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아, 밥 먹자.”
중장비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경기 광명시 한 재개발 현장. 오지영 ‘광명길고양이친구들’ 대표가 캔을 열어 접시에 먹이를 올려두자 황토색과 흰색 얼룩무늬를 가진 길고양이 한 마리가 철제 가벽 밑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투박한 생김새때문에 ‘온달이’라는 이름을 얻은 고양이는 먹이를 먹은 뒤 굉음이 들리는 공사장 쪽으로 다시 사라졌다.
“현재 광명시는 구시가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이런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현장이 많아요. 신도시급으로 개발되다보니 원래 재개발 지역에서 살던 고양이들의 생존 문제가 심각합니다.” 오 대표를 비롯한 광명길고양이친구들의 활동가들은 2019년부터 재개발·재건축 지역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를 재개발 지역에서 구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습성이 있어, 이주 방사를 시켜도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더라구요.” 건물이 헐리기 전 재개발 지역 한 가운데 살던 온달이도 지금의 먹이자리로 700m 가량 이동하는 데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인근의 또 다른 재개발 현장 옆 공터에 이르자 하나둘씩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컨테이너 가건물 아래에서 몇몇 녀석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몇 몇은 공사장 펜스 밑의 생태통로를 통해 나타났다. 생태통로는 재개발 시공사에서 고양이들의 이주를 위해 만들었다. 먹이를 준비하는 오 대표 주위로 어느새 1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고양이들 역시 원래는 대부분 재개발 공사장 안쪽에 서식했다. 아직 몇몇 고양이들이 공사장을 오가지만,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할 때부터 먹이자리를 옮긴 끝에 이 공터에만 10여 마리의 고양이가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떠난 곳에서 고양이들의 생존은 쉽지 않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렵고, 깨끗한 물 역시 찾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재개발 지역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만성적인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구조를 해도 심각한 상태로 발견된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고양이들 숫자도 적지 않다고 했다. 광명시에서만 현재 10개 구역, 100만㎡ 이상의 지역에서 재개발·재건축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주민들 이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 대표는 광명시의 이런 공사 현장에만 약 5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생활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9월 이전만 하더라도 광명시 재개발 현장에서 구조한 길고양이들의 돌봄시설은 전무했다. 활동가들은 월세방과 재개발조합에서 내준 공간을 옮겨다니면서 고양이들을 보살폈지만, 임시로 마련한 공간에서 사비로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오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재개발 지역에 사는 고양이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왜 별도 보호시설이 필요한 지를 광명시에 꾸준히 알렸다. 1년 6개월간의 긴 설득 끝에 지난달 13일 ‘길동무’가 문을 열었다. ‘길고양이 동무’라는 뜻의 길동무는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구조된 고양이들 중 중성화 수술 후 회복이 필요하거나, 질병을 앓는 고양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다리 하나를 잃은 ‘베로’와 구내염으로 이빨을 모두 제거한 ‘영감’ 등 구조된 고양이 25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반달이가 노묘인데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주민들이 쟤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며 걱정했거든요. 저도 처음엔 밥만 주다가 여생이라도 편하게 보냈으면 싶어서 입양을 결정하게 됐어요.” 케이지 안의 반달이를 돌보던 한 활동가가 말했다. 반달이의 경우처럼 길동무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은 입양을 가거나, 건강을 회복하고 안전한 지역에 방사된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영역 동물인 고양이의 습성상 재개발 지역으로 돌아가 다칠 염려가 있는 경우, 방사는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 ‘개발되는데 고양이까지 신경써야 되냐’는 인식에서 벗어나 고양이들을 살고 있는 터전을 잃어버린 생명들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오 대표는 구조·중성화·돌봄까지 할 수 있는 개발지역 동물돌봄센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길동무의 고양이들은 가을햇살을 받으며 털을 정리하거나, 방석 위에서 곤한 잠을 청했다. 오 대표 옆에서 잠든 영감의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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