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텔레그램 ‘엘’ 성착취 주범 호주에서 검거···‘솜방망이 그칠라’ 국내 송환 반대 목소리도

이유진 기자
일명 ‘엘(L) 성착취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유력 용의자 A씨가 호주 현지에서 체포되는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일명 ‘엘(L) 성착취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유력 용의자 A씨가 호주 현지에서 체포되는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디지털 성범죄 ‘엘(L) 성착취 사건’의 주범으로 유력한 용의자가 호주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제2의 n번방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의 주범을 국내로 송환해 처벌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호주 현지 처벌을 주장하는 여론도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를 받는 A씨를 호주 경찰과 공조해 지난 23일 검거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엘’이란 별칭으로 불려온 A씨는 20대 중반 한국인 남성으로 확인됐다. 2012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으나 한국 국적을 유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2020년 12월말부터 지난 8월15일까지 미성년 피해자 9명을 협박해 성착취물 1200여개를 만들고 텔레그램을 통해 이를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피해자를 유인하면서 2019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불꽃’을 사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텔레그램 계정을 이용해 수시로 대화명을 바꾸고 성착취물 유포 대화방의 폐쇄·개설을 반복했던 그는 지난해 5월 공범 등에게 “나는 절대 잡힐 수가 없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8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텔레그램을 탈퇴했다.

경찰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분석해 A씨의 신원을 특정, 지난달 19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경찰은 A씨의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범죄에 관련된 해외 기업과 기관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140여 차례 집행해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텔레그램 측은 앞서 n번방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수사에 한 차례도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적색수배 요청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지난 23일 현지 경찰과의 공조 수사(작전명 ‘인버록’)로 호주 시드니 교외에 있는 A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한 뒤 A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A씨 휴대전화 2대 등을 압수하고, 피해자들을 착취했던 텔레그램 계정도 확보했다. A씨는 체포 당시 “인터넷상에서 해당 성착취물을 내려받은 것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범 A씨가 붙잡히면서 그를 도운 공범과 방조범에 대한 경찰 수사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 결과, A씨와 공범들은 직접 만나지 않고 텔레그램을 통해서만 소통했다.

경찰은 A씨가 피해자를 유인하고 협박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15명을 검거하고 1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아울러 A씨가 제작한 영상을 판매·유포·소지·시청하거나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사람 등 10명을 추가 검거해 8명을 송치하고 나머지 2명은 수사 중이다.

이로써 검찰에 송치된 사건 관련 피의자는 총 21명이며, 구속된 인원은 6명이다. 구속된 피의자 중 일부는 피해자를 직접 유인하거나 영상 제작에 가담했으며 별도의 범죄 사실도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사방 사건’ 주범 조주빈과 일당에 적용됐던 범죄단체조직죄가 이번 사건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혐의를 적용할지 여부는 한국 경찰이 (A씨의) 신병을 인도받고 확인해야 알 수 있다”며 “범죄 수행의 공동 목적이 있었는지, 통솔 체제가 갖춰졌는지가 주요 부분인데 현재까지는 판단하기 이르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n번방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피의자들이 금전적 이익을 얻은 것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금전 목적의 범행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추정하고 있다”며 “범행 동기는 수사를 통해 확인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범죄인 인도 절차를 통해 A씨를 국내로 송환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호주 경찰이 범행을 저지른 곳이 호주라는 점을 들어 A씨를 처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여서, 당장 국내 송환은 어려워 보인다.

A씨 검거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선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의 사례를 들며 국내 송환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내에 비해 일반적으로 미성년 대상 성범죄의 형량이 높은 호주 현지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아야만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2020년 한국 법원의 판단으로 미국 송환을 피한 손씨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유포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후 이미 출소한 상태다. 범죄 수익 은닉 혐의에 대해선 지난 11월11일 2심에서 징역 2년과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 혐의는 손씨의 부친이 아동 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높은 미국으로 아들이 송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에 ‘셀프 고발’한 사건에 적용된 혐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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