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만 보고 와서 단점도 안고 사는 이민 생활…세상에 ‘천국’은 없다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눈 내리는 캐나다의 트레일을 걷는 한국 50대 남자들. 캐나다 한인동포 가운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실행에 옮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반면 ‘교육이민’의 목표를 이루고도 앞으로 캐나다에 계속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캐나다 삶이 갖는 이런 장점을 이야기한다. “자연이 좋아서.” “불필요한 인간 관계에 엮이기 싫어서.” “한국 정치에 신경 덜 써도 되니까”.

눈 내리는 캐나다의 트레일을 걷는 한국 50대 남자들. 캐나다 한인동포 가운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실행에 옮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반면 ‘교육이민’의 목표를 이루고도 앞으로 캐나다에 계속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캐나다 삶이 갖는 이런 장점을 이야기한다. “자연이 좋아서.” “불필요한 인간 관계에 엮이기 싫어서.” “한국 정치에 신경 덜 써도 되니까”.

캐나다에 살러 온 지 만 20년이 되는 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막되기 직전 캐나다에 도착했다. 월드컵 열기는 이곳에서도 뜨거웠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한국 사람들의 관심은 더 뜨거워서, 한국팀이 이기면 한인타운으로 몰려나가 기쁨을 만끽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캐나다 정착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느라 마음이 급했다. 한국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그 일과 관련된 한국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새벽에 축구 봐야 하니까, 점심시간 이후에 오세요.” 그러면 하루에 한 건밖에 일을 보지 못했다. 축구 보는 것보다 은행 계좌 만들기, 자동차보험 가입하기 등이 더 급했던 나로서는 한국이 4강까지 갔던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다른 할 일이 없던 나도 축구를 보러 다녔다. 우리 집에 텔레비전을 구입하기 전이어서 어느 선배 집에 가서 한국 경기를 보곤 했다. 집에 돌아오던 새벽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 연배의 어느 한국인 남자를 만났다. 아파트에 사는 걸 보니 그도 캐나다에 살러 온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축구 이야기를 하며 말을 걸었다. 나는 반가워서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라고 인사를 했다.

올해로 캐나다 이주 20년째 맞아
처음엔 낯선 환경 적응 위해 분주
마음 급한데 가진 돈 까먹으며 4년
옷가게를 열고 비로소 밥벌이 시작

미제·일제 고급일 때 떠나왔지만
한국제가 고급으로 통하는 지금
고국의 성장 보며 확연한 단점 느껴
희망 품고 왔지만 절망하는 사람들

한국으로의 역이민자도 여럿 봤다
때로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어딜가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
여기선 한국의 장점만 보이기 마련

그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했다. “앞으로 못 볼 거예요. 우리는 돌아가기로 했거든요.” 캐나다에 온 지 한 달도 안 된 나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왜요?”라는 질문이 내 입에서 바로 나왔다. “와서 보니까 생각했던 것하고는 너무 달라서요.” “오신 지 얼마나 됐는데요?” “6개월이요.” “뭐가 그렇게 달랐어요?” “취직도 안 되고 돈벌이하기가 어렵네요. 여기선 희망이 없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어요.”

희망을 잔뜩 품고 온 나에게는 절망을 안겨주는 말이었다. 나는 더 묻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그 사람은 취업하기로 했던 회사와 막판에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좌절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처지가 이해 안 될 바도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게 건너와서 너무 쉽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람이 내가 캐나다에서 본 최초의 역이민자이다.

모국에서 살다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힘들고 지루하게 마련이다. 나는 캐나다에 건너온 지 4년 만에 옷가게를 열면서 밥벌이를 비로소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자리 잡고 사는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그 정도의 시간은 투자했다. 그사이에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까먹고’ 살아야 하니, 불안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몇 년 후에 과연 제대로 정착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 시기에는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이런 고생 안 하고 한국으로 일찌감치 돌아간 사람이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이민하는 사람을 한동안 본 적이 없는데, 최근 들어 그런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오자마자 바로 돌아간 것과는 다른 성격의 역이민이다. 캐나다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서 한국으로 살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내 주변만 해도 최근 몇 년 동안 4가구가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먼저 나이가 예순 전후지만 아직 은퇴할 연배는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캐나다에는 직장에서 물러나도록 정해진 나이, 곧 정년이 없다. 보통의 경우, 캐나다에서는 노령보장연금(Old Age Security Pension)을 받는 65세를 은퇴 시기로 삼는다. 그러니 60세가 되기 전에 일을 그만두었다면 조기 은퇴자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캐나다에 살러 와서 안정된 직장을 구하거나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20년 넘게 잘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이 공부를 마치고 취직을 하고 나서, 그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역이민을 결행했다. 역이민은 부부 두 사람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캐나다로 이민을 올 때보다 훨씬 단출하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그들이 역이민을 하는 이유는, 역시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캐나다로 이민 왔을 때와 비슷하다. “한국 가서 살고 싶어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나는 금방 수긍할 수 있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과 비교해도 지금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게 변화·발전한 나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에 산 지 20년이 된 나는 한국에 들어갈 적마다 그 변화와 발전에 깜짝깜짝 놀란다. KTX나 대도시 지하철 같은 편리해진 교통에 놀라고, 북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급 물건에 대해서도 놀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미제’ ‘일제’가 고급으로 통했다. 지금 북미에서는 ‘한국제’가 고급이다. K팝, K드라마가 이끄는 이른바 ‘K컬처’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한껏 끌어올렸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만난 캐나다 사람들 가운데 남한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지금은 우리 가게 손님의 절반 이상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을 할 줄 안다. 나도 “생큐”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서비스를 비교해도 이미 오래전에 한국이 캐나다를 추월했다. 캐나다가 병원비가 들지 않는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취약한 대목이 적지 않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병원 대기시간이 길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반면, 한국에 가면 의료보험 가입자가 아니더라도 ‘저렴한’ 비용으로 ‘빨리빨리’ 치료나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도 건강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는 있으나 한국처럼 단기간에 종합적으로 받기는 어렵다.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한국에서 치료를 받거나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온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 의료서비스의 탁월함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전도사가 되는 셈이다.

한국이 이제는 예전에 우리가 부러워하던 그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이민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못사는(또는 불편한) 나라에서 잘사는(또는 편한) 나라로 살러 가는 것이 이민이니까 하는 말이다. 더군다나 그 잘사는 나라가 ‘모국’이라면, 캐나다로 이민을 올 때보다 이민하는 부담감이 절반 이상은 줄어들 것이다. 최소한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고, 낯선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캐나다 살러 올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쉽다.

외국에 나와 살다 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사람’이다. 이곳에서도 마음 맞는 한국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만 그 폭이 한국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좁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국에서라면 1년에 몇 번씩 만나 어울리는 친동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외국살이가 오래되면 될수록 점점 더 그립고 아쉬워지는 것이 내 부모·형제들과의 만남인데,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면 그런 아쉬움은 바로 해결된다.

2000년을 전후해 캐나다 같은 나라로 많은 사람들이 살러가는 것을 두고 한국 언론은 ‘교육 이민’이라고 이름 붙였다. 입시지옥이 아닌 곳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이민의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으로 따지고 보면, 자녀들이 대학 공부까지 마치고 자립할 능력을 갖추었다면 굳이 다른 나라에서 살 이유가 없다.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역이민을 우연히 접했다. 캐나다에 살러 와서 몇 년 고생한 끝에 자리를 잡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이다. 취학 전인 어린 두 자녀를 둔 부부는 캐나다에서 영주권과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받아 주택까지 구입한 상태였다. 정착하기까지 고생하는 것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이 부부도 열심히 노력해서 몇 년 만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가족은 캐나다에서 안정된 생활을 막 시작할 즈음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캐나다의 좋은 점은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역이민을 하게 되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려주는 역이민의 이유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사회는 변화가 더디거나 어느 면에서는 퇴보하는 반면, 한국 사회는 비약적으로 변화·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의료서비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젊은 부부가 지적하는 캐나다의 단점은 명확하다. 더군다나 한국과 비교하면 단점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패밀리닥터(가정의)가 부족하다거나 대기시간이 여전히 길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서비스의 질이 그만큼 떨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급히 병원에 갔는데 제대로 된 진료나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분노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그럼 이 글을 쓰는 당신은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캐나다에 살러 와보니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던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살아보니 캐나다가 가진 단점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에서 캐나다 이민을 생각할 적에는 캐나다의 장점만 보였다. 그럴 때면, 내가 사는 곳의 단점은 그만큼 더 커 보이는 법이다. 모국이 모든 면에서 발전했고, 모국어 사용 및 친동기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없이 달콤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나는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지금 여기에서는 한국의 좋은 점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이민을 하는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은 존중한다. 때로는 그들의 결단이 부럽다. 이민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캐나다살이는 퍽 단순하다. 내 경우를 보면, 노는 것이라고는 여름에 골프를 치고 겨울에는 트레일을 걷는 일이 전부이다. 지난 주말 함께 트레일을 걷던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되는데 왜 캐나다에 살지?” 뻔한 답들을 내놓았다. “자연이 좋잖아.” “애들 학원에 안 보내도 되니까.” “골프 치기 좋아서.”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엮이기 싫어서.” “한국 정치에 신경 덜 써도 되니까.”

그러니까, 결론은 세상에 ‘천국’은 없다는 얘기다.

▶성우제

[다른 삶]장점만 보고 와서 단점도 안고 사는 이민 생활…세상에 ‘천국’은 없다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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