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두바이는…이곳 사람에겐 천국, 여행객에겐 별천지

조혜임

아라비안 라이프

특별한 여행지로의 초대

겨울이 찾아오면 유령도시 같던 이곳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UAE의 사계절은 이른 봄부터 더워지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한증막 안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켜놓은 듯한 극강의 더위가 지속된다. 덥다 덥다 말만 들었지 실제로 느껴본 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숨이 가쁘며 어지러워 채 5분을 서 있을 수가 없었고 온종일 기운도 입맛도 돌지 않았다. 뜨겁고 무거운 모래바람을 피부로 느껴보고 난 뒤에야 ‘내가 사막 나라에 살고 있구나’ 하고 실감 나기 시작했다.

겨울의 UAE는 산책하기에도, 여행하기에도 꽤나 괜찮은 곳이다. 공원에는 검은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아랍식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리면 끝없는 모래언덕 위를 걷는 낙타 행렬을 만날 수도 있다.

겨울의 UAE는 산책하기에도, 여행하기에도 꽤나 괜찮은 곳이다. 공원에는 검은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아랍식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리면 끝없는 모래언덕 위를 걷는 낙타 행렬을 만날 수도 있다.

겨드랑이에 땀이 마를 날이 없는 그 긴 기간을 견디고 겨울이 오면 드디어 청량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한낮에는 움직일 때마다 약간의 땀이 나는 정도이지만 해가 지면 사막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에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경량패딩을 꺼내 입는다. 비가 거의 오지 않기에 겨울의 UAE는 산책하기에도, 여행하기에도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 기간을 위해 8개월을 참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사람들은 시원한 공기의 한 자락이라도 더 부여잡기 위해 평일 저녁과 주말에 최선을 다해 밖으로 나간다. 공원에는 검은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황금빛 주전자에 노란 아랍식 커피를 담아와 이를 작은 잔에 나누어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길을 걷다가 코끝으로 전해오는 달콤한 향에 주위를 둘러보면 기다란 파이프를 물고 야외 카페에 앉아 시샤(물담배)와 사색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야 좀 사람 사는 동네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청량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령도시 같던 이곳에 생기 돌아
각종 이벤트 풍성, 한바탕 축제

치안과 의료 환경 뛰어난 두바이
두 아이·부모님과 여행하는데
세상에서 이만한 장소 없어…
사막에선 환상적인 별들의 향연

카타르 월드컵이 겨울에 열렸듯 지금 이 시기의 중동은 한바탕 축제의 기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비운으로 2021년에 개최되었던 EXPO 2020 두바이는 더위를 피해 여름 내 문을 닫았다가 지난해 10월에 재개장을 하였다. 아부다비에서는 F1 그랑프리 결승전을 비롯하여 런던에만 있다는 베이커리의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기도 하고 어린이를 위한 스포츠 캠프를 진행하는 등 연말연시를 따스하고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전 세계 사람들을 유혹한다. 나 또한 2년간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을 두바이로 초대해 뜻깊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에게 두바이는 유럽이나 아프리카 길목의 환승지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두 아이와 노령의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으로는 겨울의 두바이만 한 장소가 없다.

두바이 여행이 만족도가 높은 첫 번째 이유를 꼽자면 여행 내내 불필요한 긴장을 만들지 않게 도와주는 훌륭한 치안이다. 타 중동 국가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치안이 좋은 나라 순위에서 1~2위를 다툰다. 이는 이슬람 율법에 의한 강력한 처벌도 한 요인이지만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를 AI 기반으로 감시하며 범죄 예방에 힘을 쓰는 경찰의 노력도 크다. 에너지 넘치는 두 아이를 키우며 배낭 지퍼가 홀딱 열린 채로 아이들 뒤를 쫓아가다 가방이 열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가슴 철렁하며 안을 살펴봤다. 비극적인 예상과는 다르게 사라진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안도하며 이곳의 치안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부다비는 여성이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녀도 안전한 도시 1위로 지목되고는 하는데 실제로 나의 지인들은 목요일 밤 바(bar)나 레스토랑에서 여성들에게만 할인 혜택을 주는 레이디스나이트(Lady’s night)에 종종 모임을 한다. 술 한잔 가격이 웬만한 밥 한 끼만큼 비싸서 과음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한 술에 취한 채 문제를 일으킬 경우 강력한 처벌(제삼자에게 피해를 줄 경우 최대 6개월의 징역형 또는 약 3500만원의 벌금형)을 피할 수 없어 주취자를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도 이곳의 밤거리가 안전하게 느껴지는 요인 중 하나이다.

아이 엄마들이 여행을 갈 때 여권만큼이나 중요하게 챙기는 물건이 바로 해열제 2종과 체온계이다. 여행의 성패가 아이의 컨디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 아이가 아파 병원을 찾아본 경험이 있는 엄마들에게는 현지의 의료시설 또한 여행지 선택의 중요한 요소이다. UAE는 선진국의 병원을 유치하여 언제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심지어 두바이에서는 다수의 한국인 의사 선생님들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 든든하다. 자국민 의료인이 부족한 중동에서는 실력과 친절을 겸비한 한국인 의료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어려운 의료 용어를 번역기에 돌려가며 의사소통해야 하는 어려움 없이 ‘착하면 착, 척하면 척’ 알아주는 한국 의료진이 있기에 실로 마음 편한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치안과 보건이라는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 겨울의 두바이 여행을 시작하였다. 도시는 지난 몇 년간 팬데믹으로 꽁꽁 묶어놨던 제한을 풀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인상 깊은 점은 곳곳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알록달록 꾸며놓은 모습이다. UAE를 처음 방문한 부모님은 ‘여기가 이슬람 국가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을 부정한다는 사실로 인해 예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사왔다. 이는 이슬람 공포증에 의해 확대·재생산되어 ‘이슬람은 기독교의 대척점에 있는 종교’라는 인식이 공고해졌다.

하지만 바깥 세계에서 바라본 시선과는 다르게 UAE는 타 종교에 대한 포용과 관용을 외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현재 아부다비에 쌓아 올리고 있는 ‘아브라함의 집’이다. 이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예배 시설을 한 단지에 만드는 종교시설로 세 종교의 뿌리가 같은 곳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뿐 아니라 힌두교 사원의 건축 계획도 발표하며 그들의 원대한 포부를 대외적으로 알려주었다. 이러한 국가 분위기 덕분에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의 아이들은 1년 365일을 축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다. 우리는 라마단이 끝나면 열리는 성대한 이드 알피트르를 축하하고 인도의 빛의 축제인 디왈리를 기념하며 심지어 음력설에는 한복을 입고 등교한다. 두바이의 가장 높다란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는 전 세계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내보내느라 화려한 불빛이 쉴 틈이 없어 보인다. 이런 다양한 모습들이 이 도시를 더욱 다채롭게 물들이고 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음 여정인 사막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리면 여기가 지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끝없는 모래언덕이 줄을 지어 서있다. 운이 좋다면 산책 나온 낙타 행렬을 만나기도 하는데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근처 농장에서 기르는 낙타들이다. 한 마리 가격이 약 1500만원부터 시작하지만 사고가 나면 농장주가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귀하신 낙타님들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도록 그 행렬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자동차 엔진을 끄고 이들을 지켜보았다.

모래언덕 위에 앉아 바라보는 노을은 그 웅장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사막의 하이라이트는 해가 진 뒤에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 별들의 향연이다. 우리는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 살며 밤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기에 급급해 별의 존재마저도 잊은 채 살아가곤 한다. 모닥불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어두운 사막에서 만난 별들은 사람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사색의 공간이 전 세계 사람들의 반 이상이 믿고 있는 종교들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긴 꼬챙이에 마시멜로를 끼워 모닥불에 구워 먹다가 이곳의 주인이었던 베두인(유목민)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들은 오아시스에 터를 잡고 살다가 진주조개 철이 되면 해안가 근처로 나와 이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다. 일본의 양식 진주업이 성공하며 삶을 위협하던 찰나에 오일이라는 황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오일은 앞으로도 최소 40년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40년’이라는 예상이 매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먹고사는 데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음에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두바이라는 도시를 기획하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자고 일어나면 섬이 하나 뚝딱. 또 자고 일어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뚝딱’ 만들어지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두바이 왕이자 UAE의 부통령인 HH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은 두바이를 ‘힘들고 어려워도 물러서지 않고 힘든 고난을 이겨내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화신’으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

“모든 도전은 배움의 기회이며, 우리의 능력과 지식을 시험할 기회이다.”

자칫 ‘오일머니 플렉스’ 같아 보이는 그들의 행동은 사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아라비아 상인의 후예인 그들은 더 이상 물건을 파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그들만이 전할 수 있는 ‘가치’를 팔며 석유 다음 세대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특별한 다음 여행지를 찾고 있는 당신께, 경험과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겨울의 두바이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다른 삶]겨울의 두바이는…이곳 사람에겐 천국, 여행객에겐 별천지


[다른 삶]겨울의 두바이는…이곳 사람에겐 천국, 여행객에겐 별천지

조혜임

국내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남편, 쌍둥이 딸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거주하며 현지의 일상을 글과 그림에 담아 소셜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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