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스위치 하나 때문에…‘집 공사 악몽’이 시작될 줄이야

이숙명

이숙명의 ‘유유자적’

집 공사가 거의 끝났다. 15개월 만이다. 공사 계약에 없는 외부 공간이 한참 남았고, 그 때문에 수영장도 당장 사용을 못하고, 목공 마무리와 페인트는 아예 다시 해야 하고, 하자 보수 거리가 끝도 없지만 말이다. 현재 인부들은 1년여 벼른 조명과 스위치를 부착하고 있다. ‘스위치를 부착한다’라니, 얼마나 하찮은 정보인가. 이 대목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발리에서 집 짓는 이야기라면 무릇 패기 넘치는 자본주의 탈출 선언문이라든가, 사색적인 전원 예찬이라든가, 파이어족(경제 자립을 이뤄 30~40대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쯤을 기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 나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건 그런 고차원적이거나 거시적인 주제가 아니다. 문제는 스위치다. 스위치 하나에 얼마나 많은 한이 서릴 수 있는지, 집을 안 지어본 사람은 모른다. 생각하니 눈물이 차오른다.

‘손맛’ 가득한 나의 집. 창호를 현장에서 나무로 만드는 게 알루미늄이나 PVC 주문 제작보다 훨씬 쌌다. 하지만 비숙련 인부를 쓴 만큼 제작 기간과 완성도는 아쉬웠다.

‘손맛’ 가득한 나의 집. 창호를 현장에서 나무로 만드는 게 알루미늄이나 PVC 주문 제작보다 훨씬 쌌다. 하지만 비숙련 인부를 쓴 만큼 제작 기간과 완성도는 아쉬웠다.

작년 초, 4월까지 공사를 끝낼 거라는 시공업자의 말을 반쯤 믿은 나는 전기 배선이 시작되자마자 스위치와 플러그를 사러 갔다. ‘흰색이 좋은데 너무 싸서 미덥지가 않네? 그나마 튼튼해 보이는 것 중에 단순한 디자인을 골라야 하나? 아니 그래도 흰색이…’ 오락가락하다 시간에 쫓겨 집어든 것은 은색 플라스틱. 집에 와 생각하니 그것은 애초 구상하던 흰색 페인트 벽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회색 벽은 어떨까? 시공업자는 전체를 페인트로 마감하나, 일부 벽을 콘크리트 폴리싱(콘크리트에 광을 내어 시멘트 색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마감하나 비용과 시간 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럼 반반씩 하지요.” 자신이 인도네시아 최저가 건설 인력 체험을 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는 순진무구하게 결정했다.

은색 스위치가 애초 구상하던 흰색 페인트 벽과 어울리지 않아 벽을 손댄 게 결국 대소동 불러
작업 순서엔 무관심한 현장 인부들의 ‘멋대로’에 4개월 걸린다던 공사가 15개월 걸려
덕지덕지 흉물스러운 벽을 볼 때마다 숙연…이게 ‘면벽 수행’이라는 걸까

건축과 인테리어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깨끗한 마감을 위해서는 분진이 날리는 작업을 먼저 하고, 그걸 쓸어낸 다음 페인트를 칠하고, 페인트가 완전히 마른 후 조명·스위치·플러그·문짝 손잡이 같은 소품을 설치하는 게 맞다. 하지만 건축업자들은 기능에만 집중한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해치우고 일당을 받아야 하는 인부들은 더욱 순서 따위에 관심 없다. 프랑스인 시공업자나 인도네시아인 공사감독이나 말을 안 들어먹긴 매한가지였다. 그들은 벽 미장이 끝나자마자 페인트를 칠했다. 그 후 콘크리트에 광을 냈다. 분진이 페인트를 뒤덮었다. 그들은 다시 페인트를 칠했다. 그 후 콘크리트 광 작업 2차가 시작됐다. 다시 분진이 날리고 페인트가 더러워졌다. 그들은 페인트를 보수했다. 그 후 창틀과 문짝을 만드는 목공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방에 나무 가루가 내려앉고 나무 표면 마감재가 묻었다. 그쯤 되자 페인트칠에 지쳐버린 그들은 심한 얼룩에만 페인트를 덧바르기로 했다. 페인트를 덧바를 때마다 마르길 기다리느라 며칠씩 작업이 멈추기도 했다. 결국 벽 하나에서도 어떤 부분은 페인트가 덜 발려 콘크리트 색이 올라오고 어떤 부분은 덧발려 너덜거릴 지경이 되었다. 콘크리트 폴리싱 벽도 사방에 왁스 자국과 목공 분진이 고착되어서 흉물스럽다. 벽을 볼 때마다 숙연해진다. ‘그때의 나는 왜 그냥 싸구려 흰색 스위치를 사지 않았나, 스위치가 마음에 안 들면 스위치를 바꿀 것이지 왜 벽을 바꾸려 했나.’ 이게 바로 ‘면벽 수행’이라는 걸까?

흰색으로 마감한 현관. 내벽도 이처럼 흰색 페인트로 마감했으면 공사가 두 달은 빨리 끝났을 것이다.

흰색으로 마감한 현관. 내벽도 이처럼 흰색 페인트로 마감했으면 공사가 두 달은 빨리 끝났을 것이다.

한편으로 인부들은 내가 공사 초반 신나서 사들인 인테리어 부품들을 하루빨리 설치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 스위치와 플러그뿐 아니라 천장 조명, 싱크, 수전, 샤워기, 변기, 세면대 같은 것들 말이다. 같은 팀이 작업한 다른 주택에서는 건축주가 말리지 않아 그것들이 초반에 부착되었고, 입주할 때쯤엔 페인트, 분진, 녹, 기름때, 긁힘, 목공 마감액 등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요즘 페인트칠 정도는 직접 하는 사람이 많으니 벽을 칠할 때 모서리와 부착물들에 보호 테이프를 둘러 페인트가 번지지 않게 하는 요령도 흔히들 안다. 하지만 가격으로 승부하는 인도네시아 최저가 유럽 시공사에 그런 것까지 바라서야! 내 집의 페인트 작업은 시공사와 인부들의 자체 소통으로 나도 모르는 새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딱 한 번 페인트를 칠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인부가 슬그머니 보호 테이프를 꺼내 붙인 적이 있다. 페인트 천장과 콘크리트 벽이 만나는 부위로, 딱 그 1m를 제외하면 이 집 전체 페인트에서 테두리가 멀쩡한 곳이 없다. 그런데 그 인테리어 용품들을 다 달아둔 상태에서 공사를 하겠다고? 시공사를 결정하던 순간부터 그것만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나는 여러 번 말했다. 하지만 인부들은 공사 막판에 이삼일 몰아서 해버리면 되는 일을 굳이 먼저 하겠다고 1년 내내 졸라댔다. 벽에 구멍 뚫기나 옹벽 쌓기나 천장 시멘트 메우기처럼 당장 할 수 있는 일, 제발 하라고 시키는 일은 몇 달씩 미루면서 말이다. 공사가 길어지고 보관 기간도 덩달아 길어지면서 부착물끼리의 간격, 벽체 매립 깊이 등을 점검하기 위해 꺼낸 스위치나 플러그들이 본체 따로 뚜껑 따로 쓰레기 더미 속에 뒹굴기도 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때 조명과 플러그들을 현장에 가져다두었다. 그것을 건네며 나는 시공사에 재차 당부했다.

“알다시피 공사감독은 이것들을 설치하는 데 집착했다. 페인트와 목공이 끝나고, 우리가 뭘 어디다 붙일지 설명해줄 때까지 기다리게 할 수 있나? 정말 막을 수 있나? 정말로?”

철물점, 건재상, 공방들만 돌아다니다 보면 일반 관광객들과는 아주 다른 발리의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철물점, 건재상, 공방들만 돌아다니다 보면 일반 관광객들과는 아주 다른 발리의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사흘 후 다시 현장을 찾았을 때, 당연히, 보란 듯이 사방에 스위치와 플러그가 달려 있었다. 모두 이리저리 비뚤어지거나 뒤집히거나 너덜거리는 채로. 스위치 자리에 플러그가 붙어 있기도 했다. 그 스위치들은 조명뿐 아니라 관련자들의 마음속 무언가도 연쇄로 건드렸다. 4개월 걸린다던 공사가 15개월이 걸렸으니 모두 제정신일 리가 없다. 조명 설계를 직접한 나의 동거인은 시공사 사장에게 스위치들이 왜 벌써 벽에 붙어 있느냐 물었다. 그것이 전날의 숙취 속에 비몽사몽 문자를 받은 시공사 사장의 버튼을 눌렀다. 그는 자기가 1년 동안 무급으로 봉사했다며 이제 인부 관리를 직접 하라고 화를 냈다. 그 말은 나와 동거인의 분노 버튼을 눌렀다. 동거인은 공사감독에게 진행 중인 조명 설치를 멈추라고 지시했고, 공사감독은 사장이 시켜서 어쩔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사장은 지금 다른 섬에 있어서 현장은 보지도 않고 문자메시지로만 지시를 하고 있으니까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다. 결국 조명을 오늘 다느냐 내일 다느냐, 너는 왜 내 말을 듣냐 안 듣냐, 고성이 오가는 중에 눈치 없는 어린 인부가 나타나 천장등을 만지작거리면서 “이걸 부엌에 달면 되나요?”라고 공사감독에게 물었다. 모두 말문이 막혔다. 그 순간 내 머릿속 이성의 퓨즈가 끊겼다. 나는 인부가 든 조명을 낚아채 상자에 담았다. “그냥 조명이 여기 없는 걸로 합시다. 내일이라도 저 얼룩덜룩한 벽을 다시 바르고 나면 가져올게요. 사장에게 없어서 못 단다고 보고하세요. 됐죠?” 그 행동은 다시 공사감독의 버튼을 눌렀다.

자기가 견적을 내고, 실측에 실패해서 일을 키우고, 무리하게 벌인 다른 일들을 수습하느라 현장을 방치하고, 터무니없이 싼 인력을 고용하는 바람에 지연과 수정의 늪에 빠져 놓고 1년 동안 무급 봉사를 했다고 불평한 사장은 이튿날 우리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중년 무슬림 남성인 공사감독은 감히 자신을 질책한 아시아 여성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후 공사감독은 내가 현장에 나타날 때마다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말마다 콧방귀를 뀐다. 일은 끝내야 하기에 나는 나대로 욕은 한국어로만 하면서 지시를 내리고, 그는 경멸과 분노 속에 꾸역꾸역 작업을 한다. 따져보면 그도 사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 공연히 욕을 먹었으니 짜증을 낼 만하다. 그도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서 제풀에 지쳐 표정이 풀어져버릴 때가 있는데, 그럼 ‘에이 나도 심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공사나 이사처럼 남자 인력을 부릴 일이 있으면 화도 내고 기싸움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왕이면 웃으며 일하고 싶다. 다만 수양이 부족해서 대놓고 불퉁거리는 걸 보고 있으면 반사적으로 화가 날 뿐이다. 며칠 후엔 스위치 수량이 안 맞아서 다시 ‘구매 착오다, 현장 분실이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 기다렸다가 같이 부착했으면 이럴 일이 없지 않으냐’ 옥신각신이 벌어지고, 인부들이 짐을 싸서 현장을 떠나버리기도 했다. 그들이 떠난 후 쓰레기 더미에서 스위치의 흔적을 찾으며 이게 다 무슨 짓이냐 한탄했다.

‘우당탕탕 공사대소동’이라는 제목의 핀볼 게임은 이제 막 끝을 향하고 있다. 은색 스위치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공사 기간을 잡아먹고, 디자인을 망치고, 관계자들을 분쟁에 빠뜨린 다음 구멍에 안착하려는 중이다. 이 일이 끝나면 나는 진지하게 수양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스위치, 나의 벽, 나의 업보들이 그런 나를 조용히 지켜보리라.



[다른 삶]작은 스위치 하나 때문에…‘집 공사 악몽’이 시작될 줄이야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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