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족 가족’의 출발…공감대 넓혀야 푼다

김지환 기자
한 시민이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한 시민이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다종족 가족’의 시대가 도래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반려동물 양육가구 수는 전체의 15%인 312만9000가구다. 반려동물이 사람의 일상과 관계에 깊숙이 자리를 잡으면서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반려동물은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인가’라는 반려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부터 ‘반려동물 돌봄휴가가 보장돼야 하는지’ 등의 현실적 문제까지 다양한 이슈가 있다. 인간과 반려동물이 서로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키우지 않는 사람 간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능할까

서울 강서구에 사는 1인 가구 장정운씨(23)는 반려묘 ‘로또’와 ‘연금’을 키우는 냥집사다. 지난달 16일 찾은 그의 원룸은 한눈에 봐도 고양이가 사는 집이었다. 현관문엔 고양이가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예방하는 울타리, 방 안에는 수직 공간을 좋아하는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가 자리 잡고 있다.

장씨가 고양이들을 키우게 된 계기는 2021년 7월 PC방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로또를 만난 것이었다. “서빙 중 손바닥보다 작은 뭔가가 손님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게 보였어요. 손님에게 물어보니 새끼 길고양이라 하더라고요. 마음이 쓰여 찾아봤는데 보이질 않았어요. 밤 11시 퇴근 전 창고에 들어가보니 보일러 밑에서 로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죠.”

장씨는 곧장 인근 동물병원으로 로또를 데려갔다. 다행히 “건강하다”는 답을 들었다. 태풍 때문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라 일단 집으로 로또를 들였지만 계속 키울 생각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이고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수개월간 입양 홍보를 했지만 희망자를 찾기 어려웠던 데다 같이 지내다보니 정이 들어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로또는 장씨의 가족이 됐다. 얼마 전 누군가의 집 앞에 버려졌던 연금이도 입양을 통해 장씨와 새 인연을 맺었다.

장씨는 로또와 연금이의 ‘언니’로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동물과의 반려관계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2021년 말 로또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킬 때도 고민이 됐다. 로또 건강을 위해 수술이 필요하다지만 정말 로또가 원하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스쳐가기도 했다.

1인 가구인 장정운씨가 지난달 16일 서울 강서구에 있는 자신의 원룸에서 반려묘 ‘연금’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김지환 기자

1인 가구인 장정운씨가 지난달 16일 서울 강서구에 있는 자신의 원룸에서 반려묘 ‘연금’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김지환 기자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인 도나 해러웨이는 저서 <반려종 선언: 개, 사람 그리고 소중한 타자성>에서 “개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인간의 영혼을 되살린다는 생각은 개 예찬론자의 자기애라는 신경증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해러웨이는 소중한 타자와 관계를 맺는 데는 “골치 아픈 조건들을 맞춰가면서 사랑을 지속하려는 노력” “친밀한 타자를 더 잘 알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서로를 길들이고 소통하려는 지난한 노력이 없다면 반려동물과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관계의 폭은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려동물이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는 환상은 되레 유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러웨이는 “인간의 애정이 시들거나, 사람의 편의가 우선하는 상황이 되거나, 개가 무조건적 사랑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하면 버려질 위험을 겪게 된다”고 짚었다.

장씨도 로또, 연금이가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라고 여기진 않는다. 옥신각신하는 과정을 거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 관계도 의심, 트러블을 거치면서 더 단단해지듯이 사람과 동물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요. 결국 일방향적 관계가 아니라 쌍방향적 관계라고 봐요.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동물에게 투영시키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반려동물 돌봄휴가가 가능할까

1인 가구인 직장인 A씨는 2020년 5월 반려견을 동물병원에 데려갔다가 심장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의사는 반려견이 12시간 주기로 심장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약을 제때 먹이지 못하면 반려견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주의도 줬다.

이후 A씨는 매일 아침 반려견에게 약을 먹이고 출근했다. 업무 뒤 정시 퇴근을 해야 집에 돌아와 12시간 주기에 맞춰 약을 먹일 수 있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회식에 자주 빠질 수밖에 없었다. 상사는 반려견 때문에 회식에 빠진다며 A씨를 나무라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최근 A씨의 반려견은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A씨는 연차를 쓰고 장례를 치렀다. 상사는 반려견 때문에 연차를 썼다며 그를 비난했고, 반려견을 잃은 슬픔에 공감해주기는커녕 웃으면서 일이나 하라고 했다.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의 차원에서 반려동물 돌봄이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반려동물 장례를 치르는 직원을 위로하기 위해 장례휴가를 보장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법률원과 가맹 산별노조 법률원들로 구성된 ‘법무법인 여는’은 지난달 15일 소속 구성원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이 죽을 경우 이틀의 유급휴가를 주는 것으로 내부 규정을 개정했다.

젊은 직장인일수록 반려동물 돌봄휴가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7~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반려동물 돌봄을 위해 휴가나 수당 등 지원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41.5%로 나타났다. 20대는 절반 이상(58.1%)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30대(46.5%), 40대(37.2%), 50대(32.0%)로 갈수록 비율이 낮아졌다.

반려동물을 돌보는 별도의 휴가를 부여하는 문제는 세대 간, 키우는 사람과 키우지 않는 사람 간 인식 차 등으로 인해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자녀가 없거나 비혼인 노동자들이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자녀돌봄휴가를 보장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진 않는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가족에 준하는 대상으로 보고 돌봄휴가를 주는 것에 대해선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반려동물 돌봄이 필요할 경우 연간 최장 5일간 무급휴가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현행법은 가족의 질병·사고·노령 및 자녀 양육을 위해 필요할 경우 최장 10일의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1인 가구 등에서 가족의 역할을 하는 반려동물에게 돌봄이 필요한 사유가 발생해도 연차휴가 외에는 반려동물을 돌보기 위한 휴가 등이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한 달도 안 돼 철회됐다. 법안 발의 뒤 “악용될 소지가 있다” “비반려인에 대한 역차별” 등 반대 의견이 나와서다. 이 의원실 측은 “반려동물 돌봄휴가는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안에 관심·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은 만큼 오해 소지가 없도록 내용을 보완해 재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가족돌봄휴가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데 무슨 반려동물 돌봄휴가냐’라는 주장은 정당한 항의일 수 있다”며 “하지만 이 항의의 화살은 반려동물 돌봄휴가가 아니라 일터의 약자들에게 기본적 휴가조차 보장하지 않는 기업·정부 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려동물 돌봄 보장은 직장인 복지 확대인 만큼 이것이 내 권리를 갉아먹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또 반려동물 돌봄까지 보장되면 노동자의 다른 기본적 권리 보장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구경민·김지환·노도현·성동훈·이준헌·장용석·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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