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조 정책’ 가속 돌입한 노동부···올해 노정관계 ‘폭풍 속으로’

조해람 기자    유선희 기자

2023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를 추진할 시행령을 3월까지 마련하겠다고 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조 사무실과 지원사업 전수조사 등 노조 탄압성 정책 전반을 상반기 내에 준비하는 등 ‘반 노조 정책’에 더 속도를 낼 계획이다. ‘주 69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노동시간 개편에도 가속 페달을 밟는다. 노동계는 “가짜 개혁이자 노동개악”이라고 비판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의 ‘2023년 고용노동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장관은 “노동개혁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개혁 과제들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노동이 보다 유연해야 하며, 노사 간 그리고 노노 간 공정이 중요하다”며 “기업의 경영활동의 자유와 노사 간 대등하고 균형있는 협상력 확보, 규제를 완화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장관은 전했다.

파업 왜 했는지 귀 닫고···“법치, 법치” 속도전

노동부는 이른바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노조 탄압성 정책에 속도를 냈다. 우선 3월까지 노조 회계 투명화 시행령을 입법하고, 3분기까지 기업 전자공시시스템(DART)과 같은 공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시스템 구축을 위한 법 개정안도 2월까지 발의한다.

법 개정 전까지 공시는 자율이다.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지난 8일 노동부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연 사전브리핑에서 “공공부문부터 자율적 공시 시스템을 우선 시행할 예정”이라며 “법적으로 강행 규정을 둘지 등 범위는 여러 해외사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오후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열린 2023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6일 오후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열린 2023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사무실 지원실태와 정부 지원사업 전수조사도 3월까지 마치겠다고 했다. 우선 지난해 정부 지원사업을 수행한 38개 단체와 51개 사업이 대상이다. 노동부는 “문제 있는 사용에 대해서는 보조금 사용결과 불인정 및 환수, 차년도 제재 등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오는 20일부터는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이름은 ‘노사’부조리이지만 대통령 보고자료에는 “노동조합 가입 등 강요, 타 노조원에 대한 차별적 조치 요구 등 노동조합의 불법행위 금지”만을 예시로 들었다. 이 같은 ‘불법·부당행위’ 규율 조항을 담은 법 개정안도 올해 2월까지 발의하겠다고 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을 구성해 관련 정책과제도 발굴한다. 노동부는 올해 5월까지 전문가안을 마련해 8월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 부처 합동 지도·점검, ‘정년퇴직·장기근속자 자녀 우선·특별채용’ 등 단체협약 시정조치 등도 병행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7월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사진 크게보기

지난해 7월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책 외에도 업무계획 자료 전반에 ‘반 노조’ 기조가 선명했다. 노동부는 자료에서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과 화물기사들의 파업을 “불법행위”로 규정하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 근로손실일수를 대폭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노동부의 정책 방점은 ‘중대재해처벌법 개편’과 ‘노동시간·임금구조 개편’에 찍혀 있었다. 이번 업무보고에는 ‘노사 법치주의’를 첫머리에 올렸다. 권 차관은 “이중구조 해소 방안 중 순서만 약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노동시간·임금·중대재해 개편도 ‘드라이브’

전문가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권고한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안’에도 속도를 낸다. 노동부는 연장노동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최대 연 단위’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2월까지 입법예고한다. 노동계는 이 경우 주 69시간 이상의 집중노동이 가능해진다고 우려한다. 다만 이는 국회의 법 개정 사항이라,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입법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도입은 1월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해 추진한다. 아직 사회적 합의가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는데 노동부는 임금체계 개편안을 따르는 기업에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1분기 중 논의한다고 했다. 직무별 임금 세부정보를 볼 수 있는 ‘임금정보시스템’도 연내 개설할 예정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노동시간 및 임금체계 개편 권고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사진 크게보기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노동시간 및 임금체계 개편 권고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처벌요건 명확화, 제재방식 개선”을 골자로 한 중대재해법개편안도 상반기 내에 마련하겠다고 했다. 우선 5월까지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노사의 의견수렴을 거쳐 6월 중 정부안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기업 자율규제에 맡기는 ‘중대재해로드맵’ 이행도 1분기부터 본격 착수한다.

맞벌이 부부 육아휴직 1인당 1년→ 1년6개월

노동시장 약자를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내에 연구회를 두고 6월까지 방안을 마련한다. 노동부가 “사업장 부담을 고려하겠다”고 한 만큼 점진적으로 적용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정책 패키지를 1분기 내에 마련하겠다고 했다.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1~3월 첫 기획형 수시감독에 돌입한다. 노동부는 2월 내로 포괄임금제 등 편법적 임금지급 관행 근절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맞벌이 부부에게는 육아휴직을 1인당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려 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대상 자녀의 연령 상한은 ‘만 8세’에서 ‘만 12세’까지 확대한다.

일자리 정책으로는 반도체·조선업에 업종별 취업지원허브를 설치하고, 첨단산업분야에도 선도기업과 혁신훈련기관을 설치한다. 외국인력은 역대 최대 규모인 11만명을 도입하면서 50인 미만 제조업 외국인 허용한도와 허용업종 한도를 푸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노동계는 노동부의 업무계획이 “노동개악”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는 현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평등을 노조로 조직된 15%의 노동자 탓으로 돌린다”며 “이중구조를 만든 주범은 파견법 등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한 정부와, 불법과 편법으로 이익의 대부분을 독식한 기업”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재벌대기업의 오랜 숙원을 민원 처리하듯 앞장서 개악에 나서는 것은 앞으로 맞닥뜨릴 산업전환에 대한 준비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정부의 ‘반 노조’ 정책기조를 두고는 “미조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막혀 못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조직, 미조직 노동자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편을 가를 게 아니라 헌법과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법치주의를 내세워 노조를 부패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노조과는 사회적 대화조차 불필요하다는 선전포고”라며 “노조를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때려 잡아야 할 대상 쯤으로 여기는 정부와 그 어떤 대화도 협조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노사 법치주의의 실상은 노조때리기식 조사와 감독행위를 하겠다는 것으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위반”이라며 “연장노동이 일상화된 우리 현실에서 유연노동시간제 확대는 장시간노동 저임금체계를 더욱 고착화 시킬 뿐”이라고 했다.

주요 현안을 노사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는 경사노위 자문단·연구회를 중심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노동부는 “경사노위 본위원회가 아직 구성 중이고 한국노총 선거일정 등으로 위원회 구성·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며 “자문단·연구회가 먼저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노사 당사자 역시 언제든지 협의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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