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심사위, 또 재벌 면죄부용 ‘거수기’되나

허진무 기자

윤 정부 첫 특사 대상자 심사…한동훈 “사면은 대통령 권한”

경제 명분으로 사면 남발 우려…지지율 부담에 미룰 수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9일 사면심사위원회를 열어 8·15 광복절 기념 특별사면 대상자를 심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특별사면은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재벌 총수 사면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법치주의를 내세운 정권이 법치주의를 흔드는 사면을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면심사위원장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취재진이 ‘사면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자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특별사면할 때 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이 한 발언과 같다. 대통령이 특정 인물을 골라 사면하는 특별사면은 사면법상 아무런 제약이 없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용이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사면심사위는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용을 견제하려고 국회가 2007년 사면법을 개정해 도입한 제도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사면심사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다 심사 결과에 구속력도 없다. 사면심사위가 반대하더라도 대통령 마음대로 특별사면할 수 있다.

이날 사면심사위 회의에서는 여러 기업인의 이름이 심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심사위원들은 회의 전후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을 피했다. 다만 한 위원은 “생각보다 (사면 심사 대상의) 수가 적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역대 법무부 장관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이날 사면심사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사면 심사의 형식적 독립성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이 위원 8명을 모두 임명·위촉하기 때문에 정권의 영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심사위원을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이 추천하도록 해 독립성을 강화하거나 회의록을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인 중에서 사면 1순위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뇌물공여 혐의로 지난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됐지만 ‘5년간 취업제한’ 규정 적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해야 한다며 재계가 사면을 요구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도 사면 대상으로 오르내린다.

정치인 중에서는 뇌물·횡령 혐의로 징역 17년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와 ‘드루킹 댓글 조작’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돼 복역 중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최근 대통령실 주변에선 부정적 기류가 감지된다. 윤 대통령이 부정적 여론이 큰 정치인 사면에 부담을 느껴 다음 기회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12일쯤 최종 사면 대상자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사면심사위가 어떤 심사 결과를 내놓든 결국 윤 대통령의 결정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9일 출근길 문답에서 이씨 사면에 대해 “과거 전례에 비춰 이십몇년을 수감 생활하게 하는 건 안 맞지 않느냐”고 했다. 지난달 22일에는 “국민 정서까지 신중하게 감안할 생각”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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