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운수노련, ILO에 ‘한국정부 압박’ 요청···업무개시 명령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

유선희 기자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27일 서울의 한 시멘트공장 앞에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의 시멘트 수송 차들이 서 있다. 강윤중 기자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27일 서울의 한 시멘트공장 앞에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의 시멘트 수송 차들이 서 있다. 강윤중 기자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해 ‘업무개시 명령’ 발동을 예고하자 국제운수노련(ITF)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개입’을 요청했다. 국내 노동법률단체들도 성명을 내 정부를 비판했다.

ITF는 2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3개 조직 명의로 ILO에 ‘긴급개입’ 요청 서한을 보냈다. ITF는 세계 150여개국 700여개 노조, 2000만명 노동자가 가입된 단체다. 지난 24일 화물연대 파업 개시와 함께 정부가 업무개시 명령 발동을 검토하자, ITF 역시 긴급개입 요청을 준비했다.

ILO 개입요청서 작성을 담당한 루완 수바싱게 ITF 법률국장(국제노동법 전문변호사)은 지난 27일 경향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 “사법적 협박은 결사의자유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수바싱게 국장은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는 어떠한 차별 없이 ‘자신이 선택한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권리’를 완전히 누릴 수 있다”며 “반복되는 정부의 반노조, 반파업 견해 표명은 정부가 ILO 협약 87호 제11조(노동자가 단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합리적인 조치를 모두 취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루완 수바싱게 국제운수노련 법률국장. 국제운수노련 제공

루완 수바싱게 국제운수노련 법률국장. 국제운수노련 제공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기사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정치투쟁’으로 규정짓고 파업 전부터 업무개시 명령 발동을 예고했다.

한국 헌법과 ILO 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자신들의 권익 증진·방어를 위해 결사의자유를 향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21조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헌법 33조1항에도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ILO 협약 87호(결사의자유와 단결권 보호)를 비준했고, 지난 4월부터 발효됐다.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윤석열 대통령. 박민규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 박민규 선임기자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화물노동자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수바싱게 국장은 “징역이나 벌금 처분의 위협 하에서 업무복귀를 명령하는 것은 ILO의 핵심협약인 제29호 협약과 제105 협약에서 규정하는 ‘강제노역을 받지 않을 권리’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ILO 협약 29호는 87호와 마찬가지로 지난 4월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비자발적으로 제공한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금지’한다. 105호 협약은 정치적 견해나 파업 참여 등을 이유로 한 징역형 노역을 ‘강제노동’으로 보고 금지한다. 105호 협약은 29호를 보완하는 성격을 띠고 있으며, 한국에선 아직 비준이 되지 않았다.

수바싱게 국장은 “‘유엔-ILO 강제노동에 관한 임시위원회’는 ‘정치적 강요(political coercion)의 수단’으로 강제노동이 가장 흔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며 “노동불복종과 파업에 대한 처벌 관련 강제노동의 행태를 근절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한국이 제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회원국으로서 이 협약에서 규정하는 기본권 관련 원칙을 존중, 촉진,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ITF는 ILO에 긴급개입을 요청하는 이유로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개입요청을 하면 ILO 사무총장이 해당사안에 대한 ILO 입장을 고용노동부를 통해 한국 정부에 전달한다. ILO 개입은 노동권 침해를 중단하도록 외교적 압박을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ITF는 유엔 결사와집회의자유 특별보고관에게도 “인권에 관한 국제법 기준 미준수에 대한 우려를 한국 정부에 직접 표명해달라”는 요구 서한을 보냈다.

국내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 5개 노동법률단체도 28일 성명을 내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 검토를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6월 합의에 대한 불성실한 이행은 모른 체하고, 국민에게 업무를 ‘강제’하겠다는 입장부터 밝힌 정부의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태도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며 “위헌성 지적이 제기된 업무개시 명령을 도입한 이후, 정부는 한 번도 실제로 발동하지 않으면서도 화물연대가 파업을 할 때마다 위협을 가하는 용도로 활용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법체계의 명확한 정신은 강제노역과 강제근로를 금지하는 것”이라며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를 무기로 삼은 업무개시 명령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ILO 기본협약에도 반한다는 점에서 위헌적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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