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쿠팡 노동자...유족 "열심히 일한 대가가 죽음이냐"

유선희 기자
지난 12일 경기 수원시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로,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 1명이 사업장에서 쓰러진 지 50일 만에 숨졌다. 유선희 기자

지난 12일 경기 수원시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로,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 1명이 사업장에서 쓰러진 지 50일 만에 숨졌다. 유선희 기자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또 스러졌다. 중학생 아들을 키우며 생계를 책임지던 A씨(53)는 지난해 12월24일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두통을 호소한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잃었다. 그로부터 50일이 흐른 지난 11일 A씨는 깨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지난 12일 경기 수원시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A씨의 언니(58)는 “열심히 일한 대가가 죽음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유족 측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7월부터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본래 쿠팡 덕평 물류센터에서 일했으나 지난해 6월 대형화재로 문을 닫게 되면서 노동자들이 전국 각 물류센터로 흩어졌는데, A씨는 집과 가까운 동탄으로 갔다.

A씨가 담당한 업무는 ‘입고 전산 지원(서포터)’이었다. 공정에 물건이 들어오면 확인하고 제대로 들어왔음을 전산으로 등록하는 일이다. 하지만 유족과 직장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본래 업무 외 일들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일정근무 시간동안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 분류하는 일명 ‘까대기’ 업무였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에게 전산업무를 교육하는 것이 A씨의 주된 일인데, 그 밖에 육체적인 업무가 많았다고 한다.

기자가 유족 측을 통해 A씨가 직장동료와 나눈 메신저 카카오톡을 확인해보니 A씨는 “하지 말아야 될 거 하고, 진짜 해야 될 것은 잘하니 이제 혼자 하라고 한다”, “일을 너무 무식하게 시킨다” 등 하소연이 담겼다. 레일에 실려오는 짐을 내리는 강도높은 업무(레일워터) 지시가 내려와 힘들다는 대화도 담겼다. 그러자 A씨의 직장동료는 “이러다 사람 죽겠다”고 답한다. 특히 노동조합 측은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 이후 해당 물류센터 물량이 전국 물류센터로 분산되면서 규모가 큰 동탄 물류센터 업무가 더 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숨진 노동자 A씨가 직장동료와 주고 받은 메신저 카카오톡 내용으로 무리한 지시에 대한 하소연이 담겼다. 직장동료가 보낸 커피 쿠폰으로 위로를 받는 마음도 담겼다. 유족 측 제공

숨진 노동자 A씨가 직장동료와 주고 받은 메신저 카카오톡 내용으로 무리한 지시에 대한 하소연이 담겼다. 직장동료가 보낸 커피 쿠폰으로 위로를 받는 마음도 담겼다. 유족 측 제공

유족 측은 A씨가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사건 당일인 지난해 12월24일 오전 11시25분쯤 머리에 이상 증세를 호소하고 주저앉았다. A씨는 주변에 신고를 부탁했는데, 119 신고 접수는 20여분이 흐른 오전 11시45분에 이뤄졌다. 유족 측은 신고를 하려면 매니저와 안전보건팀까지 보고가 이뤄져야 해 늦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병상이 없어 20km 거리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증상 호소 후 1시간25분여 시간이 흐른 오후 12시52분쯤 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아예 의식을 잃었다.

A씨가 의식을 잃기 10분 전 언니에게 전화해 자신의 상황을 알린 통화가 마지막이 됐다. A씨의 언니는 “조금만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남겨진 아이는 어쩌냐”고 울먹였다. 이어 “동생은 힘든 걸 내색하지 않는 성격으로, 일을 다 떠맡아서 한 건 아마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동탄 물류센터에서는 지난해 1월 50대 일용직 노동자 1명이 새벽 4시30분 야간업무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이 노동자도 결국 숨졌다. 민병조 공공운수노조 동탄센터 쿠팡물류센터지회 지회장은 “1분이라도 빨리 옮겨야 하는 시점에 보고를 하면서 허비한 시간이 있었다. 신고와 관련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속도 중심의 작업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 수사당국도 모든 법 위반 여부를 열어두고 조사해달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쿠팡 측은 “일명 ‘까대기’ 업무는 전담 직원들이 별도로 있다. A씨가 제품 정리 일부를 담당했을 수 있겠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한 것이 아니고, 여기에 부당한 지시도 없었다”며 “회사에 고충을 말하는 별도 채널이 있는데 A씨가 찾아온 기록도 없다”고 했다. 신고 체계에 대해서는 “매니저와 안전보건팀을 꼭 거쳐야 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경중에 따라 누구나 119에 신고할 수 있다”면서 “회사가 자체 확인한 결과 A씨가 두통을 호소하고 휴식을 취한 것은 11시29분으로, 신고까지는 10여분이 소요됐다. 고인의 상태가 완화하지 않아 악화할 수 있다고 판단해 즉시 119신고를 하는 등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또 “회사에서 파악한 결과 육체적인 노동강도가 높다고 볼 수 있는 ‘상하차’ 업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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