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터고에선 무슨 일이-상

수년째 학생들에 자정까지 ‘머리 염색’ 요구, 폭언·하대…‘인권침해’ 다반사

유경선 기자
[마이스터고에선 무슨 일이-상] 수년째 학생들에 자정까지 ‘머리 염색’ 요구, 폭언·하대…‘인권침해’ 다반사

마이스터고등학교는 산업 일선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기술 명장’을 육성한다는 목표로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문을 열었다. ‘마이스터’는 독일어로 ‘명장’을 뜻한다. 독일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기술자의 진로를 밟는다. 이들은 대졸자 이상으로 높은 임금과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 기술자가 대우받는 독일을 벤치마킹하자는 취지로 개교한 것이 마이스터고다.

‘특성화고의 외고’라고 불리는 마이스터고지만 일부 학교 현장은 장밋빛 비전과는 거리가 멀다. 2011년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라는 제목의 시집이 발간됐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서울과기고)의 전신인 서울북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시로 엮은 책이다. 시집에는 경쟁 낙오자들로 간주된 공고 학생들이 느끼는 절망과 분노가 담겼다. 2013년 지금의 교명으로 바뀐 뒤 2016년 해외 건설·플랜트 분야 마이스터고로 새출발했지만 학생들은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일부 교사들의 언행과 시스템에 상처받고 있다.

서울과기고 학생들은 일부 전공과목 교사들의 언행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호소했다. 서울과기고에는 해외플랜트 산업설비과, 해외플랜트 공정운용과, 해외건설 전기통신과, 해외시설물 건설과 4개 전공이 있다. 전공과목 교사들은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3학년으로 올라가면 취업과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겪는 부조리한 일은 주로 ‘취업’을 빌미로 한 것이라고 한다. 복수의 재학생·졸업생과 교사들은 한 전공교사 A씨가 학생들에게 수년째 자신의 머리를 염색해줄 것을 요구해왔다고 경향신문에 증언했다. A교사가 3~4주에 한번씩 여학생 기숙사에 묵으면서 특정 학생을 지목해 주로 심야 시간에 머리 염색을 시켰다는 것이다. 염색 후 머리를 감기고 드라이를 해줄 것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기숙사 점호 시간(오후 11시)을 넘겨 자정이 되기 일쑤였다고 했다. A교사가 다른 학생들에게 ‘나는 돈 들여서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에 대해 A교사는 10일 통화에서 “오해가 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일방적으로 시킨 게 아니라 앞머리를 염색하다가 뒷머리가 안돼서 도와달라고 하거나, 기숙사에서는 헤어드라이어를 쓸 수 없어서 제 방에 와서 같이 머리도 말려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용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와서 (염색을) 해주기도 하고, 억지로 시킨 것은 아니다”라며 “기숙사 제 방에 학생들이 와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과자도 먹기도 하고 잘 지냈다”고 해명했다.

학생들은 전기통신과의 한 전공교사가 학생들의 무릎을 꿇리거나 폭언·욕설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전공교사들을 가리켜 “우리들을 노예 부리듯 한다”고 표현한다고 다른 교사는 말한다. 여러 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너희는 버리는 카드’라는 말을 한 교사가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학생은 “전공 과목 수업을 할 때마다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잦았다”며 “전공교과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면 취업을 절대 못한다’ 같은 말을 많이 하셔서 위축이 된다”고 했다. 기숙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한 학생에게 돌아온 대답은 “돈 한 푼 안 냈는데 그럴 거면 나가라”였다고 한다.

학교가 ‘방과 후 학교’ 수업을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하는 것도 학생들의 불만이다. 한 학생은 “방과 후 수업을 거의 강제로 듣게 한다”며 “(전공교과 선생님들이) 이 수업을 안 들으면 ‘취업을 못한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고 했다. 방과 후 수업을 하면 오후 8시30분에 일과가 끝난다. 방과 후 수업료는 따로 낸다. 1학년의 경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 방과 후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은 “안 듣는 학생이 거의 없다”고 했다. 방과 후 수업에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불만도 있다. “특정 선생님이 ‘협박성’으로 듣게 해서 (수강 인원이 특정 수업에) 쏠리기도 한다”(한 학생)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회사에서 학생들이 일을 잘 하려면 현장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정규수업에는 영어·국어·역사 등필수 과목을 가르쳐야 해서 시간을 낼 수가 없다.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습 수업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학생은 “실습 수업이 통째로 6시간이 잡히는데, 선생님들이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않고 몇 시간씩 수업을 비운다”며 “나중에 취업을 하면 써야 되는 기술일 수도 있는데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중간에 선생님을 찾고 싶은 경우도 많은데 선생님은 자리에 없다”고 했다. 다른 학생은 “실습 시간에 이론을 가르치는 일도 잦다”고 했다.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느끼지만 취업에 불이익이 올까봐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경향신문과 만난 학생들 중 일부는 “취업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증언을 꺼렸다. 한 학생은 “저희는 일단 학교에 입학을 했으니 취업은 무조건 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선생님들에게 밉보이면 취업에 불이익을 겪을까 봐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마이스터고는 학교를 옮기기도 쉽지 않다. 다른 특성화고로 전학을 할 수는 없고, 2학년 1학기에 일반계 고등학교로 옮길 수 있다.

기술 인재를 육성한다는 마이스터고의 설립 취지는 이렇게 빛이 바래고 있다. 예비 ‘기술 명장’으로서 가져야 할 자존감과 긍지는 학생들을 여전히 ‘실업계 학생’ 정도로 여기는 시선 아래 깎여나가고 있다. “그럴 거면 취업을 안 시키겠다” “제조업이나 가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자존감 낮은 노동자가 되기 쉽다. 한 학생은 “관심이 있던 과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끌려오다시피 입학했는데,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학교 분위기 때문에 정신상태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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