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알맹이 빠진 배차 알고리즘 공개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콜 몰아주기 논란에 구체적인 해명과 설명 없어

카카오 T 택시 / 연합뉴스

카카오 T 택시 / 연합뉴스

“카카오택시 영업비밀 배차시스템 공개 초강수”, “콜 몰아주기 논란에 카카오, AI 배차 구조 공개 정면 대응…”. 지난 4월 4일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배차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을 홈페이지에 게시하자 일부 언론이 보인 반응이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

뜨거운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다양한 변수와 항목을) 적절히 고려해 실제 배차시스템에 적용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거나 “이러한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등의 추상적인 문구로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카카오, 알맹이 빠진 배차 알고리즘 공개

■충성도 높은 기사에 우선 배차

카카오가 AI 배차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고려하는 핵심변수는 무엇일까? 앱을 켜고 카카오택시를 부르면 순차적으로 5분 거리, 7분 거리, 10분 거리의 기사에게 요청을 보낸다는 메시지가 뜬다. 승객 입장에서는 도착예정시간이 배차의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인식을 준다.

그러나 카카오가 설명한 AI 배차시스템은 ‘호출을 수락할 확률이 높고 운행 품질이 보장된 기사 후보군’을 예측한 뒤, 이러한 후보군 중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기사 1명에게 먼저 콜 카드(배차 수락 요청)를 발송하는 방식이다.

이런 배차 로직은 수많은 데이터 검증을 거쳐 가장 먼저 콜을 받는 기사의 콜 수락률이 높아지도록 짜인 것이다. 즉 첫 번째 기사의 수락 거부율은 매우 낮을 것이기에 이 배차 로직의 핵심은 가장 먼저 콜 카드를 발송할 ‘기사 후보군’을 어떻게 예측해 내느냐에 있다. 여기서 카카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은 승객 대기시간 최소화와 운행 중 만족도라고 한다.

대기시간을 줄이려면 ‘콜 수락률’이 높은 기사가 우선순위에 놓이게 되고, 만족도의 경우 승객들의 평점이 좌우하게 된다. 결국 앱 호출에 대한 기사들의 충성도(콜 수락률)와 종속성(높은 평점을 받아야 호출이 많아짐)에 따라 우선 배차되는 시스템이란 얘기다.

게시내용 어디에도 알고리즘 공개 요구의 이유가 됐던 ‘콜 몰아주기 논란’에 대한 해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자료의 끝부분 Q&A에서 카카오T블루(직영 및 가맹택시) 기사와 일반 기사에게 적용되는 배차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했다.

일반 기사의 경우 호출의 목적지가 표시되는 대신 콜 카드에 재빨리 응답해야만 배차가 이뤄진다. 반대로 카카오T블루 기사는 목적지가 표시되지 않는 대신 제한시간 내에 별도로 거절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자동배차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대체 왜 둘 사이의 배차 방식이 다른 건지, 방식이 달라짐으로써 배차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앞서 얘기한 것처럼 카카오의 AI 배차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콜 수락률’이었다. 수락률이 높아야 이후 콜 배정에 유리한데,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자동배차가 이뤄지는 카카오T블루 기사에게 콜이 집중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지 않은가.

■유럽연합 입법지침과 스페인 라이더법

“플랫폼 기업은 노동조건·취업 등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인공지능의 기초가 되는 매개변수(parameter) 등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평의회(노동조합)에 제공해야 한다.” 지난해 3월, 스페인에서 제정된 ‘라이더법’에 명시된 알고리즘 관련 조항이다.

이 법이 한국에 도입됐다면 카카오는 AI 알고리즘의 기초가 되는 항목들이 무엇인지(도착예정시간·거리·콜 수락률·평점 등으로 예상)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 항목에 각각 어떤 비중과 가중치를 두고 있는지를 노동조합에 제공해야 한다. 이 비중과 가중치가 바로 ‘매개변수’에 해당한다.

카카오는 지금의 알고리즘을 완성하기까지 항목과 매개변수를 수도 없이 변경하며 기계 학습(머신러닝)을 수행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거리나 도착예정시간에 높은 가중치를 주다가 콜 수락률로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등의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조작했을 것이다. 이 경우, 변경한 사실과 내용은 물론 이 과정에서 승객 대기시간이 얼마나 줄었고 운행수는 얼마나 늘었는지에 대한 정보도 노동조합에 설명해야 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플랫폼노동 관련 입법지침에서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특히 일감배정, 가격 결정, 등급(평점), 계정 정지 알고리즘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노동자들에게 설명할 의무를 명시했다. 카카오에 설명을 요구하는 배차 알고리즘이 바로 일감배정과 등급(평점) 알고리즘에 해당한다.

카카오, 알맹이 빠진 배차 알고리즘 공개

■알고리즘은 취업규칙, 설명하고 교섭해야

알고리즘은 영업비밀이며 기업의 핵심기술인데 이를 어떻게 공개하느냐는 반론이 있다. 프로그램 코딩 내용을 공개하라는 게 아니라 작동원리를 설명하라는 것이다. 배달 플랫폼을 예로 들어보자면 라이더의 수입(가격 결정 알고리즘), 징계 및 해고(등급·계정 정지 알고리즘), 배달 물량(일감배정 알고리즘)이 작동원리다.

이 모든 내용은 영업비밀이나 핵심기술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정해놓은 취업규칙에 해당한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알리고 설명해야 한다. 이걸 블랙박스처럼 꼭꼭 숨겨두고 플랫폼노동자 부려먹는 데 써먹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만일 알고리즘을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면 노동자들과 협의하거나 노동조합과 교섭하도록 하는 게 옳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카카오모빌리티의 알고리즘 설명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배차에 사용하는 항목과 매개변수는 무엇이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왜 배차 방식을 일반 기사와 카카오T블루 기사에게 다르게 적용하는지, 그에 따라 각각의 콜 점유율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카카오T블루에 콜 몰아주기가 이뤄졌다면 이를 개선할 방법은 무엇인지 공개해야 한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현재 전국대리운전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노동조합의 핵심 요구가 바로 배차 알고리즘 공개와 공정한 운영, 알고리즘에 노동조합 요구 반영, 평가위원회를 통한 검증 등이다. 카카오모빌리티 스스로 입만 열면 20만 대리기사의 처우 개선을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마땅히 대리기사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알고리즘 설명·공개와 함께 성실한 교섭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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