은 파업 100일차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텐트 시위.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원미라씨는 15년을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로 일한 어머니를 떠올리며 2020년 12월 집단해고된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연대집회에 참여했다. 사진은 파업 100일차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텐트 시위.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60대 청소노동자인 원미라씨 어머니의 일기장. 자신과 딸의 출근에 대한 단상이 기록돼있다. 원미라씨 제공

60대 청소노동자인 원미라씨 어머니의 일기장. 자신과 딸의 출근에 대한 단상이 기록돼있다. 원미라씨 제공

딸들의 시선은 엄마의 노동을 매개로 고령 여성 전체의 노동까지 확장되고 있다. 원미라씨는 2020년 12월 집단해고된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연대집회에 참가했다. 15년을 비정규직으로 병원에서 청소노동을 해 온 엄마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다. 미라씨는 집회에서 “우리 여사님들은 강하지 않습니까. 대걸레 한 번 휘둘러 본때를 보여주십시오”라고 쓴 엄마의 편지를 대신 읽었다. 그는 “엄마가 파업하는 것을 걱정할 청소노동자분들의 자식들에게도 힘을 주고 싶어서 집회에 갔다”고 말했다. 미라씨 엄마는 지난해 초 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50여년을 일했지만 처음으로 받은 사원증을 보고 미라씨도 엄마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도미씨는 “‘엄마’ ‘할머니’ 등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 노동을 숭고한 것으로 타자화(어떤 대상을 본인의 의지나 정체성과 달리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 시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건 숭고한 희생 같은 게 아니라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로 인식해야 해요.” 은화씨는 책이 나온 뒤 엄마에게 독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사람들이 엄마 살아온 거 멋지다고 한다”고. 은화씨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제 내가 지나온 날들을 한 번 껴안아 봐야겠다.” 은화씨는 말했다.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거면 됐다. 진짜 그거면 됐다.”

■젠더기획 특별취재팀
장은교(젠더데스크) 이아름·심윤지(플랫) 조형국·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이하늬(정책사회부) 이준헌(사진부) 최유진(뉴콘텐츠팀) 김윤숙(교열부)


[젠더기획]"일하는 여자가 되어라" 딸에게 전하는 순자씨의 진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2090600011)

[젠더기획]딸들은 엄마의 노동에서 여성의 노동을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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