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긴장되는 병원 가는 길…질문거리 예습하고 ‘검진수첩’으로 복습

신혜광·이은혜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다른 삶]늘 긴장되는 병원 가는 길…질문거리 예습하고 ‘검진수첩’으로 복습

우리 아이는 2019년 태어났다. 적극적인 이주민정책과 복지정책으로 2009년부터 상승세를 지속하던 출생자 수가 2016년 79만2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소폭 감소 추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독일은 여전히 유럽연합 평균(2019년 여성 1인당 자녀 수 1.53명)과 비슷한 추세로 출생률이 높은 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출생 증가 추세 때문인지 산부인과, 출산병원, 소아과, 어린이집 등 아이와 관련된 모든 기관의 상담 및 방문은 예약부터 쉽지 않았다. 여기에 ‘등록환자’만 진료하는 병원들은 환자 수가 고정적이라 더더욱 빈자리 찾기가 어렵다. 몇 달씩 예약을 걸어 놓는 경우도 많아서 여러 차례 전화 통화와 방문을 해도 인연이 닿지 않는 곳이 많다. 우리 부부도 지도에 나와있는 집 근처 연락 가능한 모든 소아과를 수색하듯이 샅샅이 살폈다. 여러 번 이곳저곳 문을 두드린 끝에 드디어 연락이 왔다. “○월부터 한 자리 가능하네요!” 그렇게 인연이 닿은 곳이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이다.

보통의 소아과는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예약 없이 급하게 가는 경우 상당히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예약이 어그러지는 환자가 생길 경우 예약 외 진료를 하기도 하지만 병원에서는 예약 진료가 끝나는 오후 2시 이후에 방문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보통 부모들은 원래 다니던 병원을 선호하고 병원 측에서도 새로운 환자보다 기존 예약 환자를 더 선호한다. 심지어 등록환자 외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도 있다. 아이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검진수첩’을 통해 어느 병원에서나 아이의 진료나 의료기록을 살펴볼 수는 있지만 아이에게 익숙한 환경과 의사가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출생율 높은 독일의 소아과는
‘등록환자’ 위주 예약제로 운영
매달 월급서 나가는 건보 덕에
출생 때부터 의료비 거의 안 들고
생후 64개월까지 9단계 검진 받아

아이의 한 발만 잡고 거꾸로 드는
‘대퇴골 발달’ 검사는 낯설었고
약 처방 깐깐해 서운할 때 있지만
‘양파 썰어놓기’ 같은 자연요법은
독한 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소아과의 풍경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크게 바뀌지 않았다. 출입문 앞의 안내데스크, 그 앞에 놓인 큰 미끄럼틀과 익숙한 카펫, 손때 묻은 장난감 등등 여전하다. 근무하는 분들 역시 우리 부부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로 변함없다.

직원분들의 따뜻함도 큰 부분이다. 코 언저리에 걸친 안경 너머로 선한 웃음을 띠고 아이를 진찰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 좀 통하지 않아도 괜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정기 검진이 아니라 감기 등의 특정 상황으로 예정에 없던 방문을 하게 되면 좀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데, 척척 알아듣는 느낌이랄까. 보호자가 좀 버벅대도 편안하게 대해주는 모습도 이 병원을 계속 찾는 이유라면 이유다.

만약 소아과를 선택하는 과정에 비용이라는 옵션이 포함됐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다달이 월급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건강보험(우리 가족은 3인 기준 월 380유로, 대략 50만원 정도를 지불한다) 덕에 개별 진료 시 별다른 비용은 들지 않았다. 처방약도 보통 무료이고 특별한 경우 지불한다 해도 몇 유로 정도다. 아이의 출생에도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퇴원 수속도 엄청 간단했다.

처음 병원을 방문하면 ‘산모수첩’과 ‘검진수첩’ 등 진료 당사자가 가진 기록을 살펴보며 병원 기록을 인수받는다. 아이의 검진수첩에는 아이의 출생일에 맞춘 몇 년간의 검진 날짜가 잡혀있는데, 출생부터 생후 64개월까지 총 9단계의 검진을 받는다. 아이가 출생하자마자 수술실 및 회복실에서 받는 검진이 첫 번째다. 출생 후 진행되는 U2(U는 Untersuchung, 독일말로 ‘검진’의 약자이고 숫자는 2번째 검진임을 나타낸다)는 출생병원에서 진행되는데 아이의 몸무게, 키, 머리 크기 등부터 소소하지만 중요한 여러 사항을 검진한다. 이 검진도 병원에 따라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검진이 있는데, 바로 세 번째였던 U3, 출생 후 100일이 되기 전 받은 검진이었다. 세 번째 검진 내용 중 ‘대퇴골 발달사항’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아이의 대퇴골 발달사항을 검사하기 위해 의사가 아이의 한쪽 발만 잡고 아이를 잠시 거꾸로 자유 낙하하듯이 매단 적이 있었다. 담당 소아과 의사는 대퇴골 부분의 발달을 보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사실 나라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있고 익숙한 방식이 있는 것이니, 우리 부부가 독일에서 나고 자랐다면 이 검사가 익숙할 수도 있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언어 때문인지, 육아에 대한 낯섦 때문인지 잠시 혼돈이 왔으나 태연한 아이와 말랑말랑한 분위기에 우리 부부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의 탈의 상태 확인 역시 검진 중 하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골격 발달이나 피부 상태 등을 검진하기 위한 것, 또 하나는 아동학대 여부를 살피려는 것이라고 한다. 의사는 꼼꼼하게 아이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 배나 등 주변을 진찰하기도 한다. 언어 발달 사항도 검진 대상이기 때문에 아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시점부터는 의사가 아이와 직접 대화를 시도한다. 아이가 낯선 환경에 경직되면 중간에 보호자가 모국어로 개입해도 뜻대로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결국 의사에게 직접 의사를 전달하지는 못했다. 가정에서는 의사소통에 별문제가 없다는 보충설명으로 검진을 마무리했다.

병원 가는 길은 항상 긴장된다. 뭔가 걱정해야 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지금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등 확신이 없을 때가 많아서다. 물론 거기엔 언어소통에 대한 부담도 있다. 언젠가 우연히 목격한 어느 엄마처럼, 나도 의사에게 이유식이니 잠자는 습관이니 자잘한 질문을 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어가 서툰 양육자는 필요한 질문만을 정리해 예습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래야 진짜 알아야 하는 정보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심전심으로 우리 아이를 출생 이후 줄곧 봐온 의사가 있고, 그 내용들이 착실하게 기록된 우리의 ‘검진수첩’이 있으니 다행이다.

우리 아이는 생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다. 정기 검진에 보호자 한 명만 동석하고 나머지 보호자는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적도 있었다. 대기자들의 동선이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해 시간 단위로 병원 방문 예약이 진행되다 보니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불편함도 생겼다. 원래도 약 처방이 깐깐한 곳인데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니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약을 처방받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이가 일주일째 대변을 못 보는데 변비약은커녕 물과 차를 많이 마시고 운동을 많이 할 것을 추천해줄 땐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반면 의사들이 추천하는 자연요법이 정말 요긴했던 적도 있다. 그중 하나가 ‘양파 썰어놓기’다. 코가 자주 막히는 아이가 잠잘 때 곁에 채썬 양파를 놓아두라는 담당 소아과 의사의 처방은 백발백중이었다. 물론 침실에 양파 냄새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잠에서 깨지 않고 잘 잘 수만 있다면야 문제될 게 없다. 우리 부부는 독일어로 획득하는 직접적 정보 대신 비슷한 시기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집단지성에 의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힌트’들은 당황하지 않고 상황에 대처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빨리 약 먹고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처방전에 엄격한 독일의 분위기는 더욱 그렇다. “더 독한 약은 없나요”를 즐겨 말하던 내 청년기를 돌아보며 과연 어떤 방법이 더 옳은 걸까 의문도 생긴다.

36개월인 우리 아이는 다음주 정기 검진이 예정돼 있다. 여덟 번째인 이번 검진엔 의사와 직접 대화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요즘 한창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하는 아이지만 의사선생님의 물음에는 얼마나 반응할지 모르겠다.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어린이집 선생님과 나름의 소통 방법을 습득해 나가는 걸 보면서 언젠가 의사선생님과도 그렇게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이는 분명 지난번 독감예방접종을 마치고 의사선생님이 주신 선물을 언급하며 이번에도 선물을 달라고 할 것이다. “아빠, 이번에도 선물 주나?”

*산모수첩(Mutterpass): 임신 중 산모와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가 기록된 수첩이다. 신체변화부터 초음파 검사 결과 등 다양한 정보가 기록된다. 출산병원에서 특별히 꼼꼼히 살핀다.

*검진수첩(Kinderuntersuchungsheft): 출생부터 64개월까지 아이의 정기검진 기록이 담긴 수첩이다. 키나 몸무게와 같은 기본적인 신체정보부터 모든 검사 및 검진 결과가 담당의의 서명과 함께 기록돼 있다.


▶신혜광·이은혜

[다른 삶]늘 긴장되는 병원 가는 길…질문거리 예습하고 ‘검진수첩’으로 복습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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